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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국내에 들어와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를 받던 중 ‘자살’했다고 알려진 한종수씨는 현재 경기도 시흥시 정왕공설묘지 한구석에 비석조차 없이 묻혀 있다.
경기도 시흥시의 정왕공설묘지 한구석 30평 남짓한 구역에는 무연고 변사자 40여 명의 묘지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말 그대로 시흥시 관내에서 발견된 변사자 가운데 가족이나 친지 등 어떤 연고자도 찾지 못한 주검을 매장한 곳이다. 35번째 묘지(묘번 3-무연-35) 앞에는 비석조차 세워져 있지 않다. 그곳에 묻혀 있는 건 2011년 12월27일 국가정보원이 발표한 짤막한 보도자료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한 탈북자의 주검이다.
비석도 없이 무연고 변사자로당시 국정원의 보도자료는 이렇다. “경기도 시흥시에 소재한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 수용 중이던 30대 남성 탈북자가 2주 전인 12월13일 자신의 숙소 샤워실에서 운동복 끝으로 목을 맨 채로 발견됐다. 응급조치 후 인근 병원으로 긴급 이송해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사망했다.” 그는 숨지기 하루 전날인 12월12일, 자신이 북한 공작조직에 탈북자를 지원하는 국내 한 선교단체의 위치와 선교자 신원을 파악해 보고했음을 자백했다고 국정원은 발표했다. 그는 또 잠복하라는 지령을 받고 탈북자로 신분을 위장해 침투했음을 밝혔다고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외력에 의한 손상이 전혀 없고 목 부위 상흔 등으로 보아 자살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부검 결과를 덧붙였다. 그러나 그의 이름과 정확한 나이, 출생지는 물론 언제 탈북해 어떤 경로를 통해 국내로 들어왔는지 등의 기본적인 정보는 전혀 없었다.
상식적인 시각에서 볼 때,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았다. 첫째, 국내로 들어온 탈북자가 국정원의 조사를 받던 중 자살했다는 사실이 밖으로 알려진 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개국 한 달도 채 못 돼 ‘특종 경쟁’을 벌이던 종합편성채널 가운데 하나인 TV조선의 12월26일 단독 보도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합신센터에서 조사받던 탈북자가 사망했다는 단독 보도(숨진 뒤 며칠이 지나서야 주검이 경찰로 넘겨졌다는 등 추가 팩트들은 부실했지만)가 나온 다음날(12월27일) 몇몇 언론이 확인을 요구하자 국정원이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둘째, 사건이 발생한 합신센터라는 공간의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국내로 들어오는 탈북자라면 누구나 가장 처음 거쳐야 하는 곳, 최장 180일 동안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채 위장 탈북, 달리 말해 간첩 여부를 검증받기 위해 독방 조사를 받아야만 하는 곳, 따라서 그 울타리 안쪽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더라도 국정원의 발표 말고는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유우성씨에 대한 간첩 증거 조작 의혹이 더해졌다. 유씨 여동생 가려씨가 179일의 합신센터 조사 기간 중 강압과 회유에 의해 오빠를 간첩이라고 허위 자백한 사실까지 확인됐다. 이 30대 자살 탈북자 역시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되는 과정에서 자살을 선택한 것일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상황이 됐다.
병원으로 옮겨졌을 당시 생존? 사망?는 최근 몇 달 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확인했다. 탈북자는 1976년 8월15일생 한종수씨로 2010년 10월 북한을 탈출해 2011년 9월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니까 숨지기 전까지 대략 석 달 동안 합신센터에서 조사를 받은 셈이다. 그 밖에도 몇 가지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럴수록 의혹이 커졌다.
우선 사건 발생 사흘 뒤 시흥경찰서가 시흥시청으로 보낸 ‘무연고 변사자 행정처리 의뢰’ 공문을 입수했다. 여기엔 한씨가 2011년 12월13일 새벽 5시45분 합신센터 내에서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리고 한씨의 주검이 합신센터에서 7km 정도 떨어진 동안산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고 적혀 있다. 이 대목에서 국정원에 대한 신뢰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앞서 언급했듯 국정원은 한씨를 응급실로 긴급 이송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즉 경찰은 한씨가 ‘사망한 채로’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적시한 반면, 국정원은 ‘숨이 붙어 있는 채로’ 병원으로 갔지만 숨졌다고 발표한 것이다. 병원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한씨의 응급실 기록은 ‘DOA’(Dead on Arrival), 즉 도착시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한씨가 어디에서 숨졌는지의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경찰의 공문과 병원 응급실 기록처럼 한씨가 합신센터 내에서 이미 숨진 상태였다면 국정원은 현장에 주검을 보존한 상태로 즉시 경찰에 신고했어야 한다. 경찰은 현장에서 주검의 상태를 검안하고 변사자의 옷가지나 주변에 유서가 있었는지 등을 확인해 자살 등 사인에 대한 1차 결론을 내리고 부검 여부를 결정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시흥경찰서 경찰은 “신고를 받고 합신센터 안으로 들어갔던 시각이 대략 점심시간이 조금 못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신은 병원으로 옮겨진 상태였고 국정원 관계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현장검증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또 “병원에 가서 시신을 검안한 결과 목 부위에 끈으로 눌린 흔적이 있었다. 검찰 지휘에 따라 바로 다음날 국과수에 시신 부검을 의뢰했다”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담당 경찰은 “당시 한씨의 독방에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달려 있다는 것은 확인했다. 하지만 사망 장소인 샤워실까지는 비출 수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CCTV를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샤워장 바깥의 CCTV라도 확인했다면 한씨의 정확한 사망 시각과 유서 작성 여부, 사망 이후 국정원 직원들의 대처 모습 등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임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나아가 한씨가 자살에 이르기 전까지 받은 신문의 내용과 물리적·심리적 가혹 행위 여부까지도 고스란히 담겼을 것이다. 이러한 CCTV 녹화 영상을 경찰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확보하지 않았다. 변사 사건을 자주 접하는 한 경찰서의 형사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국정원 관할 시설물 내부에서 이뤄진 수사였기 때문에 다소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더라도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을 수 있다. 만약 국정원이 간첩 증거 조작 의혹에 휩싸인 요즘과 같은 사회적 분위기였다면 그같은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의 태도와 수사 절차도 달라졌을 것이다.”
보도자료 낸 건 부검 결과 발표 전? 발표 후?주검 부검과 관련해서도 미심쩍은 구석이 보인다. 국과수는 사건 바로 다음날인 12월14일 시흥경찰서로부터 한씨의 부검을 의뢰받아 19일 뒤인 2012년 1월2일에 최종 결과를 통지했다. 그러나 당시 언론과의 유일한 접촉 통로였던 국정원 대변인의 설명은 그야말로 오락가락이다. ‘왜 2주일이나 지난 사건을 이제야 발표한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오해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최종 결과가 나오면 발표하려고 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보도자료를 낸 시점(12월27일)에는 아직 부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검 결과도 나오기 전에 서둘러 무연고 변사자로 매장 처리하도록 조치한 이유가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12월14일 부검을 의뢰해 당일 결과가 나왔다”고 대답했다. 허점투성이의 임기응변식 해명이다. 혹시 첫 단추부터 거짓에서 시작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가 확보한 경찰 공문에 적혀 있는 한종수씨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1OOOOOO’였다.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 땅에 온 지 석 달 만에 어느 나라 국민도 아닌 채로 공설묘지 한구석에 묻혀 있다. 앞으로 8년이 더 지나면 그의 주검은 묘지 관리규정에 따라 화장 및 분골된다. 한씨가 위장 탈북한 간첩이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그가 합신센터라는 공간에서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과정을 제대로 밝혀내는 일은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자 인간에 대한 예의다. 설령 유우성씨가 간첩이라고 할지라도 국가기관이 증거를 조작해 사법체제의 근본을 훼손하는 행위까지 동원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인식처럼 말이다.
김성수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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