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이겼다. 그는 아버지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의 상속재산을 두고 형·누나와 벌인 재산 분쟁 소송에서 완전 승소 판결을 받아들었다. 다만 2조원대 세금을 물어야 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어 개운치 않은 승리다.
재벌 일가의 재산 다툼 중에서도 끝판왕으로 불리는 ‘삼성가 혈투’의 씨앗은 2008년 4월 뿌려졌다. 당시 삼성 일가의 비리 의혹을 수사한 특별검사팀은 그룹 임직원의 차명계좌에서 찾아낸 삼성생명 주식 등 4조5천억원의 자금이 이병철 선대 회장(1987년 사망)에게서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의 개인 돈이라고 결론 내렸다. 덕분에 이건희 회장은 비자금 조성 의혹도 벗고, 세금 한 푼 없이 수조원의 차명재산도 자기 단독 명의로 실명화하는 온갖 혜택을 누린다. 그러던 2011년 문제가 터졌다. 이건희 회장이 2008년 형제들 몫의 차명 상속재산까지 혼자 차지하는 과정에서 형제간 증여가 이뤄졌다고 보고 과세 당국이 2조원 규모의 증여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다급해진 이건희 회장 쪽은 다른 상속인들에게 “선대 회장의 재산은 상속 당시 분할이 결정됐고, 어떤 이의도 없다”는 내용의 문서를 보낸 뒤 날인해달라고 요구했다. 차명재산 상속이 이미 이병철 전 회장 사망 당시 마무리된 만큼 2008년 형제간 증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룹 후계자에서 밀려났던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아버지)이 이를 거절하고 “내 몫인 7100억원대 상속재산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내자 일이 커졌다. 여기에 얼마 뒤 차녀인 이숙희(구자학 아워홈 회장 부인)씨와 차남 고 이창희씨의 자손까지 소송에 가세하며 ‘이건희 대 이맹희 쪽 형제들’로 전선이 확장됐다. 이후 최종 소송 청구액은 삼성생명 주식 1351만여 주, 삼성전자 주식 80만여 주 등 4조원대로 불어났다.
삼성은 애초부터 승소를 자신했다. 일각의 예측과 달리 이맹희 전 회장 쪽과 타협에 나서지도 않았다. 이건희 회장이 직접 나서 “한 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 “수준 이하의 자연인” 등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형·누나와 막장 다툼을 벌였다. 자신감의 근거는 ‘상속회복청구권 소멸’이었다. 이병철 전 회장이 사망한 지 25년이 지나 다른 형제들이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는 기한(10년)을 이미 훌쩍 넘겼다는 것이다. 실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재판장 서창원)도 2월1일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일부(삼성생명 주식 39만여 주)가 상속재산으로 인정되지만 제척기간(법률적 권리 행사 기간) 10년이 지나 각하 판결한다”며 삼성 쪽 주장을 받아들였다. 나머지 대부분은 아예 “상속재산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 판결했다. 재판 결과에 대해 이맹희 전 회장 쪽 차동언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전혀 예상 못한 결과다. 의뢰인과 상의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과세 당국은 과연 증여세 받아낼까삼성 쪽은 “회장 개인의 일”이라며 별다른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맹희 전 회장 쪽 주장이 받아들여져 계열사 순환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생명 주식을 잃게 된다면 삼성에 ‘재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이건희 회장에게는 큰 숙제가 남아 있다. 앞으로 과세 당국과 삼성 간에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2조원 규모의 증여세 납부 다툼에서 이건희 회장 쪽에 불리한 판단이 이번 재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선대 회장 타계 당시 차명주식에 관한 상속재산 분할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하기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이 완전 승소 판결을 받고도 찜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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