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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위해 기장군민 지원금 70억 써야 하나

등록 2012-11-01 11:29 수정 2020-05-03 04:27
부산MBC가 제작하는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가제) 세트장은 부산시ㆍ기장군 예산과 한국수력원자력의 기장군민 지원금으로 지어질 예정이다. 부산MBC와 부산시, 기장군, 고리1호기 합의사항 추진위원회 등은 7월 18일 이런 내용을 포함해 제작 지원에 관한 기본 협약을 체결했다.

부산MBC가 제작하는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가제) 세트장은 부산시ㆍ기장군 예산과 한국수력원자력의 기장군민 지원금으로 지어질 예정이다. 부산MBC와 부산시, 기장군, 고리1호기 합의사항 추진위원회 등은 7월 18일 이런 내용을 포함해 제작 지원에 관한 기본 협약을 체결했다.

고리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한 부산시 기장군 주민들은 최근 둘로 쪼개졌다. 장안읍에 들어설 예정인 MBC 드라마 (가제) 세트장이 발단이 됐다. 결국 주민들 주머니에서 빠져나갈 기장군의 지원액 규모가 130억원으로 거론되며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탓이다. 박충주 장안읍장이 전한 분위기는 이렇다. “의견이 반반이다. 그래도 의견차가 좁혀지고 있다. 찬성 쪽은 세트장 효과로 주변 관광지나 식당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반대 쪽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지원금이) 계획된 (주민 복지) 사업에 쓰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부산시, 기장군 30억씩 지원 결정

부산MBC가 2013년 3월 방영을 목표로 기획 중인 는 조선시대 최초의 여성 사기장(도자기를 빚는 기능인)의 삶과 사랑을 다룬 사극 드라마다. 총제작비만 230억원에 이르는 대작이다. 이 가운에 130억원을 지역사회에서 조달한다는 게 부산MBC의 ‘펀딩’ 계획이다. 지금껏 방송사나 제작사가 드라마를 찍을 때 세트장이 들어서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는 사례는 많았지만 있었지만, 지원액이 100억원 이상인 경우는 드물었다. 현재 방영 중인 KBS 세트장에 대한 지자체 지원액도 40억원이다. 부산MBC는 사기장을 소재로 한 드라마의 세트장이 현재 기장군이 조성 중인 ‘도자기 테마파크’(도예촌) 안에 들어서면 관광객 유치에 시너지 효과를 줄 것이란 논리를 펴고 있다. 부산MBC 고위 관계자는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 기존 세트장과는 차원이 다른 세트장을 만들 계획”이라며 “세트장 건립에만 9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설득은 효과가 있었다. 부산시와 기장군은 이미 올해 예산안에 각 30억원씩 총 60억원의 세트장 지원비를 책정한 상태다. 남은 목표액 70억원 조달 과정에도 성과가 있다. 한수원이 고리 원전 인근에 거주하는 기장군 주민들에게 지급하는 각종 지원금이 있었던 덕분이다. 주민 대표들은 주민들이 사용처를 정할 수 있는 ‘고리 1호기 재가동 합의금’ 중 40억원을 꺼내 세트장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와는 별도로 한수원도 주민의 복지사업비 등에 쓰이는 예산 가운데 30억원을 세트장에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물론 일부 주민들의 반대는 여전히 남아 있다. 또 다른 부산MBC 관계자는 “최근 고리 원전의 안전 문제가 불거지자 한수원에 대한 일부 주민들의 감정이 격앙돼 추가적인 (기장군-부산MBC-한수원-주민 대표 간) 지원 절차가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MBC에 제작비 부담 떠안겨

이번 드라마는 일반적인 드라마와는 다르게 제작되고 있다. MBC 본사 대신 부산MBC가 총제작을 맡고 있다. 부산MBC가 제작비 마련 등 드라마 제작 환경을 조성하면, MBC 본사는 드라마를 연출하고 편성을 책임지는 식이다. 부산MBC가 일종의 외주제작사 노릇을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최문순 전 사장 시절 지역 MBC의 제작 능력 확대를 위한 아이디어로 제시된 뒤 김재철 사장 때 본격화 했다. 2010년작 와 이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애초 취지와 달리 지역 MBC에서 자발적으로 드라마를 기획하기보다는 본사에서 만들어진 아이디어가 지역 MBC로 하달되는 경우가 많다. 도 그런 사례다. 지역 MBC는 생활 터전에서 인심을 잃어가며 제작비 펀딩 등을 떠맡고, 본사는 편하게 원하는 드라마를 찍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한수원 관계자의 하소연은 이랬다. “1년 전부터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우리도 힘들다. 더 이상은 묻지 마라.”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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