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공용 화장실에서 아기 낳고 물 내린 ‘영아살해’ 혐의 여고생, 성폭행부터 분만까지 아무도 몰랐다니…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지난 3월7일 오후 5시께, 경기 수원 화성의 한 공용 화장실. 청소 용역원 한아무개(48)씨는 여자 화장실에 들어서다가 어렴풋이 갓난아기 울음소리를 들었다. 평소와 달리 이날은 화장실 이용자가 거의 없었다. 와글와글 하굣길에 들르던 아이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였다. 한 칸의 문이 잠겨 있었고, 안에서는 인기척은 없이 휴대전화 벨소리 같은 음악만 크게 들렸다. 다른 칸들을 청소한 뒤 세면대 옆 의자에 앉아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10분쯤 지났을까. 10대 후반의 소녀가 문을 열고 나오려다 한씨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문을 닫았다. 뒤이어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연방 들렸다. 칸막이 밖 바닥으로 벌건 핏물이 흘러나왔다.
직감적으로 눈치를 챈 한씨가 “학생, 무슨 일이야? 혹시 애 쏟은 거 아니야?”라고 물었다. 모기만 한 소리로 “생리를 해서 그래요”라는 답변이 나왔다. “그러면 물은 왜 자꾸 내리는 거야? 나와봐.” “아니예요. 죄송해요. 제가 다 치우고 갈게요.” “글쎄, 도와줄 테니 나와보라니까.” “….” 그러길 10분. 한씨의 닦달에 드디어 소녀가 나왔다. 얼굴이 노랗게 뜬, 짙은 색 치마와 후드 점퍼를 입은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치마 안으로 피가 흘러 종아리를 타고 내려오는 게 보였다. 변기 뚜껑을 열어보니 신생아가 등과 뒤통수를 내보인 채 떠 있었다. 이미 숨진 상태로 보였다. 한씨는 119를 부르고 소녀에게 여벌로 갖고 있던 속옷을 입혔다. 화장실 내부는 휴지 뭉치가 흩어진 채 피칠갑이 돼 있었다. 변기 옆에 피 묻은 열쇠 하나가 놓여 있었다.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작은 열쇠였다. 탯줄을 자를 때 썼던 모양이었다.
수원의 한 고등학교 2학년인 ㄱ(17)양은 곧바로 아주대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다. 조산인데다 분만 뒤 처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출혈이 심했다. ㄱ양은 목숨을 건졌으나 아기는 숨졌다. 4kg의 사내아이였다. 경찰은 ㄱ양을 영아살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엄마 “내 딸이지만 꼴도 보기 싫다”
ㄱ양은 왜 혼자 숨죽인 채 아이를 낳아야 했을까. 경찰의 수사 내용 등을 종합하면, ㄱ양은 누구에게도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배가 불러올 때까지 가족이나 친구, 학교 교사들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사건 당일 병원으로 달려간 담임 교사와 학생주임에게 ㄱ양의 어머니는 “전혀 몰랐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내 딸이지만 꼴도 보기 싫다”고 울부짖었다. ㄱ양의 언니는 “간밤에도 한이불을 덮고 잤지만 전혀 몰랐다. 동생이 전보다 많이 먹었는데, 지난해 가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충격으로 그런 줄 알았다. 그냥 살이 찐 줄로만 알았다”며 울먹였다. 학교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지난해와 올해 ㄱ양의 담임을 맡은 교사들은 “특별히 ‘튀는 학생’이 아니었고 그 나이 때는 키나 몸이 갑자기 성장하기도 하므로,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했다.
가출했던 날 두 명에게 성폭행 당해
사건 당일에도 ㄱ양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갔다. 수업 시간에는 학교 보건소에 누워 있었다. 보건 교사에게 “배가 아프다. 생리통인 것 같다”고 약을 얻기도 했다. 하교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갑자기 양수가 터지자 ㄱ양은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왔다. ㄱ양은 “갑자기 몸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는데, 놀라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라 집에 가려고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던 도중 배가 너무 아파 화장실에 들어갔고, 10여분의 진통 뒤 애를 낳았는데, “무서워서 곧바로 물을 내렸다”는 것이다. ㄱ양은 임신 경위에 대해서는 “지난해 7월 수원역 근처에서 한 흑인 외국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이 ‘외국인’을 추적할 만한 단서나 정황은 없었다. ㄱ양은 “4개월 정도 될 때까지 임신 사실을 몰랐고, 그 뒤에는 임신인가 싶기도 했지만 누가 알까봐 무서워 숨기고 지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물을 반복적으로 내린 과정에서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해 ㄱ양에게 영아과실치사가 아닌 영아살해 혐의를 적용했다.
사건 며칠 뒤 ㄱ양의 외삼촌이 담당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이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는데, 임신 상대가 정체불명의 외국인이 아니라 중학교 1년 선배인 남학생과 그 친구 등 두 명으로,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7월 엄마와 다툰 뒤 딱 하루 집을 나왔는데, 갈 곳이 없어 PC방에서 채팅을 하다가 중학교 1년 선배인 남학생과 우연히 연결이 됐고, 그 남학생 집에서 하루 머물다가 당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ㄱ양은 현재 사건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경찰은 본인의 진술을 들은 뒤 용의자 추적에 나설 예정이다. 만약 이 ‘전언’이 사실이라면 ㄱ양은 성폭행 피해자로서 ‘응급구조’를 받을 기회조차 놓치고 이중 삼중의 고통 속에서 8개월의 시간을 보냈던 셈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성폭행 등으로 임신을 한 경우에는 중절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현재 전국 14개 시도의 대형 병원 응급실에 ‘여성·학교폭력 피해자를 위한 원스톱 지원센터’가 설치돼 있다. 의료 지원과 전문 상담, 수사 및 법률 지원까지 한 번에 이뤄지는 ‘피해자 맞춤형’ 통합 시스템으로, 여성 경찰관과 상담사, 간호사 등이 24시간 연중무휴 상주한다. ㄱ양은 이런 정보를 전혀 몰랐을까. 수원중부경찰서 강력3팀 노원우 형사는 “ㄱ양이 지난해 7월 이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지낸 것 같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자퇴서 제출하고 이사학교 생활은 어땠을까. ㄱ양은 지난해 가을부터 담임 교사 등에게 ‘자퇴를 하게 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미용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학부모 동의가 없는 상태라 학교에서는 ㄱ양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고 한다. ㄱ양의 아버지는 지난해 가을 숨졌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주야로 일을 다니느라 아이를 돌볼 겨를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렵게 담임교사 등을 통해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ㄱ양의 가족은 기자와의 접촉을 완강히 거절했다. 살던 집도 내놓고 다른 곳으로 이사한 상태라고 했다. ㄱ양의 외삼촌은 사건 직후 곧바로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ㄱ양이 미성년자인데다 본인 처지와 전후 과정에 비춰볼 때 기소유예 처분이 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장담할수는 없다. 영아과실치사와 달리 영아살해는 죄가 무겁다. 형법상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이 소식을 접한 일부 여성 인사들이 온라인 커뮤니티(http://.sunjooschool.com)에서 ‘무료변론 지원’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ㄱ양의 가족은 일체의 ‘외부의 도움’을 잠정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상태이다. “아무 도움도 필요 없다. 우리가 알아서 돌보겠다. 그냥 조용히 일이 묻히고 지나가게만 해달라”는 게 경찰이 전한 ㄱ양 가족의 이야기이다. 주요 언론은 이 사건을 다루지 않았지만 일부 지역언론에 보도된 것만으로도 ㄱ양과 가족은 ‘공황 상태’라고 담당 형사는 덧붙였다.
사건 직후 ㄱ양의 어머니가 보인 반응과 경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태도를 보면, ㄱ양과 가족은 ‘세상의 시선’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평소 가정과 학교 같은 1차 집단에서 반복적으로 주입·학습된 내용은 결정적인 순간 개인의 판단에 큰 영향을 끼친다. ㄱ양이 임신 사실을 숨긴 것이 수치심 때문이었는지는 알수 없다. 다만 홀로 분만을 하는 순간에도 “무섭고 감추고만 싶어” 했던 절박한 심경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수 있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의식에 앞서 수치심을 갖는다.
ㄱ양은 응급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를 몰랐던 것일까. ㄱ양이 다니던 학교에서는 1년에 10시간씩 성교육 수업을 꼬박꼬박 해왔고, 긴급 신고전화 1366도 충분히 알려줬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학교 역시 대부분의 다른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형식적인 수업’에 그쳤다. 1년에 한두 차례 외부 전문가가 성폭력 예방교육과 범죄 예방교육을 진행했으나, 강당에 수백 명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하거나 교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배우는 식이었다. 그나마 ㄱ양이 다니던 학교는 교육부에서 정한 수업 시수를 지켜온 쪽이다.
성교육·신고전화 홍보도 형식에 그쳐
학생용 성교육 교재가 개발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2001년 교사용 지도서가 나왔을뿐, 학생용 교재는 없었다. 이르면 3월 말 각급 학교에 배포되는 새 교재(초등용, 중·고등용)는 성폭력·가정폭력·학교폭력 예방과 대처 방안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긴급 신고전화, 호신술, 폭행을 당한 직후 증거물 보전 방법을 포함해 사후 응급피임에 대한 정보까지 아울렀다. ‘일반적인 지식’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처 방안’에 대폭 무게를 실은 셈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이수정 박사는 “결국 어른도 세상도 나를 지켜주지 못하니, 일상적인 위험을 인식하고 스스로 자신을 지키라는 적극적인 대처법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고 설명했다. 경기 지역의 한 원스톱 지원센터 관계자는 “‘부끄러워 말고 감추지 말고 도움을 청하라, 내가 그 도움을 요청받는 단 한 사람일 수도 있다, 꼭 필요한 정보를 알고 주변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예방이다’라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가르치는 체계적인 현장 교육이 아쉽다”고 말했다.
청소 용역원이 발견하지 않았다면 ㄱ양은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ㄱ양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기 전까지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꼬박꼬박 집밥을 먹고 학교에 다녔건만 8개월 넘게 배가 불러올 때까지 주변 어른들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너는 세상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이며, 네가 용기를 낸다면 세상은 기꺼이 네 편에서 고통을 덜어준다는 사실을 말해준 이도 없었다. 이런 무관심과 방치가 결국 ㄱ양을 화장실 안에서 ‘홀로 사투하게’ 하고 ㄱ양의 아이까지 ‘살해’한 것은 아닐까. ㄱ양은 피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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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국에 있는 ‘여성·학교폭력 피해자 원-스톱 지원센터’에서 도움을 받은 성폭력 피해자는 5701명이다. 전년도 2868명에 견줘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이다. 이금형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은 “경찰에 신고된 성폭력 피해사건이 1만5326건(2006년 기준)인 것을 보면, 대략 3분의 1이 넘는 피해자가 긴급 지원을 받고 있다”며 “동시에 3분의 2 가까운 피해자는 어떤 이유로든 이 시스템에서 소외돼 있다”고 말했다.
원-스톱 지원센터는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신분 노출과 신변 위협 등을 우려해 가해자를 신고하는 일이 드물고(평균 6.1%), 피해자에게 의료·상담·수사·법률 등 무료 통합지원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사회적인 인식에 따라 지난 2005년부터 설치되기 시작했다. 2006년 전국 14개 시도에 15곳이 만들어졌다(경기 지역은 두 곳). 대형 병원 응급실에 설치돼 있어 신속한 의료적 처치를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특징이다. 또 여성 경찰관, 상담사, 행정요원, 전담 간호사 등이 24시간 대기하고 있어 표현력이 부족한 어린이나 도우미가 필요한 장애인, 2차 피해자인 피해자 가족도 ‘맞춤형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증거 채취 및 피해자 진료·치료는 전액 무료이다. 상주 여성 경찰관이 피해자가 안정된 심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장소에서 진술 조서를 작성하고 녹화해, 이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두 번 세 번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고통을 덜도록 했다. 법률 상담은 물론 300만원 한도에서 무료로 민·형사 소송 지원을 해주며,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와의 만남을 거부하는 피해자에게는 형편에 맞는 보호시설을 연결해준다. 피해자 신원은 철저히 보호한다.
스티커를 붙이고 방송 홍보를 하는 등 원-스톱 지원센터를 널리 알리면 피해자들, 특히 청소년 피해자들이 이를 지체 없이 이용할 수 있을까? 경기 지역의 한 원-스톱 지원센터 상담사는 “대부분의 센터에서 동시에 돌볼 수 있는 피해자 수는 최대 2명이다. 피해자 신원 보호를 위해 시간대를 겹치지 않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인력과 규모로는 ‘무조건적인 홍보’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2월 설 연휴에 앞서 전국적으로 홍보한 ‘1339’(응급의료 지원센터)는 문의가 폭주하면서 상담원이 다섯 건에 한 건 정도만 가까스로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딜레마다. 중요한 것은 ‘잠재적 피해자들’이 여전히 원-스톱 지원센터의 존재조차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홈페이지 www.117.go.kr 전화 국번없이 117·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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