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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 절반 살 수 있게 됐죠”

등록 2007-11-16 00:00 수정 2020-05-03 04:25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우토로동포지원사업’에 30억원 지원 결정해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일제의 패망에도 해방을 맞이하지 못했던 땅이다. 온갖 차별에 맞서 싸워온 게 벌써 62년 세월을 훌쩍 넘겼다. 힘겨운 싸움의 고빗길마다 애처로운 얼굴들이 조국을 바라봤지만, 우리는 그들과 눈길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 땅에서도 끝내는 해방의 기운이 싹을 틔웠다. 악귀처럼 따라붙던 강제철거의 위기에서 마침내 벗어날 수 있게 된 게다. 그러니 이제는 웃음을 흘려도 좋겠다.

토지 문제 해결되면 재개발 추진키로

일본 교토부 우지시 이세다초 우토로 51번지, 재일 조선인 65세대 200여 주민들이 모여 사는 우토로 마을이 들썩이고 있다. 지난 11월6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위원장 김원웅) 전체회의에서 ‘우토로동포지원사업’ 예산으로 3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탓이다. 애초 정부는 우토로 지원금을 2008년과 2009년 각각 15억원씩 순차적으로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예산안을 올린 바 있다. 정부 예산안이 원안대로 확정됐다면, 우토로 주민들이 천신만고 끝에 체결한 토지 매매계약은 대금 지급 기일을 맞추지 못해 폐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토로 동포들이 국회의 증액지원 결정을 ‘생명수’로 반기는 이유다.

우토로 마을은 1940년대 일본 육군의 요구에 따라 설립된 국책회사와 일본 정부, 교토 지방정부 등 3자가 추진한 군사기지 건설에 값싼 노동력으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숙소에서 출발했다. 여러 차례 소유권자가 바뀔 때마다 강제철거 위기에 몰렸던 주민들의 애달픈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면서, 지난 2005년 우토로국제대책회의와 아름다운재단, 등이 우토로 땅 매입을 위한 모금 캠페인에 불을 당겼다. 지난 10월27일 토지 소유권자인 서일본식산 쪽과 주민회가 우토로 땅의 절반인 3200평을 5억엔(약 39억4천만원)에 매입하기로 계약한 것은 긴 노력의 결실이었다. 남은 것은 국회의 ‘결심’이었다.

“이번에 한국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우토로에 30억원이란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도 감격스러웠습니다.” 김교일 우토로마을 주민회 회장은 11월9일 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그동안 우토로를 도와주신 14만 명이 넘는 한국 시민 여러분, 그리고 지원활동을 해주신 우토로국제대책위를 비롯한 활동가 여러분, 한국 정부와 국회의원 선생님들에게 마음속으로부터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땅 문제가 매듭지어졌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우토로 주민들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공영주택 건설을 전제로 한 마을 재정비 사업이 다음 과제로 기다리고 있다. 우토로 마을을 관할하는 우지시 쪽은 지금까지 “토지 소유권 문제가 해결되면 역사적 배경을 고려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배덕호 국제대책회의 사무국장은 “국회 본회의에서 예산지원안이 최종 통과되면, 곧바로 주민회와 함께 우지시와 교토부 등에 마을정비사업 신청서를 제출하고 공영주택 건설을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이 있으니 두려울 게 없다”

“앞으로 국회 본회의에서도 지원 예산안이 가결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우토로 토지의 약 절반을 매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토지 매입 이후에도 동네 안에 공용주택 건설을 비롯한 마을 재정비 사업에 일본 정부가 나서도록 하기 위한 투쟁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조국이 있으니, 이제 두려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끝까지 싸워 이길 것입니다.” 김교일 주민회장은 “우리 1세대 어른들의 피눈물이 스며 있는 이 땅을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내고, 역사를 보존하고, 대를 이어 이 땅에서 살아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던 우토로의 투쟁,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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