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버마 군부의 궁여지책, 일선 부대에 모병 인원 할당… 매 맞고 끌려온 소년들도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함성이 사라졌다고 깃발마저 내린 것은 아니었다. 얼어붙은 거리의 뒤안길에서 저항의 숨결은 멈추지 않고 있었던 게다. 10월31일 버마 북부 마그웨이 지역 파코쿠에서 100여 명의 승려들이 벌인 거리시위는 군홧발에 무참히 짓밟힌 뒤에도 저항의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미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발표[%%IMAGE4%%]
“아니, 두렵지 않다. 물론 체포는 두렵다. 살고 싶기에 죽음이 두렵다. 체포를 피해가면서, 정부와 맞서 싸울 것이다.”아랍 위성방송 는 11월1일 인터넷판에서 이날 시위에 참가한 승려의 말을 따 “저항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불교 수도원 80여 곳이 몰린 파코쿠는 지난 9월5일 시위에 나선 승려 3명이 군부의 강경 진압으로 부상을 당하면서, ‘2007년 버마 민주화운동’의 물꼬를 튼 곳이다.
저항이 주춤해지면서 군부는 수도 랑군 도심을 옥죄던 바리케이드와 야간 통행금지령은 거뒀다. 거리를 점령했던 군인들의 수도 현저히 줄었다. 그럼에도 여전한 것은 권좌를 틀어쥔 군부다. 그리고 벼랑 끝에 선 버마 민중의 삶 또한 여전하다. 시위를 촉발한 원인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한 저항은 언제고 재개될 게다. 파코쿠 시위에 참여했던 한 승려는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단파 라디오방송 와 한 인터뷰에서 “이번 시위는 지난달 시위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버마 군부가 무차별 징집에 골몰하고 있는 이유다.
부패한 군대에 신병이 몰릴 리 없다. 자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는 군대가 환영받는 법은 없다. 버마 군부는 탈영과 징집 기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년 가까이 이어져온 타락한 군부의 권력 놀음이 가져온 당연한 결과다. 저항의 숨소리가 거세질수록 더 많은 병사를 끌어모아야 한다. 미국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10월31일 내놓은 ‘병사로 팔리다-버마의 소년병 징집 및 활용 현황’이란 제목의 보고서는 권력 지키기에 혈안이 된 버마 군부의 추악한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16살 마웅저우(가명)는 ‘타트마다우 챠이’(버마 육군)에 벌써 두 번째 강제 징집됐다. 지난 2004년 14살 때 처음 군적에 올랐고, 이듬해 탈출했다가 다시 군대로 끌려왔다. 마웅저우를 징집했던 사병은 한 달치 임금에 해당하는 2만챠트(약 1500원)와 쌀 한 자루, 식용유 한 깡통을 보상금으로 챙겼다. 마웅저우를 ‘구입’한 부대는 다시 그를 모병센터에 넘기고, 몸값으로 5만챠트를 챙겼다. 두 차례나 팔려 군인이 된 소년 마웅저우는 순찰근무에 나설 때마다 행렬의 맨 앞이나 맨 위에 서는 걸 자원한다. 스스로 위험에 노출되는 이유는 뭘까? 지난 8월 휴먼라이츠워치 활동가를 만난 마웅저우는 “군대에서 내 목숨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10살 소년도, 키 130cm·몸무게 31kg 소년도
“버마에선 마웅저우 또래의 소년들이 상품 취급을 받고 있다. 상부에서 떨어진 모병 할당량을 채우느라 군 지휘관들이 혈안이 돼 있다 보니, 말 그대로 사고파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보고서에서 “군의 사기는 낮고, 탈영률은 높은데, 지원병이 부족한 상황 탓에 소년병 모병을 통해서라도 머릿수를 채우려는 각급 부대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어리게는 10살짜리 소년까지 강제 모병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고발했다.
버마 군부는 그동안 소년병 강제 징집을 강력히 부인해왔다. 유엔 등 국제사회의 비판이 나올 때마다 “모든 병사는 지원병이며, 최소한 18살이 넘어야 입대를 허락한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휴먼라이츠워치가 현장에서 만난 버마군 장병들은 이런 군부의 주장을 일축했다. “자원입대가 아니라 징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상당수는 어린이들”이란 게 그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보고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자원입대하는 젊은이들이 줄어든 반면, 버마 군부조직은 급격히 확대돼왔다”며 “게다가 탈영률까지 높아지면서 인력 부족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모병 전담반이 전국에 배치됐으며, 일선 부대에도 자체 모병 인원을 할당하기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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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난해 여름 버마 군부는 한 달에 7천 명의 신병을 모집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이는 앞선 2005년 한 달 평균 모병 인원의 4배에 이르는 수치였다. 모병 할당 인원을 채우지 못하는 부대장들에겐 직위해제 등 중징계 조처가 내려졌다는 게 휴먼라이츠워치의 보고다. 이 단체는 보고서에서 “할당 인원을 채우기 위해 각급 부대장들은 휘하의 장병들에게 현금은 물론 식량과 진급, 조기 전역 등 각종 유인책을 제시하며 모병을 독려했다”며 “다른 한편으로 민간업자와 경찰 등을 통해 현금을 주고 소년들을 사들이는 일도 다반사로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보면, 지난 2005년 현재 신병 1명을 데려오면 군부는 모병자에게 2만5천∼5만챠트를 지급했다. 이 정도 금액이면 일반 사병의 두 달치 월급을 넘는단다. 모병관들은 기차역이나 버스 정류장, 시장 등 공공장소에서 ‘목표물’을 물색한다. 혼자 있는 청소년이 가장 쉬운 먹잇감이다. 우선 돈이나 옷가지, 일자리와 공짜 교육 기회 등을 내세우며 달랜다.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공공장소에서 어슬렁거렸다거나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체포하겠다고 어른다.
어르고 달래도 말을 듣지 않는 경우엔 폭력이 동원되기도 한다. 휴먼라이츠워치가 현지에서 만난 소년병 출신 중에는 불법 감금되거나, 수갑이 채워진 상태에서 뭇매를 맞은 끝에 ‘자원입대’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두어 차례 손을 바꿔가며 사고팔기를 거듭한 끝에, 군복을 입은 아이들도 상당수”라는 게 이 단체의 지적이다. 이 단체는 11살 때 징집된 소년의 말을 따 “입대 당시 키가 130cm에 몸무게가 31kg밖에 안 됐지만, 모병관이 의무장교에게 뇌물을 줘 신체검사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강제 징집 더욱 늘어날 듯
버마 군 병력 가운데 소년병이 차지하는 비율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휴먼라이츠워치도 보고서에서 구체적인 추정치를 내놓진 않았다. 다만 보고서는 현지에서 만난 20명의 소년병 출신자들의 증언 내용을 따 “18살 이하 소년병 비율은 각급 부대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이지만, 새로 편성된 부대일수록 소년병 비율이 높다”며 “적게는 전체 병력의 5%에서 많게는 50~60%까지 소년병으로 채워진 부대도 있다”고 전했다. 버마 당국이 공식적으로 밝힌 육군 병력이 42만 명에 이른다니, 산술적으로 적어도 2만여 명의 소년병이 복무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지난 9월 민주화 시위가 불을 뿜기 이전에도 대부분의 버마 젊은이들은 군 입대를 피해왔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복무 환경, 강압적인 군 문화 탓이다. 병사들을 동원해 무고한 시민들에게 총칼을 휘둘렀으니, 자원입대는 더욱 줄어들 터다. 버마에서 소년병 강제 징집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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