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강판권] 나무 속 역사의 향기를 맡다

등록 2007-06-15 00:00 수정 2020-05-03 04:25

▣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

나무로 먹고사는 남자가 있다. 책상에는 너덧 종의 식물도감이 펼쳐져 있고, 주말이면 천연기념물 나무들을 보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 ‘숲과 문화’ ‘숲과 건강’ 같은 강좌를 일반인과 학생 대상으로 연다. 누가 보면 식물학자나 생태학자로 오해하기 십상인 그는 사실 사학과 교수다.

강판권(47) 계명대 교수가 나무를 소재로 한 책을 또 펴냈다. 이미 등을 발간하면서 ‘인문 식물학자’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펴낸 책은 . “나무의 일생을 한자로 풀어냈다.” 나무 목(木), 열매 실(實), 뿌리 근(根) 등 나무 구성요소를 일컫는 한자부터 나무가 일생을 마치면 쓰이는 기둥 주(柱), 서까래 연(椽) 등의 한자를 가지고 나무 이야기를 한다. 6월 말에 출간된다. 이 책 집필은 이미 끝냈고 지금은 을 준비 중이다. 나무 이름이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학명 분석은 물론이고 그 나무와 관련한 생태적·문화적 이야기 등 모든 것을 아우른다. “전공인 역사학과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을 합해 나무에 관한 ‘사료’를 정리하고 싶었다.”

강 교수는 쉴 때도 나무를 보러 다닌다. 주말마다 떠나는 천연기념물 나무 순례를 통해 에너지를 충전한다. “500년, 600년을 한결같이 서 있는 그 나무들을 보면 경외감이 절로 생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충북 괴산군 화양면 청천리에 있는 ‘왕소나무’(천연기념물 290호)다. 나무 기둥 전체가 황토를 발라놓은 것처럼 벌겋다고 한다. 이외에도 경남 합천군 묘산면 소나무(천연기념물 289호), 경북 상주시 화서면의 반송(천연기념물 193호) 등은 평일에 연구실 책상 앞에서도 아른거린다고 한다. 언제나 이들 나무에다 큰절을 한다니 그 존경심을 알 만하다. 지금은 야심차게 계명대 캠퍼스를 생태 학습촌으로 꾸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캠퍼스에 삼국유사 코스, 한시 코스 등을 만드는 것. 삼국유사 코스에는 에 나오는 나무들을 쭉 심어 나무를 통해 역사를 호흡하고 그 시대를 느끼게 할 계획이다. 내년 5월에 완공된다고 하니, 고랫적 신라의 향기를 느끼고 싶다면 기다려볼 일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