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사진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발자국 소리에 잠을 깼다’고 하더군요. 발자국은 발이 지나간 뒤 생기는 자국입니다. 그 자국이 어떻게 소리를 내죠? 발걸음 소리가 맞겠죠?”
경기도 수원 농촌진흥청 연구개발국 연구관리과의 성제훈(39) 박사가 매일 2천 명이 넘는 이들에게 보내는 ‘우리말 편지’(이메일)에는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뿐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는 순우리말과 고쳐야 할 일본어투도 단골로 실린다. “‘방치하다’는 放置(ほう-ち·바우치)라는 일본어에서 온 말로, 국립국어원에서 ‘내버려두다’ ‘버려두다’로 바꿨습니다.”
성 박사가 우리말 전도사로 나서게 된 계기는 한 농민의 전화에서 비롯됐다. “2002년 라는 농업잡지에 글을 썼는데, (전화한 농민은) ‘아무리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다비(多肥)하면 도복(稻覆)한다’(비료를 많이 뿌리면 벼가 쓰러진다)는 식의 일본어투를 별 거리낌 없이 썼다고 한다. ‘과습(過濕)하면 열과(裂果)가 많이 발생한다’도 자주 쓰던 표현이었다. ‘너무 습하면 과일이 터진다’는 뜻이란다(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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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전화에 정신이 번쩍 든 성 박사는 곧 우리말 공부에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우리말에 관한 책을 다양하게 읽고, 국립국어원에서 실시하는 우리말 교육까지 받았다. 2003년 미국 미주리대 교환연구원으로 파견 나가 있는 동안에도 우리말 익히기는 계속됐다. 창피함에서 비롯된 공부였지만, 번역을 잘할 수 있는 바탕은 곧 우리말 실력이라는 ‘학문적 필요성’도 그에 못지않았다. 성 박사는 이렇게 얻은 한글 지식을 이메일로 직장 동료들과 나누기 시작했고, 입소문에 힘입어 어느덧 독자가 2천 명을 웃돌게 됐다. 그가 지난 3년간 보낸 우리말 편지는 700~800건(650쪽)에 이른다. 성 박사의 이메일(urimal123@hanmail.net)로 신청하면 지난 편지들을 한꺼번에 받아볼 수 있다.
전남 해남의 농사짓는 집안에서 태어난 성 박사는 어릴 적부터 줄곧 농업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는 대학교 전공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초반엔 농업고 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성 박사는 농촌진흥청의 9개 연구조직 가운데 하나인 농업공학연구소에서 일해왔으며, 지금은 본청기획실에서 파견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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