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자본의 손발과 병풍’ 기사에 대한 삼정KPMG 윤영각 대표의 항변 … 진념 전 부총리 영입은 로비와 무관하며 론스타의 부실채권 ‘싹쓸이’ 막기도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제605호(4월18일치) ‘특집’으로 실은 ‘외국 자본의 손발과 병풍’과 관련해 국내 회계법인인 삼정KPMG 쪽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사실과 달리 윤영각(53) 삼정KPMG 대표를 마치 외국 자본의 앞잡이인 양 그려 명예를 훼손했다는 요지였다.
당시 특집 기사는 외환은행을 인수했다가 되파는 과정을 밟고 있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를 비롯한 외국 자본들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이들의 이력과 이에 얽힌 구설을 담았다. 윤 대표의 삼정KPMG는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때 회계 대리 업무를 맡았다는 점과,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고문으로 영입한 것 때문에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삼정KPMG 쪽은 특집 기사에서 연상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윤 대표는 오히려 특정 업체의 독주를 막으려고 노력했으며, 국가와 국내 기업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은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곧바로 윤 대표의 주장을 들으려 했지만, 그가 사업차 유럽에 장기간 머물러야 할 처지여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잠시 귀국했을 때 짬을 내 1시간 남짓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는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 빌딩 10층 삼정KPMG 응접실에서 이뤄졌다.
진념에게 로비 말라 엄명
삼정KPMG를 둘러싼 구설은 주로 진념 전 부총리를 고문으로 영입한 데서 불거진 듯하다.
“(진 전 부총리가 우리 쪽에) 조인(합류)한 게 2003년이었으니 2년 반 정도 됐다. 그전부터 잘 알던 사이는 아니다. 그분은 평생 공직에 있다가 경기도지사에 출마해 낙마한 뒤였다. 한 법무법인의 대표가 ‘모시려’ 했는데, 여건이 안 된다며 같이 ‘모시자’고 하더라.” 그래서 고문으로 위촉하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모신다’는 표현이 일반인들한테는 오해를 살 수도 있겠는데, 윤 대표는 바깥에서 생각하는 ‘로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고문으로 모실 때 (로비) 부탁을 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했다. 그동안에 쌓은 경험과 지혜, 명철함을 담은 글로벌한(국제적인) 아이디어를 얻고자 함이었다. 그분 직함이 ‘국제 고문’이다. 파트너(회계사)들한테도 절대 부탁 같은 거 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모실 땐 마음 편하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하게 있으면서 공직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전수받으면 (영입한 쪽에선) 그걸로 만족해야 한다.”
진 고문이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삼정이 각종 프로젝트에 (사업) 제안서를 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 준다. 그 자체가 큰 도움이 된다.”
고위 관료 출신은 ‘존재’ 자체가 현직에 있는 후배 관료들에게 압박을 준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면 관료 출신들은 아무 데도 일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건 아니고, 관련 있는 부분일 경우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론스타, 삼정KPMG와 관련된 외환은행 인수·매각은 (진 고문이 재직한) 정부 부처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사안 아닌가?
“(외환은행 문제와 관련해 우리 쪽에서) 특별히 부탁하거나 (진 고문이) 움직인 게 없다. 그분은 굉장히 학구적인 분이다. 서강대에 강의도 나가고 있다. 산업 전문성을 키워야 할 우리로선 업계 흐름, 오랜 경험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원할 뿐이다. 미국도 ‘회전문’을 통해 (민간 분야와 공직을) 왔다갔다 한다. 실상이 왜곡돼 억울하다.” 윤 대표는 이 대목에서 “외국에만 갔다 오면 외세의 앞잡이인 양 여기는 풍토”에 섭섭함을 토로했다. “고등학교 마치고 부모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외국서 생활하면서 인종차별을 받아가며 공부했다. 여름엔 웨이터로 일하고 주유소에서 펌프질도 했다. 물론, 유학파 중에 외국 자본의 앞잡이도 있을 수 있겠지만, 외국 갔다 왔다고 해서 다 앞잡이인 것처럼 보는 건 곤란하다.” 그는 “미국서 공부했기 때문에 미국인의 사고를 잘 이해한다”며 “(국가를 위해) 활용할 방법이 많이 있다”고 덧붙였다.
“장인이 달러 갖고 오라고 하시더라”
론스타와 삼정KPMG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1998년 6월 론스타가 사무실로 찾아왔더라. 몇몇 한국 기업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인수했으면 한다고 했다.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상환유예) 얘기가 나올 때였다. 론스타 외에 또 다른 펀드도 있었고, 골드만삭스도 찾아왔다.”
론스타가 그를 찾은 이유는 자산유동화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자산유동화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1997년 봄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한 후배로부터 자료를 건네받으면서였단다. “한국이 좀 이상하다는 내용의 자료였다. 9% 성장을 이루던 때였는데, 외환위기 징후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 자료를 건네준 후배는 (김학렬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아들인) 김영수 박사로 지금은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 가서 아는 동창들을 찾아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자산유동화법률’이 있느냐고 묻더라. 없으면 그것부터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들한테 자료를 얻어와 분석하고 관계 요로에도 이 얘기를 했다. 론스타가 그 소문을 듣고 찾아왔던 것이다.” 외환보유고가 38억~40억달러에 지나지 않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윤 대표는 “장인(박태준 당시 국무총리)께서 ‘국가가 외환위기에 빠졌는데, 너같이 미국에서 공부한 놈들이 달러 좀 갖고 와야지, 뭐하고 있느냐’고 하시더라”며 “어떻게든 투자를 이끌어야겠다 싶었는데, 마침 론스타의 요청이 있어 외환은행 부실채권 실사를 도와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노하우를 많이 배웠다. 그 이후는 성업공사(현 자산관리공사), 예금보험공사 편에 서서 제값을 받아내도록 노력해 (결과적으로) 외환보유고 확충에 기여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때 회계 대리를 맡은 것과 관련해 (은행 건전성의 대표적 잣대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 조작 의혹에 연루돼 있다는 등 구설도 있었는데….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다고 (자산·부채) 실사를 도와달라고 왔더라. 재무 실사인데, 이 결과는 바이어(론스타)에게 주는 것이다. 실사의 주목적은 자산과 부채 규모를 파악하고, 숨겨진 부채를 찾아내는 것이다. BIS 비율과는 전혀 무관하다. 비율 조작 얘기는 말도 안 된다.”
감사원·검찰 조사의 관전 포인트
윤 대표는 삼정KPMG와 론스타가 한때 불편한 관계에 빠진 적도 있다며 일화를 하나 들려줬다. “1999년 론스타와 경쟁 관계인 외국계 자본 쪽에서 찾아와 느닷없이 ‘대한민국이 텍사스냐’고 하더라.” 얘기인즉 (미국 텍사스주에 근거지를 둔) 론스타가 한국 은행들의 부실채권을 ‘싹쓸이’하려고 각 은행들과 합작 회사를 차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론스타가 부실채권 인수 업무를 독점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래선 안 된다 싶어 당시 국무총리인 장인께 ‘이건 안 된다. 막아야 한다’고 했다. 총리실에서 조사해 각 은행들을 통해 확인한 뒤 중단시켰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한 법무법인, 회계법인의 구실은 윤 대표의 주장대로 상당 부분 잘못 알려졌을 수도 있다. 외환은행 인수 의혹에 대한 감사원, 검찰의 조사 결과를 관전할 때는 이 부분도 하나의 포인트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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