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병 기자hellios@hani.co.kr
문명을 만들고 파괴를 부르는 바퀴가 들어가지 못하는 땅. 아무에게나 발품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땅. 천상 산사람 장문삼(64)씨는 태고의 신비가 깃들어 있는 땅에서 넉넉하고 푸근한 어머니의 숨결을 느낀다. “최근 2년 동안 5천m 이상의 고개를 수도 없이 넘었어요. 갈 때마다 산은 그대로인데 형태는 볼 때마다 다른 히말라야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죠. 희박한 산소와 열악한 환경은 나이는 숫자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어요.”
그는 산악인 고 고상돈씨의 ‘대장’이었다. 고씨가 1977년 9월15일 낮 12시50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오를 때 등반대장으로 전진 베이스캠프에서 만세를 불렀다. 직장에 사표를 내고 히말라야 로체샤르를 등반한 뒤, 네팔 관광청에 등반 허가를 신청한 게 1971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에베레스트 등반 20주년 기념으로 베이스캠프를 찾아 산 사진을 찍기로 결심했다. 등반 선진국이라면서도 번듯한 산 사진집 하나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내에 들어오자마자 사진 작업에 매달렸어요. 2년 과정의 사진아카데미에 등록해 정식으로 공부했어요. 국내의 명산을 섭렵하고 일본의 산도 찾았어요. 대충 준비가 이뤄진 2004년에 회사 일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히말라야로 떠났어요.” 그는 올해 3월까지 길면 두 달, 짧게는 한 달씩 7개월가량 히말라야에 머물며 1만 컷의 사진을 찍었다. 그 가운데 70여 컷을 묶어 (관훈미술기획 펴냄)이라는 사진집을 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는 다시 배낭을 꾸리려고 한다. 1980년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을 챙겨 뉴질랜드 마운트 쿡, 남미 아콩카구아, 유럽 알프스 등을 등반했던 코스를 다시 밟으려고 하는 것이다. “26년 전에 둘이 출발했는데 동행인이 남미에서 동상에 걸려 도중 하차했어요. 홀로 30kg 이상 나가는 배낭을 들고 10개월 동안 세계를 누볐지요. 이젠 나이가 있어서 10년 장기 프로젝트로 세계의 산 기행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는 성공한 엔지니어이기도 한다. 퇴사한 공사에 곧바로 ‘복귀’해 부사장까지 역임한 것도 흔치 않은 ‘도로 및 공항 기술사’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창업한 회사(서영엔지니어링)의 상임고문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정년이 없다. “사진가로서 할 일이 태산 같아요. 세계의 명산을 오르면서 국내의 비경도 렌즈에 담으려고 해요. 언제 시작해도 10년만 투자하면 전문성을 얻지 않겠어요. 은퇴자들에게 또 다른 시작을 권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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