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국제결혼 중개업체들 매매혼 관행 개선하고 자정 결의… <조선일보>는 베트남쪽에 해명성 사과했지만 진심은 안 읽혀
▣ 사진·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5월12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용사의 집. 전국에서 모인 국제결혼 중개업체 대표 20여 명이 ‘국제결혼정보업체 자정결의대회’라고 쓰인 현수막 앞에서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다. 김윤수 국제결혼정보업협회 회장은 “인권단체가 사기집단으로 매도하는 속에서 자정결의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며 개회사를 했다. 사장들은 오른손을 올리고 선서를 시작했다. 선서 내용은 △일대일 맞선으로 결혼 진행방법 개선 △불법 현수막 자제 및 내용 수정 △베트남법 준수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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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 잠잠해지면 나쁜 관행 살아날 것”
베트남에서 ‘4·21 조선일보 사태’라고 불리는 <조선일보>의 베트남 국제결혼 단체맞선 과정에 대한 현지 르포 이후, 지난 한 달 동안 한국과 베트남은 숨가쁘게 돌아갔다. 마침 국제결혼 문제를 기획하고 있던 <한겨레21>은 주한 베트남 유학생들의 반발 움직임을 포착해 이들의 항의 기자회견을 준비 과정부터 베트남 여성연합회의 반응이 나오기까지 세세히 보도했다(<한겨레21> 608호 참조).
“<조선일보> 기사가 베트남 여성을 상품 취급했다”고 주장한 유학생들의 기자회견 소식이 베트남 언론에 전해지자, 베트남 사회는 들끓었다. 베트남 최대의 여성조직인 베트남 여성연합회가 한명숙 국무총리와 한국 정부 각 기관에 항의서한을 보냈다. 5월3일 한-베트남 외교정책 협의를 위해 방한한 응웬 푸 빙 베트남 외교차관은 ‘4·21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이런 문제가 터져서 유감이며 재발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입장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베트남 하노이와 호찌민의 결혼중개업체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베트남 공안이 단속을 강화해, 일부 한국인들이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고 업체 관계자들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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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각 성에서도 한국인과의 결혼증명서를 내주지 않기 시작했어요. 타이닌성은 이유를 불문하고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간 업계가 공멸합니다.” 최근 베트남에서 돌아온 김영옥 럭스클럽 사장은 현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그는 “4·21 사태 뒤 단체맞선을 일대일 맞선으로 바꿨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결과는 괜찮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혼중개업체의 매매혼적 관행이 쉽사리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결의대회에 참석한 사장들은 “우리만 손해 보는 거 아니냐”며 걱정이 가득했다. 일부 사장들은 “베트남 여성 인권이 중요하듯이 그곳에서 사업하는 우리의 인권도 중요하다” “우리는 타국에서 국익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베트남에서 불법으로 규정돼 구속되기도 한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 국제결혼업체의 사장은 “단속 열풍이 잠잠해지면, 예전의 나쁜 관행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의해도 지키기가 쉽지 않아요. 일대일 맞선으로 바꾸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만큼 체류 비용이 늘어나거든요. 500만~600만원까지 내려가는 출혈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죠.”
<조선일보>는 보름이 지나서야 베트남 여성연합회에 사과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조선일보>에 의해서가 아니라 베트남 언론에 의해 알려졌다. 베트남 관영 유력지 <뚜오이쩨>는 사과문 전문을 5월11일에 실었다. <조선일보>는 “국제결혼 현상을 결코 폄하하려는 의도가 없었으며, 또 일부러 미화하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응옌 티 타잉 여성연합회 부위원장은 <뚜오이쩨>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일보>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너무 많이 해명하고 있다”며 ‘해명성 사과’에 일침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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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중개업 관련 법률안 국회 계류중
한국의 인권 감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4·21 베트남 사태는 어느덧 소강 국면을 맞고 있다. 그러나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도 성찰하는 법을 배우진 못한 것 같다. 특히 <연합뉴스> 등 주류 매체들에서는 ‘베트남에서 반한 감정이 일어 한류에 찬물을 끼얹을 우려가 있다’는 식의 국익론이 대세를 이뤘다.
매매혼적인 맞선 관행, 인권침해적인 광고 문구 등 보편 가치인 인권을 지키지 못한 ‘가해국가’로서의 반성이 아닌 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차원이었던 것이다.
국제결혼을 매매혼 사슬에서 해방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김춘진 열린우리당 의원실의 유경선 비서관은 “국제결혼업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제결혼 중개업체는 세무소에 사업자 등록만 내면 영업이 가능하고,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는다. 유 비서관은 결혼중개업을 허가제로 바꾸고, 정부가 관리·감독하는 동시에 인권단체 등에 의한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은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국제결혼정보업협회도 이 법률안에 대해서 찬성하고 있다. 유 비서관은 “현재 보건복지위가 노인수발법에 묶여 있어 내년쯤에나 본격적인 심의에 들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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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욕적이지만 우리도 반성하자” |
▣ 호찌민=하재홍 전문위원 vnroute@naver.com
“혀 길게 내밀어봐, 이~ 크게 하고 이빨도 자세히 보여주고…. 그래, 손도 앞으로 해서 손등하고 손바닥 좀 보여주고. 좋아 좋아, 한 번 일어나서 한 바퀴 천천히 돌아봐, 천천히… 됐어. 신발 벗고 똑바로 서봐. 어때요, 신랑님들! 이상 없는 것 같죠? 그럼 한번 가서들 안아보세요.”
3년 전, 내가 가짜 맞선자가 되어 문화방송
베트남 네티즌들이 주요하게 지적한 것은 베트남 여성이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굴종을 감내하는 대가가, 한국의 시어머님을 모시고 밥을 짓는 것에 불과함에도 ‘키 큰 체형’ 등을 언급하고 얼굴 사진까지 내보이며 베트남 여성을 상품처럼 다룬 보도 태도였다.
‘상업 광고’ ‘베트남 여성 비하’ 논란에서 좀더 깊이 있게 접근한 네티즌들은 기사의 사실 여부에 주목했다. 이들 대부분은 “사실이다. 베트남 농촌의 가난은 그들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 그래서 선택하는 게 국제결혼”이라고 인정했다.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의 잘못이 하나라면 베트남의 잘못이 열 가지”(응우옌 부 롱), “치욕적이지만 근본 원인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먼저 각성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기엉)는 의견도 있었다.
네티즌들은 민족적 자긍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엄중한 문제다. 베트남인들의 명예, 품격, 인격, 인본에 관한 사안이다. 우리에게 고통과 치욕을 안겨주기 때문에 이런 유의 기사와 결혼이 없도록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부응아) 그 상처의 정도는 베트남의 여성 영웅인 ‘쯩 자매’와 ‘찌에우’까지 되새기며 “그분들의 자랑스러운 후손으로서 그에 합당한 역할을 해야 한다”(레비엣)고 호소할 만큼 깊었다. 강경파 네티즌들은 “베트남의 전통과 명예에 손상이 없도록, 전국에서 이런 매매혼을 금지하라”(쩐 비엣 하)는 요구를 내놓았고, 다수의 온건파들은 “국제결혼은 문제될 게 없지만, 매매 방식의 결혼은 옳지 않다. 법률을 정비하고, 농촌 여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NT)며 구조적 개선을 요구했다. 한편 “우리가 경제 발전을 이루면 이런 일은 저절로 없어진다”(투 닌)는 부국강병파도 있었고, “외국인과의 결혼중매업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합법화하고 전신 광고에 신상명세까지 자세히 기재할 필요가 있다”(응우이 비엣)처럼 ‘상업 논리’에 충실한 부류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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