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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나 닐라파이] 광주가 발견한 타이 무슬림의 인권

등록 2006-05-26 00:00 수정 2020-05-03 04:24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사악한 권력은 우리의 목숨을 앗아갈 순 있어도 영혼을 앗아갈 순 없다.”
2006년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찾은 앙카나 닐라파이지트(49)는 수줍은 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5월19일 서울 신촌 홍익대 앞 평화카페 아게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나는) 타이와 아시아 각지에서 국가권력의 폭력으로 고통받는 여러 피해자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04년 3월12일 ‘실종’된 타이의 무슬림 인권변호사 솜차이 닐라파이지트의 부인이다.
불교국가인 타이의 남부지방인 빠따니·얄라·나라티왓 등지는 무슬림 인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타이족이 현재 타이 영토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따로 왕국을 이루고 살아왔던 이들은 타이에 합병된 이후에도 자기 문화를 고수해왔다. 강압적인 동화정책을 시도했던 타이 정부가 1960년대 이후 ‘통합’ 쪽으로 정책을 바꿨지만, 중앙정부와 무슬림 공동체 사이의 마찰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2004년 1월 나라티왓 일대 18개 학교에서 방화사건이 잇따라 벌어졌다. 경찰은 곧바로 5명의 용의자를 체포했지만, 이들의 혐의점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확보할 수 없었다. 전기충격과 소변을 입에 붓는 등의 고문이 가해졌다.” 앙카나는 “이들의 소식을 들은 남편은 인권침해 사례를 정리해 총리와 법무장관, 국가인권위 등에 제소했다”고 말했다.

당시 타이 남부지역에선 경찰과 일부 무슬림 게릴라의 충돌로 유혈사태가 속출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타이 정부는 남부 3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한편 이슬람 지도자를 무차별 체포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솜차이는 계엄령 철회를 위한 서명운동도 주도하고 있었다. 그해 3월12일 승용차를 몰고 친구 집으로 향하던 그는 갑자기 들이닥친 괴한에게 납치된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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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은 차일피일 수사를 미뤘다. 저명한 인권변호사의 실종 앞에 정부는 “부부싸움 끝에 종적을 감춘 것”이란 해괴한 소리만 되풀이했다. 시민사회의 압력에 밀려 정부가 전담 수사팀을 꾸린 지 사흘 만에 방콕의 한 터미널에서 솜차이의 차량이 발견됐지만, 경찰은 제대로 감식조차 하지 않은 채 ‘행방을 알아낼 만한 증거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나마 독립적인 수사가 가능한 법무부 산하 특수수사국(DSI)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번번이 기각됐다. 앙카나는 그렇게 천천히 ‘투사’가 돼갔다.

그는 “실종은 끔찍한 폭력을 자행한 뒤 증거를 인멸하는 데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타이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오랫동안 지속돼온 문제”라며 “불의한 폭력에 맞서 정의와 법치를 위한 싸움은 궁극적으로 세계 평화와 지구상 모든 인류의 화해를 위한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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