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미군기지 확장반대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경기 평택 대추리에 가면, 이제는 곧 허물어질 마을 담장마다 깨알같이 쓰인 문인들의 시를 읽을 수 있다. 대추리 옆 마을인 평궁리에 사는 류외향(33) 시인과 서수찬(44·사진) 시인이 대추초등학교 건물 한켠에 각각 ‘빈들’과 ‘대추리 만인보 1’를 쓴 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대추리 담장은 이곳을 다녀간 시인들이 써내려간 시의 흔적들로 빼곡하다.
이 가운데 사람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불러모으는 것은 서수찬 시인의 연작시 ‘대추리·도두리 만인보’다. 그는 “고은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만인보’를 쓰는 것이 주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우는 데 가장 적합한 형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다. 평소 주민들을 아는 사람이라면, 서 시인의 묘사를 보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만큼 그의 시는 꼼꼼한 주민 관찰이 돋보인다.
서 시인은 대추리 김순득 할머니의 주름살을 보고 ‘말라버린 황새울의 물줄기’를 떠올리고,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 김택균 사무국장의 듬직한 모습에서 ‘홀로 남아 무너져가는 집을 버티고 선 서까래’를 떠올린다. 그가 대추초등학교 벽에 쓴 최관식 할아버지에 대한 첫 번째 시는 5월4일 정부의 행정대집행으로 무너져버렸다.
서 시인이 대추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올해 1월부터다. 평택 도두리가 고향인 가수 정태춘씨가 주도해 만든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와 주민 주거권과 생존권 옹호를 위한 문예인 공동행동, 들 사람들’에 참여하면서 대추리 일꾼이 됐다. 5월11일 서울 세종로 동아일보 앞 촛불집회장에서 만난 시인은 “이 싸움은 단순한 주민 생존권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후 우리 한반도의 평화 문제가 걸려 있는 중요한 문제죠. 우리와 미국의 관계를 봤을 때 기지가 완성되면 어떻게 되는지 전쟁에 끌려다녀야 합니다.”
광고
그의 ‘만인보’는 14편까지 완성됐다. 아마도 그의 시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시는 국가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서 저지른 죄악에 대해 고발하는 가장 아름다운 ‘흉기’가 되어 있을 것 같다.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보령머드 ‘장인’의 5천원 뚝배기…“다이소 납품, 남는 건 인건비뿐”
헌재, 5 대 3 선고 못 하는 이유…‘이진숙 판례’에 적시
마은혁 불임명 ‘위헌’ 판단한 헌재…‘8대 0’ 외 다른 길 있나?
[단독] “김용현 취임 뒤 오물풍선 경고사격 지시, 계엄 명분 만들기라 생각”
‘헌재 비난’ 안창호 “탄핵 선고 존중” 돌변에…“사과부터 하라” 비판
김은숙 작가 “헌재, 거기 괜찮아요? ‘시그널’ 무전기로 물어보고파”
“반국가세력 언론인으로 척결되겠구나, 두려웠다”…‘707에 포박’ 기자 증언
입만 열면 ‘법치주의’ 한덕수·최상목…“직무유기죄 처벌해야”
나스닥 11% 폭락…트럼프 ‘관세 전쟁’ 50일 처참한 성적표
[사설] 헌재 ‘윤석열 파면’ 지연이 환율·신용위험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