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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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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박경태] 있다, 혼혈인이 있다

등록 2006-05-19 00:00 수정 2020-05-03 04:24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기지촌 여성을 다룬 다큐멘터리 <나와 부엉이>의 박경태(31·오른쪽) 감독이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나와 부엉이>가 기지촌 여성을 다뤘다면 이번 작품 <있다 There is>(제작 두레방)는 기지촌 여성의 자녀, 혼혈인을 다루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기지촌에서 태어난 혼혈인 박명수(47·왼쪽)씨다.
다큐멘터리는 덤덤하게 박씨의 일상을 따라간다. 박씨는 술에 취해 카메라 너머 박 감독을 향해 죽고 싶다고 소리를 지르고 박 감독은 카메라를 세워두고 박씨 곁에 가서 얘기를 들어준다.

작은 박씨의 방에서, 야구장에서, 바닷가에서 나누는 박씨와 박 감독의 수다를 듣고 있노라면 혼혈인으로 힘들게 살아온 박씨의 외로움이 전해진다. 박 감독은 “설명하기보다 우리 사회에서 혼혈인으로 살면서 느끼는 명수형의 외로움을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혼혈인이기에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혼혈인도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며 “명수형의 일상을 통해 사회 속에서 함께 살고 있는 혼혈인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감독과 박씨가 처음 만난 것은 2003년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기지촌 혼혈인 인권실태조사’ 조사원이었던 박 감독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혼혈인이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전화번호만 가지고 연희동을 뒤져 박씨를 찾아냈다. 그렇게 박 감독과 만난 박씨는 2004년부터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박씨는 “내 얘기가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만 내 허물을 보여주고 내 속에 응어리져 있는 마음을 보여줬으면 했다”며 쾌활하게 웃었다. 2년 넘게 작업을 하다 보니 박 감독과 박씨는 형제나 다름없는 사이가 됐다. 박 감독은 박씨가 진행하고 있는 소송을 도와주기도 하고 가끔 문제가 생겨 새벽에 경찰서에서 전화를 하면 한걸음에 달려와주기도 한다.

하인스 워드가 방한한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지났다. 물론 혼혈인에 대한 관심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박 감독은 “하인스 워드과 관련해 모든 언론은 ‘혼혈인이 왜 차별받는가’가 아니라 그저 자극적인 소재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일침을 가했다. 다음 작품으로 베트남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박 감독은 혼혈인에 대한 심층적이고 장기적인 관심과 합리적인 대안 마련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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