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코피 흘리는 총리.’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5월5일치 1면 제목이다.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끄는 집권 노동당이 전날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것을 빗댄 기사다. 지난 1997년 봄 44살의 나이에 ‘185년 만의 최연소 총리’ 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세계 무대에 등장했던 그는 5월2일로 집권 만 9년째를 맞았다.
블레어 총리가 집권 이후 최대의 정치적 시련에 직면했다. 5월5일 오전 현재(한국시각) 개표 절차가 마무리된 152개 선거구에서 보수당은 252석을 늘린 반면 노동당은 238석을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 얄궂게도 이번 선거가 실시된 5월4일은 1979년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장기 집권의 문을 연 날이다.
애초 이번 선거는 블레어 총리 집권 3기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띠었다. 하지만 선거를 코앞에 두고 노동당 핵심 인사들이 잇따라 추문에 휩싸이면서 패배는 예견됐다. 지난 4월25일 찰스 클라크 내무장관이 1999년부터 최근까지 살인범과 성폭행범 등 1500여 명의 외국인 범죄자들을 국외 추방 등의 조처 없이 석방했다는 폭로가 나오더니, 이튿날엔 존 프레스콧 부총리가 24살이나 어린 비서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사실이 공개됐다.
선거 참패가 분명해지면 블레어 총리는 즉각 대대적인 내각 교체에 나설 뜻을 밝혔다. 교체 대상에는 자신의 최측근인 프레스콧 부총리를 포함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을 피해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전통적으로 노동당 정부에 우호적인 <가디언>도 5월5일치 사설에서 “노동당 역사상 최악의 선거 결과 가운데 하나”라며, 블레어 총리의 개각 움직임에 대해 “흔들리는 통제력을 만회하기 위한 총리의 필사적 몸부림”이라고 혹평했다. 이 신문은 “이제는 나이 먹고 가엽게 된 블레어 총리는 지난 1997년의 낙관적인 분위기가 아직 조금은 남아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을지도 모르겠다”며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남아 있는 게 더 이상 블레어 총리에 힘입은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세상만사가 원래 이렇게 무상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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