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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준] 수요시위 동갑내기, 15살의 외침

등록 2006-03-24 00:00 수정 2020-05-03 04:24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할머니, 절대 아프지도 늙지도 마세요. 저 나쁜 일본 정부를 이길 때까지 버티세요.”
15년째다. 3월15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700번째 수요시위를 벌였다.
이날의 명연설자는 이욱준(서울 대명중 2)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똑’ 소리 나는 이군의 연설를 듣고서 박수를 치며 눈물을 흘렸다.

이군은 정대협 수요시위와 동갑내기인 15살이다. 수요시위는 1992년 1월8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에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종군위안부의 실체를 인정하고 사과·배상하라는 요구였다. 그해 3월12일 이군이 태어났다.

“지난 1월에 알고 지내는 한의원 선생님의 소개로 수요시위에 참석하게 됐어요. 참 속상했지요. 과거 때문에 고통받는 할머니들이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정부는 방관만 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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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할머니들 앞에서 첫 연설을 했다. 이군은 “종군위안부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15년 전 첫 시위와 똑같은 요구사항을 일본대사관 담장 너머로 외쳤다. 한 할머니는 울면서 이군의 연설문을 챙겨 가져갔다고 한다.

역사적인 700번째 시위에 연사로 초청받은 이군은 이틀 전부터 연설 문안을 손수 작성해 고치고 또 고쳤다. 그때 세상을 뜬 종군위안부 할머니들도 생각났다고 한다. 올해 2월 세상을 떠난 박두리 할머니, 지난해에 돌아가신 김상희·박복순·김정순 할머니 등. 할머니들은 끔찍한 과거를 보상받지 못한 채 떠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230명의 피해자 가운데 105명이 숨을 거뒀다. 지난해만 17명이었다.

“일본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은 할머니들이 빨리 죽기만 바랄지 모릅니다. 그들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배상을 안 해도 됩니다. 하지만 세계 여론을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할머니들에게서 정의와 희망을 배웠다는 이군. 할머니들은 이군의 낭랑한 목소리가 믿음직스러운 듯 주름살 잡힌 얼굴을 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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