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이시진(30)씨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초등학생 학부모도 아니다. 그런데도 ‘어머니 운동’에 열심이다. 3월3일엔 매주 금요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어머니 급식 당번 폐지를 위한 모임’(공동대표 조주은 등)의 1인 시위자로 나섰다.
이씨는 몰랐다. 도시락 세대였기 때문이다. 혹시 조카의 엄마 대신 배식 당번을 나갔다가 참기 힘든 일을 겪었을까. 아니었다. 여성의전화 강연에서 조 대표를 만난 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가정에서든 사무실에서든 공장에서든 일하지 않는 어머니는 없는데도, 여성의 노동력은 언제든지 어머니의 이름으로 불러낼 수 있는 싸구려 노동력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주장에 공감이 갔다. 이씨는 ‘급식 당번제’에서 ‘성 차별’을 봤다. 아버지들이 급식 당번으로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보통 깨달았다고 해서 바로 몸을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이씨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미안해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폐지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영상물을 준비하는 일을 맡았다. 운동은 이씨를 바꿨다. 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여성학 공부를 하기로 맘먹었다.
“호주제가 폐지되는 등 큰 정책은 가닥을 잡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는 여성들이 차별을 받고 있어요. 급식 당번제에도 성 차별적인 요소가 있지요. 폐지모임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공식적으로는’ 급식 당번제가 없어졌지만, 당번표를 작성하는 주체가 학교에서 학부모회로, 당번이 봉사로 바뀐 정도로 거의 변화가 없는 곳도 많아요. 폐지된 줄 아예 모르는 어머니들도 많지요.”
그래서일까. 이씨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친구들을 보아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고 했다. 오히려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도 한단다. 정부에서 출산장려 대책을 요란하게 발표해도 미덥지 않다. 폐지모임의 조 대표는 “급식 당번을 폐지해놓고 결혼할 거래요”라고 말했다. 이씨의 말은 달랐다. “세상을 알면 알수록 별로 결혼하고 싶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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