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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 30년 구두공과의 선문답

등록 2006-01-26 00:00 수정 2020-05-02 04:24

▣ 부여=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그곳에서 김종기(53)씨를 만난 것은 차라리 우연이었다. 그는 미군기지 확장을 막기 위해 평택에서 출발한 ‘평화의 트랙터’들이 첫 밤을 묵는 부여 중앙로 에펠제과 골목 들머리에 앉아 있었다. 소아마비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장애인인 그는 골목 앞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다. 그는 태연한 얼굴로 “이곳에서 30년 동안 구두를 닦았다”며 웃었다. 낯을 조금 가리는 듯한 수줍은 웃음이었다. 문득, 대학 때 읽었던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등장하는 선량한 난쟁이가 떠올랐다.

“춥지 않으세요?”

“그냥 먹고는 사니까.”

그와의 대화는 선문답처럼 이어졌다. 김씨는 태어난 지 11달 만에 소아마비에 걸렸다. 10살 때 초등학교에 들어가 16살에 졸업했다. 중학교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시골에서 장애인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 직후 구두 닦는 법을 배워 지금도 그 일로 먹고산다. 그의 눈빛은 평생을 정직한 노동으로 먹고산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우리 딸이 스물다섯이여. 내가 여기서 구두 닦아서 우리 딸 대학까지 보냈거든. 간호사여, 간호사.” 그는 낯선 기자를 보며 웃었다. 그는 비바람을 막을 칸막이도 없이 에펠제과 앞 골목 들머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발치에 둔 무릎 난로 하나로 지난 30년 동안 겨울 추위를 이겨냈다. 구두를 한 번 닦는 데는 2천원, 난로 기름을 가득 채우려면 7천원이다.

그의 일터 앞에는 모양을 제대로 갖춘 구두 수선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선점에서는 구두를 닦지 않았다. 부여에서, 그들이 벌이는 행복한 자율분업이 아름다워 보였다.

“벌이는 좀 어떠신지?”

“딸 시집만 잘 보내면 됐지 뭐.” 김씨는 날씨가 어둑해지는 저녁 6시가 되자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그의 전동 휠체어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의 고된 노동은 지난 3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내일도, 그 내일도 초라한 그 골목 들머리에서 계속될 거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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