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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천성산’은 지켜질까

등록 2005-12-16 00:00 수정 2020-05-03 04:24

도로 건설로 터널 뚫릴 위기에 처한 일본 다카오산을 지키는 사람들
지역 주민들이 자주적인 환경영향평가를 하고 대중적 공감대 넓히다

▣ 하치오지=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kioygh@greenkorea.org

‘개발’인가, ‘보존’인가. 천성산 고속철도 공사와 같은 대규모 국책사업의 추진과정에서 어김없이 불거지는 갈등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어떨까. 일본 역시 비슷한 일이 끊이지 않는다. 1970년대 이후 공공사업 과정에서 불거지는 환경 보존의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11월20일 ‘일본의 천성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 다카오산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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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룡뇽 재판과 닮은 ‘탠구 재판’

‘국정공원’인 다카오산은 도쿄도 하치오지시에 있다. 일본에는 국립공원과 국정공원이 있다. 둘 다 보전지구로 큰 차이는 없다. 해발 599m의 이 산은 1200년 전부터 식물 1500여 종, 조류 150여 종, 곤충 5천여 종이 살아가는 자연생태의 보고로 ‘신앙의 산’으로도 불렸다. 도쿄 중심부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어 이곳 방문객 수는 연간 250만 명에 이른다.

다카오산에 도로 건설이 시작된 것은 1984년. 수도권중앙연락자동차로(권앙도)는 도쿄 도심으로 모이는 9개의 방사상 고속도로를 도심 반경 40~60km의 범위로 연결하는 총연장 300km의 자동차 전용도로다. 권앙도는 다카오산 남쪽 국도 중앙에서 북쪽 우라다카오까지 길이 1.2km, 직경 10m의 터널 2개로 다카오산을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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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도로건설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터널과 가장 가까운 우라다카오 마을에서는 ‘권앙도 반대 동맹’이 결성됐다. 이 마을은 그전에 전철 복선화 공사(JR주오본선)와 중앙고속도로의 공사에 협력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공사 후유증으로 소음·진동·대기오염의 고통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터널을 파낼 때 나온 토사가 저습지를 뒤덮은 사고를 겪은 뒤 터널 공사의 위험성을 몸소 체험했다. 주민들은 건설성이 시행한 환경영향평가를 불신하면서 저항의 마음을 키웠다.

주민들은 1985년부터 ‘일본과학자회의’와 함께 일본 최초로 대규모의 자주적인 환경영향평가를 했다. 그리고 삼나무 잎을 태워 흰 연기가 도로를 따라 머물고 있는 모습으로 스모그 현상의 원인이 되는 기온 역전층의 존재를 증명했다. 2000년 10월에는 터널공사 금지를 요구해 1300명이 넘는 현지의 자연보호단체 학자나 예술인들이 원고단이 되어 ‘다카오산 텐구재판’을 제기했다. ‘텐구’는 깊은 산에 산다는 요괴로, 붉은 얼굴에 코가 길며 날개가 있어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는 전설의 존재다. 우리로 따지면 산신령이나 도깨비인 셈이다.

다카오산은 도쿄 신주쿠역에서 급행열차로 50분 거리에 있다. 산으로 가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우라다카오 마을 주민들은 소음으로 인한 불면증을 호소했다. 마을 곳곳에는 ‘공사 결사반대’와 같은 직설적인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숲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다카오산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실을 찾았다. 이곳의 주된 활동은 시민강좌와 주민계몽·학습활동이었다. 이곳이 중심이 돼 1989년 6월에 시작한 터널 반대 서명운동은 현재 50만 명을 넘어섰다. 흥미롭게도 다카오 시민모임의 사무실에 새만금 반대투쟁 때의 삼보일배 장면을 기록한 CD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등산로 입구에는 다카오의 ‘깃대종’(지역 생태계의 건강함을 대표하는 종)인 하늘다람쥐 동상이 여럿 눈에 띄었다. 하늘다람쥐는 우리나라에서도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보호종으로 지정돼 있다. 수령이 200~300년이 됨직한 아름드리 삼나무가 남쪽 사면에 자리잡고 있었다. 북쪽 사면에는 굴참나무·서어나무·밤나무 등이 극상림을 이뤘다. 멧비둘기·오목눈이·박새·곤줄박이·쇠딱따구리 등 반가운 녀석들도 보였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추천 후보로 시레토고반도, 류큐제도, 오가사와라제도 등과 함께 이 산이 1차 후보에 올랐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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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철도 개량 등 근본적 대안에 접근

주민들의 다카오산 지키기 운동에도 권앙도 건설은 현재진행형이다. 산 정상으로 갈수록 공사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 정상에서 보니 거대한 고가도로로 구성된 하치오지 분기점의 입체 교차로는 마치 산을 겨냥하는 거대한 활시위 같았다. 산 남쪽으로는 드넓은 관동평야가 내다보였다. 도쿄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로 이어진 거대한 메트로폴리스가 펼쳐졌다. 도시의 허파로서 이 산의 중요성이 느껴졌다.

‘다카오산 자연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국장 하시모토 요시히로는 “산에 터널이 뚫리면서 근처 하치오지 성터와 주변 민가의 지하수가 마르고 터널 입구에 집중된 자동차 배기가스가 역전층 때문에 심각한 재앙이 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8월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메마르지 않았던 오두시도노 폭포도 말라버렸다. 매년 번식하던 ‘오오타카’라는 멸종 위기의 큰 매는 터널공사의 진동 때문에 2년 전에 떠나고 말았다.

다카오 투쟁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지역주민들이 자주적인 환경영향평가를 벌였다는 점이다. 일본 최초로 과학자회의와 공동으로 벌인 환경영향평가에서 이들은 건설성 환경영향평가 방법의 불완전성 규명, ‘역전층’ 존재 확인, 지하수 고갈 지적 등의 성과를 냈다. 한국의 경우 환경영향평가가 사업자 자신의 비용으로 충당돼 사업자 이익에 좌지우지되고, 결국 개발을 위한 형식적인 겉치레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주민들은 이 밖에도 그림책 발간, 연주회 유치, 다른 지역주민들과의 연대 활동 등으로 대중적 공감대를 넓혔다.

주민들은 권앙도 계획의 대안으로 기존 철도 노선의 활용 증대, 기존 도로의 개량, 간선도로의 입체 교차화, 공공 교통수단의 이용 추진 등을 통한 교통량 경감을 내세우고 있다. 우리의 사패산과 천성산 터널의 대안이 ‘우회 대안 노선’이라는 점과 비교해보면 이들은 더 근본적인 해결책에 접근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천성산은 다시 위기

<조선일보>와 철도공단의 공동 환경조사 왜곡보도·비방으로 갈등 악화

천성산 환경영향 공동조사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 11월23일치 <조선일보> 1면에는 ‘지율스님 측과 공단 측 위원 14명의 천성산 구간에 대한 환경영향 공동조사 결과 공사가 환경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에 민간 조사위원들은 철도공단의 왜곡 사실 유포가 심각한 명예훼손이라고 일체의 조사 분석 작업을 중단했다.
환경영향 공동조사는 지난 8월31일에 시작해 3개월의 조사를 거쳐 11월 말까지 끝내기로 한 바 있다. 조사결과 발표는 12월 말께로 잠정 합의된 상황이었다. 현재는 현장조사를 마치고 결과 분석에 들어간 상태다. <조선일보> 보도 이후 민간조사위원 6명과 ‘천성산을 위한 시민종교단체 연석회의’는 △공식사과 기자회견 개최 △<조선일보>에 사과광고 게재 등을 요구했지만, 철도공단 쪽은 정정보도와 해명자료 배포 등으로 사태를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여기에 청와대의 이해하기 힘든 공격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청와대 김준곤 비서관은 지난 11월2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지율 스님이 최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냐”면서 “지율 스님 쪽에서 선정한 조사위원들도 그동안 지율 스님이 주장해온 내용에 회의적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율 스님을 비방했다. 정부는 인정하지 않지만, 환경단체들은 천성산을 둘러싼 오랜 갈등의 원인이 결국 정부의 약속 파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가운데 갈등을 풀자는 목적으로 이뤄진 환경영향 공동조사의 막바지에 ‘왜곡된 사실의 유포와 상대쪽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 쟁점이 되고 있다.
국책사업 성공의 전제는 사업 진행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이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인식 차이가 이렇게 크다면 제2, 제3의 천성산과 북한산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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