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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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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호에서 윈드서핑을!

등록 2005-09-08 00:00 수정 2020-05-03 04:24

2등급 수질로 살아난 호수에서 막힌 데 없는 바람을 즐기는 사람들
“초보자도 찾게 하려면 6번이나 허가가 반려된 출발대를 설치해야”

▣ 시화호=글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퍽~ 퍼벅. 웃통을 벗은 권대용씨가 세일의 방향을 180도 틀면서 두 발을 잽싸게 보드의 반대편 끝으로 옮겼다. 순간 힘에 밀린 바람이 8.2m의 세일에 부딪히면서 튕겨나왔다. 보드는 곧바로 바람을 타고 건너편 채석장이 있는 형도를 향해 미끄러져 나갔다. 파도는 거칠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잔잔하지도 않았다. 딱, 물가쪽으로 미역이 떠밀려올 만큼이었다. 바람이 초속 4~5m쯤 됐을까. 귓가가 윙윙거리고, 얇은 여름 바지가 바람에 파닥거렸다.

매일 초속 5m 이상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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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10일, 아직도 ‘썩은 담수호’의 이미지를 다 털어내지 못한 시화호를 찾았다. 시화방조제 중간쯤에 위치한 임시 주차장에 다다를 무렵, 오른편으로 물 위를 떠다니는 윈드서핑 보드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평일 한낮 오후였지만 10여명이 나와 서핑을 즐겼다. 쉬어갈 요량으로 주차장에 차를 세운 20여명의 관광객들은 바람에 실려 여기저기 떠다니는 보드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더러울 것 같은 물에서 윈드서핑을 하는 게 놀라웠는지, 아니면 부러워서 그랬는지.

서퍼들이 시화호를 찾기 시작한 것은 ‘죽은’ 시화호에 생명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2001년 무렵부터다. 53명의 회원을 보유한 ‘시화·구어도 윈드서핑’의 김인기(68) 회장은 “주중이나 주말 가릴 것 없이 바람만 좋으면 거의 매일 10여명이 나와 서핑을 즐긴다”고 말했다.

윈드서퍼들이 시화호를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바람, 탁 트인 공간, 깨끗한 물, 안정성, 근접성 등 윈드서핑을 하는 데 갖춰야 할 자연적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거의 매일 오후 초속 5m 이상의 바람이 분다. 넓은 호수 사방으로 큰 장애물이 없어 바람이 심술을 부리지 않는다. 봄철엔 바람이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카이트보드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 가운데 하나다. 윈드서핑 경력 1년차의 최현식 안산해양레포츠연합회 사무국장은 “서퍼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한강 뚝섬은 바람이 강변 아파트에 막혀 소용돌이 치는 와류현상이 나타난다. 여기는 동서남북 막힌 곳이 없어, 바람이 끊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다에 견줘 안전하다는 것도 담수호인 시화호의 장점이다. 수십년 경력의 김인기 회장은 “부산, 거제, 울산 등을 다 다녀봤는데 이곳의 여건이 더 좋다. 바다가 스릴을 즐기기에는 좋지만, 썰물 때 조류에 떠내려가거나 파도가 높아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다가 수온이 변덕스러운데 견줘 시화호는 거의 일정해 안전하다.

체온 하강을 방지하기 위해 잠수복을 갖춰 입은 김 회장은 말이 끝나자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익숙한 솜씨로 보드에 발을 올려놓으면서 동시에 물 위에 누워 있는 세일을 힘껏 잡아당겼다. 배는 순식간에 바람에 밀려나갔다. 상당한 기술이 필요한 ‘비치스타트’를 구사하면서 한껏 노익장을 과시했다.

시화호 가는 길은 멀지 않다. 서울에서 시화방조제까지 차가 막히지 않을 경우 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면 딱 40분 거리다. 봉천동에 사는 김인기 회장은 제2경인고속도로를 이용하지만 시간은 역시 비슷하다. 시화·구어도 윈드서핑 회원들이 수도권에 이만한 환경이 없다고 입을 모을 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수질이다. ‘물이 더럽지 않냐?’는 도전적 질문에 이들은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보드를 타다 보면 우리도 몇 모금씩 마신다.” 방조제를 기준으로 물은 둘로 나뉜다. 좁은 통문을 통해 바닷물을 호흡하는 시화호에서 맞은편 바다의 푸른 빛을 찾을 순 없다.

홍보 위해 매년 오리발 수영대회

하지만 시화호는 깨끗했다. 보드를 타는 곳 바로 옆에서 인근 주민이 작은 통발 그물을 던져 게와 망둥이를 잡아올렸다. 여느 바닷가와 똑같이 물고기를 구경할 수 있었다. 종종 보드 위로 튀어오르는 숭어가 발을 스치는 것이 가장 짜릿한 경험이라고 한다. 시화호 지킴이로 유명한 최종인씨는 “배수관문 부근의 물은 2급수 이상 나온다. 서핑할 만큼 깨끗할 뿐 아니라 수질이 한강보다 낫다”고 귀띔했다. 물론 아직까지 시화공단에 가까운 호수 상류쪽으로 가면 용존산소량이 4ppm 정도로 수질이 떨어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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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에서는 달라진 시화호를 홍보하기 위해 해마다 YMCA와 함께 수영대회를 개최한다. 지난 7월에도 3천~4천명의 참가자들이 오리발을 차고 수영시합을 벌였다. 안산시해양레포츠연합회에서도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안산시장배 전국윈드서핑대회를 연다. 10월1~3일에 대회가 예정돼 있다. 전국의 200~300명의 서퍼들을 초청하는 이 대회를 준비하려면 9월부터 바빠진다고 한다.

시화호엔 한 가지 없는 게 있다. 출발대다. 서핑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 인프라이기도 하다. 출발대가 없는 시화호에 서퍼들은 날카로운 돌 위에 멍석 같은 것을 깔아놨다. 출발대가 없어 초보자들은 이곳에 왔다가 쉽게 실망하고 돌아가기 일쑤다. 날카로운 돌에 비닐로 된 세일이 찢길까봐 잘 타는 서퍼들도 망설이기는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최현식 사무국장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88올림픽 때 훌륭한 출발대를 갖춘 한강의 뚝섬으로 가는 많은 서퍼들이 발길을 돌리는 것을 잡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윈드서퍼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허가’였다. 안산시에 출발대를 만들 수 있도록 6번이나 허가를 구했지만 반려됐다. 해양수산부·농업기반공사·수자원공사·군부대 등 10곳이 넘는 관계당국의 인허가를 받아내기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안산시장배 대회를 위한 임시 출발대 허가는 나올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지속적인 건축물 허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윈드서퍼들은 버림받은 시화호로 사람들의 발길을 되돌리는 첫걸음은 바로 출발대 설치라고 말했다.



다시 오염되진 않을까?

모터 아닌 바람을 이용하는 레포츠는 물 순환 도와줘

시화호에 사람의 발길이 닿는 것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이제 막 본래의 생명력을 되찾아가기 시작하는 시화호를 해양레포츠의 메카로 키우면 다시 오염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시화호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윈드서핑은 수질을 개선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시화호 지킴이’ 최종인씨는 “바람을 이용하는 해양레포츠는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모터 등 에너지를 이용하지 않는 서핑이나 수영은 물을 순환시켜준다”고 말했다. 무동력 해양스포츠는 물을 순환시켜 수면 아래 산소를 공급하고, 이것이 수중 생물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원드서핑 보드 밑 가운데 중심을 잡아주는 스태그(stag)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 한다. 형도 채석장의 흙과 자갈을 옮기는 무동력선의 왕래로 시화호의 수질이 좋아지고 바다 이끼류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한국해양연구원의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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