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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호] 루팔벽의 타임캡슐을 봤노라

등록 2005-08-19 00:00 수정 2020-05-03 04:24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김창호(36) 대장은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그는 “낭가파르바트에서 본 하늘과 그곳에서 환하게 빛나던 별들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7월14일 밤 오전 10시41분(현재 시간) 그가 정복한 곳은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8125m)봉. 정상 등반에 성공한 김 대장과 이현조(34) 대원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감격해 울었다. 김 대장은 “함께해준 동료들이 없었다면 정상 정복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낭가파라바트를 정복한 사람은 많지만, 김 대장처럼 루팔벽을 통해 봉우리를 정복하기는 세계 산악 역사에서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등반자는 세계에서 히말리아 14좌 등반에 최초로 성공한 이탈리아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 그는 이 등반에서 동생을 잃었고 자신도 큰 부상을 당했다. 그는 등반 직후 “다시는 이런 등반은 하기 힘들 것”이라는 말로 등반의 참혹함을 표현했다. 메스너의 등반이 성공했던 1970년 이후 세계 최고의 등반팀 12개가 루팔벽에 도전했지만, 루팔은 더 이상 낯선 이들의 침범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성원(46) 원정대 총대장은 “루팔벽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암벽 4천m로 이뤄졌다”며 “이 때문에 히말리아에서 가장 어렵다는 악명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6월26일 첫 도전 때 큰 사고가 났거든요. 7550m 지점에서 난데없이 집채만 한 바위가 떨어지지 뭡니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파편이 사방으로 쏟아지는데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이때 등반팀의 김미곤(32) 대원이 왼쪽 다리에 금이 가는 큰 부상을 당했다. 7천m 이상의 고도에서 부상은 죽음으로 연결될 수 있다. 등반팀은 내가 죽더라도 동료를 살리자는 마음으로 그를 구해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다.

대원들은 7월 초부터 마지막 공격 준비에 나섰다. 부상과 악천후로 일정이 늦어져 식량과 연료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하면 등반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상 도전을 위해 딱 2명치의 식량밖에 없었습니다. 꼭 성공해야 했죠.” 마지막 도전자는 그와 이 대원으로 결정됐다. 두 사람은 25시간의 혈투 끝에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기뻐하기도 잠시. 뒤를 돌아보니, 올라왔던 루팔벽으로는 도저히 돌아갈 상황이 아니었다. 영하 40도의 추위를 참아가며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고, 정상을 넘어 반대쪽 능선으로 이틀이 걸려 하산했다. “정상에서 메스너가 루팔벽에 처음 올랐을 때 묻어둔 타임캡슐을 발견했습니다. 그를 만나 타임캡슐을 다시 돌려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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