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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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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근] 동대구 ‘반-신화’ 홍대 나들이

등록 2005-03-17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만일 대학 신입생이었을 때 독문학 교수가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을 강의 시간에 틀어주지 않았다면 가수 박창근(33)씨는 없었을 것이다. ‘사랑’과 ‘이별’이 아니라면 노래가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던 그에게 운동권, 아니 정태춘의 노래는 충격이었다. “이런 노래라면 나도 부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가 1993년 듀엣 포크그룹 ‘우리 여기에’를 결성해 영남권 대학 순회 공연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음악을 업으로 삼을 줄은 몰랐다.

요즘 그는 노동문화기획자 네트워크에서 마련한 ‘2005 노래마라톤- 여섯줄’ 공연(문의: 02-6401-4219)을 앞두고 있다. 투쟁과 일상의 노래를 마라톤이라는 장을 통해 펼치는 것이다. 그는 4월1일부터 10일까지 서울 홍익대 앞 롤링홀에서 열리는 공연의 첫날 무대에 오른다. “단 하루의 콘서트라 해도 저에겐 소중한 무대죠. 가끔 단독 콘서트를 했지만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신세를 져도 수지를 맞추기 힘들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부르고 싶은 노래만 부르면 되잖아요.”

12년 동안 듀엣에서 밴드, 솔로로 활동을 이어온 그에게도 골수 팬들이 있다. 지난 1999년에 발매한 1집 음반 <반-신화> 1천장이 금세 바닥나 2천장을 추가로 찍었고, ‘열혈팬’을 자처하는 이들이 만든 팬클럽 ‘거당고’도 있다. 2년 전 음반을 낸다고 했을 때 1만원씩 송금해 예약한 이들이며, 매달 일정 금액을 후원하거나 공연 스태프로 참여하는 후원자도 적지 않다. 웬만한 오지랖으로 그의 노래를 듣기는 힘들다. 1집 노래 몇곡이 ‘소리바다’에 떠돌아도 그의 홈페이지(www.artmusician.com)를 찾지 않으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여린 사람으로서 더디게 살려고 한다. 1집 <반-신화>에서 자본의 논리에 물든 세상과 사람을 낮은 목소리로 질타한 그였다. 그 뒤로 그가 찾은 희망은 생명과 평화다. 요즘 보컬 마무리 녹음이 한창인 2집 <미안해, 고양이>(가제)는 채식주의자로, 평화주의자로 거듭난 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제 노래에는 삶의 해답이 없어요. 그것을 찾는다면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겁니다. 일단은 노래를 통해 성숙해져야죠.” 매주 금요일 저녁 무렵 지하철 동대구역 주변에 가면 결식어린이와 독거노인을 위해 노래 부르는 투명한 영혼의 그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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