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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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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인권의 ‘충치’ 빈곤부터 뽑겠소

등록 2004-11-04 00:00 수정 2020-05-03 04:23

빈곤 해결을 위해 사회단체 공동행동을 전개하는 치과의사 강동진씨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그는 치과의사다. 서울 구로구 온수동에서 ‘연세 늘푸른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10월30일 밤 9시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있는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 사무실. 강동진(37)씨를 포함해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을 이끄는 활동가 몇명이 둘러앉아 자욱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2004년 하반기 공동행동 기획단 3차 회의다. 이날 회의에서는 11월에 열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최저생계비 심의·의결 국면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최저생계비 보장은 기본 권리

강씨는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이다. 병원 일을 마치면 밤에 이쪽으로 건너와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을 기획한다. 지난 5월 말 발족한 공동행동에는 빈곤사회연대(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비정규대표자연대회의(준), 전국빈민연합, 이주노동자인권연대 등이 참가하고 있다. 공동행동 수칙은 간단한다. 빈곤 문제와 관련된 모든 개인과 단체들이 연대해 하나의 깃발 아래 공동행동을 펴나간다는 것이다. “그동안 파견 노동자들이 파견법 철폐를 외치고, 장애인들이 장애 이동권을, 노점상들이 강제철거 반대를 외치는 등 각각 눈앞에 닥친 문제를 갖고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내긴 했죠. 하지만 집단적으로 나선 적은 없습니다. 개별적인 진정과 소송은 개인의 문제에 그치고 말지만 이것이 집단적으로 이뤄지면 사회 문제로 등장하게 되죠.”

“빈곤은 인권의 문제다.” 빈곤은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인권 문제이므로 빈민들이 당당하게 ‘권리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 공동행동의 일치된 강령이다. “우리는 상대적 빈곤, 절대적 빈곤 이런 식으로 말하는데 유럽에서는 빈곤이란 말보다 ‘사회적 배제’라는 개념을 주로 씁니다. 빈곤을 인권이란 개념으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 800만명이 빈곤 상태에 놓여 있고 노동인구 중 5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불안정 고용 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가난한 노동자’는 예외적인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일을 해도 가난한 신빈곤 및 노동빈곤(working poor)은 ‘사회적 차별과 배제’ 때문에 빚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강씨가 기획한 첫 공동행동은 지난 6월 불안정노동자와 빈민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으로 진정서를 제출한 이른바 ‘인권선언운동’이었다. 당시에 접수된 진정은 11건으로, 진정인은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노점상·노숙인·이주노동자·산재노동자·비정규직 등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총망라됐다. 이들은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4인가구 105만5090원)와 최저임금(주 40시간 근무 때 월 59만3560원), 강제 단속에 따른 생존권 침해를 ‘인권’의 이름으로 한꺼번에 고발했다. 이렇듯 빈민들이 시혜의 대상에서 벗어나 집단적으로 인권선언에 나선 건 국내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대부분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인권위가 경찰·검찰 등 국가기구가 저지른 시민·정치적 권리(자유권) 침해에는 어느 정도 적극적인 권고를 내놓으면서도 노동권·사회보장권은 외면하고 만 것이다. “우리 사회의 빈곤층은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노동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고, 따라서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 구조적으로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및 최저생계비 보장은 국가의 ‘시혜’가 아닌 빈민들의 기본권입니다.”

두 번째 공동행동은 불안정노동자와 빈민들의 길거리 공동행진이었다. 공동행동은 그동안 “빈곤은 인권침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여의도 등지에서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촉구하는 ‘빈민 공동행진’을 3차례 열었다. “미국에서 1960년대 말에 빈곤과의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시민권 차원에서 ‘가난한 이들의 대행진’을 조직했는데 워싱턴에서 100만명이 모였어요. 그나마 현재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복지제도도 그때 만들어진 겁니다.” 그는 빈민 스스로 자신의 빈곤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자괴감부터 떨쳐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적 빈곤을 노동능력이 없다, 무능력하다 또는 나태하다는 상징처럼 받아들이고,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그렇게 낙인찍히는 것을 수치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빈곤 문제는 그런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별 때문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기부운동으로 해결되겠습니까”

‘저항’이니 ‘행동’이니 하는 말과는 좀체 어울릴 법하지 않은 서글서글한 눈매에 간간이 사람 좋은 웃음을 띠던 그의 안색이 잠시 굳어졌다. “우리 사회가 공동행동의 주장처럼 불안정 노동과 빈곤 문제를 과연 인권 개념으로 접근해 해결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느냐”는 질문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은 대부분 전쟁 직후 경제적으로 결코 풍요롭지 않은 시절에 만들어졌어요.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한 나라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서만 결정되는 건 아니죠. 빈곤은 기본적인 권리의 문제이고 해결 여부는 힘의 관계를 반영해 결정되는 겁니다.” 흩어진 빈곤층을 조직화해 집단적으로 저항하면 힘이 커지고, 그런 결집된 힘을 동원하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사회적 권리’도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말 불우이웃돕기 형태의 기부운동으로는 빈곤이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미국은 기부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나라인데, 과연 빌 게이츠가 수십억원을 내놓고 기부 프로그램에 따라 빈곤층을 지원한다고 해서 빈곤이 해결되고 있습니까? 나눔과 연대라는 시민들의 아름다운 정신이야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런 주머니 쌈짓돈으로는 선량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노동자들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없습니다.”

건강은 의료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강씨가 기획한 세 번째 공동행동은 헌법소원이었다. 공동행동은 현행 최저생계비가 최저생계를 보장하지 못해 행복추구권,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소원 역시 빈곤 문제가 이제 ‘인권’의 시각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점을 나름대로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월27일 헌법소원도 기각되고 말았다. 헌법소원은 기각됐지만, 공동행동은 11∼12월에 결정되는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권리’로서 쟁취하기 위해 또 다른 공동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아직 미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월급쟁이 의사로 일하던 지난 95년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멤버로 참가해 의료복지와 민중의료에 뛰어들었다. “빈민·노동자·불안정노동자 건강 문제를 고민하면서 이건 의료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들의 건강이 나빠지고 있는 배경에 노동시장 유연화 같은 제도적인 문제가 근본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강씨는 공동‘행동’과 더불어 빈곤 문제를 인권 개념으로 전환시키는 데 필요한 정교한 ‘이론’을 만드는 작업에도 나서겠다고 말했다.



취업이 빈곤의 해결책일까


빈곤은 과연 취업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한국노동연구원 금재호 연구위원이 최근 한국노동패널조사(표본 전국 3741가구) 제1차(1998년)∼4차연도(2001년)까지 4년간의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내용을 보자. 가구원 수가 반영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가구균등화지수’로 가구소득을 조정해 빈곤가구(가구소득이 전체 평균소득의 50%에 못 미치는 가구)를 추정한 결과, 1998년 빈곤선은 가구 월소득 33만500원, 2001년 빈곤선은 38만3천원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빈곤선 이하에 놓인 빈곤가구 비중은 4년간 20.6∼21.5%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가구의 42.2%가 4년 동안 적어도 한번 이상 빈곤을 경험했으며, 16.5%는 3년 이상 빈곤 상태에 빠진 ‘항상 빈곤’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대목은 전체 빈곤가구 중에서 취업자가 있는 가구의 비중이 4년간 62.4∼55.3%에 달했다는 점이다. 빈곤가구의 절반 이상이 취업자가 있는 ‘일하는 빈곤가구’(working poor)로 나타난 것이다. 또 취업자가 있는 가구 중에서 빈곤에 빠진 가구의 비중은 4년간 13.9∼15.1%로 나타났다. 이는 취업이 빈곤에서 빠져나오는 통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게다가 4년 중 2년 이상 빈곤 상태에 놓여 있던 가구가 23.1%에 달했다. 금재호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빈곤의 특징은 빈곤 진입과 탈출이 매우 활발하다는 것인데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 등 취업의 질이 나쁘기 때문”이라며 “상당수의 가구는 비록 취업해 빈곤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더라도 다시 빈곤에 떨어질 위험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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