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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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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락희] 상처의 혈을 푸는 평화의 침

등록 2004-04-09 00:00 수정 2020-05-03 04:23

빈딘= 글 · 사진 하재홍 전문위원 vnroute@lycos.co.kr

당신이 내민 손목을 살포시 잡고서 눈을 감는다. 고동치는 맥 속에 짚이는 것은 육신에 새겨진 질병만이 아니다. 당신께서 견뎌온 세월, 분노와 원망 속에 질환으로 남겨진 전장의 상처가 고스란히 내 가슴을 파고든다. 부디 내가 놓는 이 침이 당신의 응어리진 혈을 풀고, 상처의 역사에 응고된 모든 한들이 화해의 혈맥을 따라 평온한 꿈을 꾸게 되기를….

3월22일부터 25일까지 베트남 빈딘성에서 베트남 평화의료연대의 일원으로 진료활동에 참여한 김락희 해성한의원 원장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침을 놓을 때마다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심정으로 기도를 올렸다. “노인들의 80%가 두통을 호소하더군요. 이는 지난 전쟁 속에서 느꼈던 극도의 긴장과 공포감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인생에서는 아직도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만큼, 전쟁이 끝나지 않은 것이죠. 우리가 전쟁을 반대해야 하는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후과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번 진료에 ‘참의료 실현 청년한의사회’(이하 한청) 소속 한의사 아홉명과 함께 참여해 한방진료 부문의 진료부장을 맡았다. 그를 비롯한 한청 소속이 한의사들의 참여함으로써, 그동안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를 주축으로 활동하던 ‘베트남 평화의료연대’가 그 명칭에 걸맞은 조직적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한방진료단은 한국군 최대 양민학살 지역인 빈딘성 떠이선현 떠이빈사 고자이 마을(1500명의 주민들이 학살당한 곳)에 별도의 특별진료팀을 꾸려, 비극적 역사의 생존자들과 직접 몸으로 부대끼면서 주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진료를 하면서 때론 화가 났습니다. 여성들은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까닭에, 피가 제대로 순환되지 않아 신경마비 증상이 심하더군요. 노인들은 영양부족에 극심한 노동으로 관절이나 근육에 이상이 많고요. 한국은 아무리 시골이라도 이런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 앞으로의 진료는 이곳 주민들이 실질적인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양국 의료인들간의 의료협력 시스템을 구축해나가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할 것 같습니다.”

평화의료연대는 현지에 상시적인 치과 진료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또 베트남의 종합의료대책을 논의, 협력할 수 있는 창구로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가 함께 나서기로 했다. 베트남 평화의료연대는 이번 진료를 통해 빈딘성 주민 1135명에게 치과 진료를, 1580명에게 한방 진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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