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높지만 시중은행보다 높은 이자… 자금운용처 한계 드러나 예금금리 앞다퉈 내리기 시작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서민 금융기관인 상호저축은행(이하 저축은행)으로 돈이 밀려들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저축은행업계의 수신은 30조2307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30조원대를 돌파했다. 한국은행이 8월 초 콜금리를 3.5%로 0.25%포인트 추가 인하한 뒤 시중은행들의 금리 인하가 잇따르면서 상대적으로 저축은행 신규예금이 급속히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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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 서민에 높은 이자로 빌려줘
돈이 저축은행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예금금리가 높기 때문이다. 현재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의 예금 금리는 1.5∼2%포인트 정도 차이가 난다. 국민·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이 파는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3.6∼3.7%인 반면 한솔·솔로몬·제일·한국 등 주요 저축은행이 내놓은 같은 상품의 이자율은 5.4∼5.8%다. 저축은행별로 예금금리는 0.2∼0.3% 정도 차이가 나는데, 신용도가 낮은 한두개 저축은행은 연 6%대의 높은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 저축은행은 변동금리는 없고 확정금리 예금상품만 취급한다.
그렇다면 이자소득은 얼마나 될까? 연리 5.6%인 저축은행 1년짜리 정기예금(1천만원)의 경우 매월이자지급식(단리)으로 따지면 월 이율 0.47%에 세후 이자 3만8967원이 된다. 세금우대까지 받으면 세후 이자는 월 4만1777원이다. 만기이자지급식(복리)으로 한다면 연수익률 5.75%에 세후 이자 연 47만9799원이고 세금우대 상품은 세후 이자가 연 51만4269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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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시중은행의 연리 3.64%짜리 1년 정기예금(1천만원)의 평균이자는 이자소득세와 농어촌특별세를 빼고 나면 연 30만3940원이 나온다. 세금우대까지 받는다면 저축은행이 20만원 가까이 이자를 더 주고 있는 것이다. 실질금리 마이너스에 초저금리인 요즘 이자를 1.5∼2%포인트 더 쳐주는 건 상당한 매력이다. 이 때문에 시중은행의 예금자 상당수가 만기가 된 정기예금을 찾아 저축은행 예금으로 갈아타고 있다. 삼화상호저축은행 정진희 PB팀장은 “올 초부터 저축은행으로 자금 유입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며 “그동안 시중은행만 거래하던 사람들이 고금리를 쫓아 저축은행으로 눈을 돌린 것인데, 주로 은퇴한 60∼70대 금리 생활자들의 신규 예금 가입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돈 보따리를 싸들고 서울에 있는 저축은행에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상호저축은행중앙회 이기헌 기획조사부장은 “지방 소재 저축은행은 예금금리가 5% 이하인 곳이 대부분”이라며 “지방에서 할머니들이 버스 대절해서 우르르 몰려와 조금이라도 이자가 높은 서울의 저축은행을 골라 찾아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풍경은 저축은행 예금금리가 연 8%대까지 올랐던 2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저축은행은 시중은행에 비해 공신력이 낮기 때문에 돈을 맡기는 데 따른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더 크다. 도산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저축은행은 1997년 231개에 이르렀으나 외환위기 이후 연체율이 30%를 넘는 등 대규모 부실이 발생해 상당수가 문을 닫고 114개로 대폭 줄었다. 현재 저축은행의 평균 연체율은 10% 초반대로 여전히 시중은행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으로 알려진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쪽은 “과거에 저축은행 업계에서 수신금리가 8%대까지 갔음에도 당시에 저축은행이 상당수 도산한 뒤라서 고객들이 쉽게 돈을 맡기지 못했다”며 “그래서 (예금자보호법을) 아는 사람만 리스크를 감수하고 예금을 분산 예치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예금보험공사는 시중은행과 똑같이 저축은행에 대해서도 원리금을 합쳐 1인당 5천만원까지 보장해주고 있다. 5천만원 이하 예금은 저축은행이 도산하더라도 떼일 염려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수억원을 가진 부유층의 경우 5천만원 이하로 쪼개서 가족들의 이름으로 여러 저축은행에 넣어두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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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축은행은 어떻게 시중은행보다 더 높은 이자를 줄 수 있는 것일까? 비밀은 대출금리에 있다. 저축은행들의 대출금리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연 10∼14%대에 이른다. 연 5∼6%대의 부동산담보대출 금리를 적용하고 있는 시중은행에 비해 두배 가까이 높다. 이유는 저축은행 대출자가 주로 중소기업과 지역 소상공인, 서민들이라서 대출자들의 신용도와 상환능력이 시중은행 고객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은행에 가서 돈 빌리기 어려운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다 보니 상환 리스크가 커 대출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대출금리가 높기 때문에 그만큼 높은 예금이자를 지급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것이다.
부유층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
그러나 저축은행의 예금 고금리도 이제 한계에 달했다. 예금은 마구 들어오는데 이 돈을 굴릴 만한 마땅한 자금 운용처를 발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당수 저축은행은 예금금리가 지나치게 높아 오히려 ‘역마진 비상’에 걸렸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이 최근 예금금리를 앞다퉈 낮추는 등 금리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은 연 5.6%인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를 지난 17일부터 5.4%로 내렸고 제일저축은행도 5.5%에서 5.4%로, 영풍저축은행도 5.8%에서 5.6%로 내렸다. 동부저축은행은 지난 19일 정기예금금리를 연 5.4%에서 5.1%로 낮췄고, 삼화저축은행도 5.6%에서 5.4%로 조정했다. 저축은행중앙회 이기헌 부장은 “마땅한 자금운용처를 발굴하지 못한 상태라서 저축은행마다 예금 뭉칫돈이 들어와도 고민”이라며 “이제 돈이 들어오는 것을 오히려 반기지 않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들이 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이란 얘기다. 따라서 저축은행 예금상품에 눈을 돌려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가입하는 게 낫다.
그런데 ‘서민금융기관’인 저축은행으로 몰려들고 있는 돈이 과연 서민들의 돈일까? 서울의 경우 저축은행 본점과 지점을 합쳐 점포가 62개인데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지역에만 37개가 몰려 있다. 목동(3개)·여의도(4개)·분당(1개)까지 합치면 서민층이 주로 사는 전형적인 강북권에 있는 점포는 19곳에 불과하다. 강남 포스코사거리쪽에서 보면 현대스위스상호저축은행, 한솔상호저축은행, 제이원상호저축은행, 삼화상호저축은행, 솔로몬상호저축은행 등이 한두 블록 건너 길 양편에 즐비하다. 저축은행이 서민 재산 증식보다는 강남 부유층의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부자들의 예금을 서민 대출자금으로 쓴다는 건 좋지만, 결국 서민과 소규모 기업이 낸 고금리 대출이자를 부유층이 예금금리로 받아서 따먹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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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호저축은행이란 무엇인가 |
저축은행 영업은 본점이 소재한 영업구역 외의 지역에는 원칙적으로 점포를 설치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영업구역은 특별시·광역시·도 등 11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인터넷뱅킹의 발달에 따라 2000년 6월부터 수신의 경우 영업구역에 무관하게 전국 어디에서든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 지방 거주자도 서울 소재 상호저축은행과 거래를 틀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 여신은 중소기업과 서민에 대한 금융 편의를 제공한다는 상호저축은행의 설립 취지에 따라 대출 총액의 50% 이상을 해당 영업구역 내의 중소기업과 개인에 대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상호저축은행은 1972년 일수대출을 전문으로 영업하던 서민금고와 무진회사(상호부조 목적의 일종의 계) 등을 흡수해 설립된 옛 ‘상호신용금고’다. 금고라는 명칭이 새마을금고, 시·군·구 금고, 사금고 등과 혼동을 일으켜 일반인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2002년 3월부터 명칭을 상호저축은행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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