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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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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765호를 읽고

등록 2009-07-02 17:19 수정 2020-05-03 04:25
<한겨레21> 765호

<한겨레21> 765호

[집중 모니터링] 은밀하지 않다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세력이 그들 스스로를 대변하기 때문에 마찰이 발생한다. 마찰은 곧 시민의 저항으로 표출되는데 그 방식이 오묘하다. 표지이야기 ‘은밀한 저항’에 등장한 그들은 원천적으로 집단의 형성을 막는 세력에 대항해 원자, 즉 자신만의 저항을 실천한다. 누군가는 달리고 누군가는 손님과 싸우며 누군가는 자신의 소비를 제한한다. 저항 수단은 원자적이지만 목표는 집단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로 하여금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하게끔 만든 세력은 그들의 외침에 귀를 닫았다. 나아가 그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저 침묵하고 있다며 그들의 존재마저 외면하고 있다. 은밀하지 않은 그들의 저항이 이기길 바란다.

그러나 원자들의 의미 있는 저항 속에 자리잡은 민주당의 광장 지키기는 표지이야기 흐름에 적절치 않았다. 여전히 좌우의 이념 프레임에 갇힌 기사는 시민들의 저항을 단순히 오른쪽에 대항하는 왼쪽의 움직임으로 축소시켰다. 시민들은 좌우를 넘어 옳은 것을 추구하고 있음이 가장 기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초점 ‘북핵 3차례 위기 공통점은 불신’ 기사에서는 나라 안만큼 어수선한 북핵 위기를 다루었다. 아무것도 예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과거 북핵 위기를 통해 지금의 대응방법을 지적했다. 남북관계가 북-미 관계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준 점에 주목했다.

사람과 사회 ‘대청봉에서 1인시위 중인 산양 아빠’에서 지적한 설악산 대형 케이블카 설치와 초점 ‘요란한 빈 수레 재개발 대책’의 서울 재개발 대책은 묘하게 닮아 있다. 그 속에는 경제 논리만 존재할 뿐 사람이나 환경 등의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재개발과 용산 참사, 쌍용차 파업에서 미디어법, 그리고 설악산과 아라뱃길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리를 지배하는 ‘경제적 효율성’이란 도대체 무슨 괴물인가.

은밀하지 않게 발생하는 불편한 일들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란도 한국 사회의 갈등만큼 골이 깊어 보인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으나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두 국가 모두 ‘절대 권력’이어야 하는 시민의 힘을 무시하는 데 그 원인이 있다. 결코 은밀하지 않은 저항이 은밀하지 않은 억압으로부터 안전하길. 김승미 18기 독자편집위원

고레에다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

문화 ‘고레에다 감독의 ’ 영화평 댓글(deepdyed)

글에 나오는 대사처럼 제게도 숨어서 듣는 노래가 하나 있었더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그 노래를, 오늘 롤러코스터 조원선씨의 콘서트에 가서 들었습니다. 혼자 온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 공연장에 혼자 와서 그렇게 자기만의 노래를 숨어 듣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조금 위안이 되고, 또 슬프기도 했던 날입니다.
‘은밀한 저항’ 댓글

→전 정치에 관심이 많고 정의감이 좀 강한 편이어서(ㅡㅡ;;스스로 말하기 뻘쭘) 대학생 때 민노당 활동을 좀 했습니다. 조금… 티가 나는 일이죠. 한데 뭔가 불편하더군요. 사상이나 계파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고, 무겁고 경직돼 있어서요. 전 보통 사람에 가깝다 보니, 오히려 그들에게는 제가 엉뚱한 사람이더군요. 그때 경험 덕에 시위 문화에 웬만히 익숙하지만, 이제 깃발 뒤에 서진 않습니다. 평소 생활에서 실천하고, 정치적으로 큰 사안이 있을 때 내키면 혼자 광주에서 서울까지 올라가 며칠씩 쏘다니기도 하고요. 알고 있습니다. 이른바 ‘시위꾼’이라는 깃발 옆에서 서 있지만, 그래서 누군가는 구분하지 않고 싸잡아 보겠지만, 자발적이고 독자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거기 있다는 것을. 어떤 이의 마음속에, 또 생활 속에 자리잡고 있겠죠. 그것 역시 의미 있다고 전 믿거든요. kayumi

→먼저 현관 앞에 있는 불청객 를 내일 당장 치워야겠습니다. 끊는다고 전화했는데도 계속 넣고, 배달하는 아저씨가 안돼 보여서 그냥 참고 있었지만 도저히 못 참겠네요. 집에 이런 흉물이 굴러다니는 것을 이제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babee21

→저희도 10년 넘게 봐오던 를 끊었습니다. 얼마 전에 울 신랑이 먼저 지국으로 전화를 해서 끊었는데 좀 놀랐습니다. 작은 저항은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도 쥐나무를 만들어놓고픈 심정… 아줌마 정서로는 좀 살벌한가요? hyon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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