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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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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파란 책’ 보관 중인 분?

등록 2008-05-30 00:00 수정 2020-05-03 04:25

▣ 조혜원 서울 은평구 신사동

나는 노래를 잘 못한다. 하지만 노래를 정말 좋아한다. 노래를 잘 못하면서도 노래 없이 못산다고 누구 앞에서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 출발점은 바로 이 파란색 책이다. 정말 지저분하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노래와 연결된 내 추억들이 오롯이 담겨 있는 것만 같아서. 그 추억들이 지저분한 책 표지 곳곳에 묻어 있는 것만 같아서.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받은 저 노래책. 지금 보니 너무 촌스럽고 유치하지 않은가. 게다가 ‘조국통일, 학원자주….’ 윽! 요즘엔 새내기들한테 이런 말 적힌 노트라도 줬다가는 난리가 날 테지. 십 몇 년 전이니 그나마 가능한 디자인이자 문구였을 거다. ‘늘 깨어 있는 새내기, 함께 모여 아름다운 삶.’ 그래도 이 말만은 여전히 아름답지 않은가.

난 아직도 궁금하기만 하다. 대학에 합격하고 처음으로 과 선배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 과의 대표 노래라며 을 가르쳐주던 선배들이 그렇게 좋기만 했던 내가. 온통 모르는 낱말과 노래로 가득한 이 파란 책을 받았을 때 그저 좋기만 했던 내가.

그렇게 나는 이 책으로 민중가요와 처음 만났다. 내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 내 인생의 파랑새 같은 책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민중가요’와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깊이 있게. 저 책을 가장 많이 들춰보았던 그때 그 마음 그대로.

지금도 저 책을 갖고 있는 내 동기생들은, 선배들은 몇 명이나 될까? 어쩌면 단 한 명도 없을지도 모른다. 108쪽에 불과한 저 얇고 촌스러운 책을 10년 넘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낡고 낡은 저 파란 책을 혹시라도 여태껏 보관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가차 없이 전자우편(nancal@hanmail.net) 보내주시라고 부탁드려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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