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영 대구시 남구 이천동
아기가 뱃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언니로부터 많은 상자를 받았다. 큰조카가 아홉 살이니 9년 전 첫째언니의 첫째아들이 태어날 무렵에 준비했던 출산 준비물이 조카 넷을 거쳐 우리 집으로 건너왔다. 상자 안에는 산부인과 병원과 분유회사 상호가 인쇄된 배냇저고리와 고무줄이 늘어난 내복 아랫도리, 너무 삶아서 무늬를 알 수 없는 내복 윗도리까지 그리고 우리 조카들이 수없이 빨았을 치발기와 딸랑이, 장난감들이 들어 있었다.

뱃속의 아기가 태어나 5개월이 지난 지금 점점 개봉한 상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보행기가 나오고 조그마한 모기장과 딸랑이들이 나왔다. 난 상자를 열고 우리 아들에게 조카들이 입던 옷을 입히고 장난감을 쥐어줄 때마다 건강하게 자란 우리 조카들의 기운까지 입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자녀계획이 하나뿐인 나에게 직장 동료들은 출산준비물을 새것으로 사라고 권유하고, 보다 못한 동료는 속싸개와 배냇저고리를 선물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돌 이후에 입을 옷들로 바꾸었다. 왠지 언니들이 물려준 조카들의 옷이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배냇저고리와 작은 사이즈의 내복들은 다시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언니들이 그러했듯이 내가 선물받아 입힌 새 옷들도 들었다.
깨끗하게 삶아 곱게 접어서 넣었는데 이것을 누구에게 줄까 생각하니 왠지 낡은 것이라 받는 사람이 기분 나빠할 것 같기도 하다. 이래저래 걱정을 하는데 첫째언니가 막내 남동생에게 주면 된다고 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몇 년 안에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면 물려주라고 말이다. 혹시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낡았지만 깨끗하고 건강한 기운이 가득 담긴 이 상자, 미래의 올케가 잘 받아주면 좋겠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힘든 병원비, 226만명에 3조원 돌려준다…1인당 평균 136만원

‘푸른거탑’ 배우 이용주 심장마비로 별세…향년 44

‘90년생’ 용혜인, 역대 최연소 장관 후보자…기본소득당 재선 의원

“사망자가 너무 빨리 들어와요”…진흙밭에 잠긴 네팔 수해 현장

한국인 있을 지도…“터널에 500여명 갇혀, 구멍 뚫고 산소 공급”

강신철 국방부장관 후보자…전작권 환수·사관학교 통합 과제

“‘뉴이재명’ 떨어져 나가”…‘조기 레임덕’ 막을 세가지 결단은

청년·여성 겨냥, 진보 진영 포용…집권 2년차 개각, 국정 쇄신 의지

하루 만에 350㎜ 폭우…일 최고 수준 ‘레벨5 특별경보’ 발령

‘김민기 대법관 카드’ 절대 양보 없다는 청와대·대법원…정면충돌 가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