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복희 대전시 동구 성남동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은 그해 5월 무렵이었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의 손에 붓글씨로 쓴 이른바 ‘가훈’이란 화선지가 들려 있었다. 가정의 달을 맞아 모 유림단체에서 써줬다는 것이다. 무료로 써주었다지만 남편은 처음 정하는 우리 집의 가훈이니만치 심사숙고한 끝에 정직과 성실, 신용으로 정했다고 했다. 그걸 표구점에 가서 족자(簇子)로 만들어 벽에 걸어두고 보니 그런대로 없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아들에 이어 딸도 초등학교에 진학한 뒤 하루는 딸이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받아왔다. 그래서 벽의 족자를 가리키며 “저게 우리 집의 가훈이니 적어가렴”이라고 하니 딸은 그제야 가훈의 의미를 새삼 곱씹는 듯했다. 집집마다 ‘가훈’이 하나쯤은 있으리라. 그런데 어떤 집에 가보면 가훈이 너무 어렵고 의미의 전달 또한 애매모호한 경우가 있다. 한 지인네 안방의 침대 옆 협탁에 조그만 글씨로 무언가를 써놓았기에 살펴보니 “(돈을) 꿔주지도 말고 꾸지도 말자!”는 글귀였다. 어이가 없어 물어보니 그게 바로 지인과 그 남편의 평소 가훈이자 좌우명이라고 하여 어찌나 배꼽을 잡고 웃었는지 모른다. 하기야 평소 돈을 안 꾸고 안 빌리는 삶만 같다면야 무슨 걱정이 있으랴.
가훈은 어쩌면 한 가정의 근본이기 때문에 가정마다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의미대로 자녀가 올곧게 자라주고 가족 모두 만사형통의 길을 걷는다면야 그 이상의 바람은 없으리라. 우리가 해마다 봄이면 으레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글자를 써서 대문 따위에 붙였던 관습은 아마도 날마다 입춘대길과 같은 좋은 날로써 복을 기원하는 바람이 근저에 있었음이 아닐까. 정직과 성실과 신용으로 일관하라는 바람을 담은 우리 집의 가훈 덕분인지 성인이 된 아들과 딸은 지금껏 정직하다. 또 꾸준히 공부도 잘하는 한편 매사에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있으니 어쨌든 가훈을 나름대로 잘 정했다는 느낌이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이 가훈의 내용처럼 법 없어도 살 수 있고 간난신고의 역경 앞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견지하길, 아울러 누구에게서든 믿음을 받는 인재가 되어주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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