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희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상하가리
어머니께서 새집으로 이사하시던 날, 자식의 자랑스런 상장이라 고이 모셔두었던 어린 시절 나의 진실, 혹은 그 시대의 누군가가 저지른 음모가 발견됐다.
시골의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일찍 성정에 빛을 발한 편이었다. 그러면서 내 행동거지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범적인 반공 어린이라는 상장을 덮어쓸 정도로 변했으리라. 또한 내가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에 상장이란 종류를 막론하고 항상 어머니의 고된 삶을 위로해드리는 작은 선물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학생들에겐 반공이란 단어가 낯설 것이다. 그땐 반공을 빼면 사회가 무색(無色)한 것처럼 반공이 난무했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뿔이 달리고 악랄하고 무서운 빨간 공산당이 저지른 이승복 어린이 사건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항상 6월이 되면 어김없이 공산당을 쳐부숴야 하는 글짓기와 웅변대회가 열렸고, 어디에 살든 공간을 초월해 어떤 어린이의 가슴엔 항상 그런 종류의 상장이 쥐어졌을 것이다. 그 당시엔 이런 모든 것들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그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한 ‘과거인’이었다. 안타깝게도 진실의 암시를 줄 만한 ‘현재인’(現在人)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잘 교육됐던 우리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모른 채 자신의 삶에 충실하거나 혹은 허우적거리면서 생활에 떠밀려 어디론가 가고 있겠지. 어떤 이는 나처럼 무언가를 알아차리고는 알 수 없는 대상을 향해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면서 당혹스러워할지도 모른다. 그가 배운 것들에 대한 불신감이 대단해 치료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다는 게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사회인지, 알 수 있는 게 어느 만큼인지, 난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이 물건은 반공으로 새빨갛던 날에, 그렇게 무섭다는 시대에 진실을 말할 수 있었던 모든 이들에게 서른을 훌쩍 넘긴 한 명이 깊은 존경을 표하도록 만든다. 반공의 생활화에 앞장섰던 초등학교 시절의 내가 아니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가진 6월이 또 온다. 나는 다시 귀와 눈을 열어 고칠 것이며 입을 열어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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