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식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
20여 년 전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첫 겨울방학을 보내던 나는 가능한 한 빨리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국 마음먹은 대로 겨울방학이 끝나기 전에 나는 결혼했다!
일단 결혼하기로 작정한 다음부터는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돼 아내와 나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 동네 예식장도 잡고 식당도 예약하고 일일이 어른들 찾아다니며 인사도 드렸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학생이다 보니 줄일 수 있는 경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청첩장은 아내의 친구들이 방에 모여 여럿이 둘러앉아 밥상 위에서 직접 일일이 손으로 쓴 다음 우표를 붙여 우체국으로 가지고 갔고, 결혼예복을 준비하러 시내에 나간 나는 마침 양복가게에서 세일하는 이월상품을 2만5천원에 구입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저축해서 내가 준비한 예물은 동네 금은방에서 만든 조그마한 큐빅 목걸이 하나였고, 아내가 준 예물은 돼지저금통을 털어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2만원짜리 파카 만년필 한 자루였다. 한창 공부하는 학생 신분이었으니 나에게는 잘 어울리는 선물이다 싶었다. 결혼식 날, 학생들이 많이 오는 바람에 부조금은 예상보다 적었고 반대로 식당에서는 식사가 모자란다고 난리였다. 그리고 아내 역시 나와 같은 동네에 살다 보니 동네 사람들의 부조금이 둘로 분산되는 바람에 추가 경비에 신경을 쓰게 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아직도 나는 회사의 서류 작성이나 메모를 할 때에는 그때 예물로 받은 이 만년필을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몇 번 잉크가 새는 바람에 튜브를 교환하면서도 계속 쓰고 있다. 아르바이트가 없어서 돌잔치도 못해준 아이가 지금 대학 1학년을 다니고 있는데 이 아이가 결혼할 때가 되면 나는 이 만년필에 얽힌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아울러 어떤 물건이든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이 일단 의미를 갖게 되면 본인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되리라는 얘기도 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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