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고향 언덕에는 커다란 당산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동네 어른들은 금줄을 두르고 술과 떡으로 제를 올리셨는데 우리는 잠도 안 자고 뒤따라다니며 떡을 얻어 먹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우리 집 바로 위에 있던 한 그루는 잎이 말라들어 죽어가기 시작했고 해마다 절을 받던 그 당산나무는 마침내 동네 어른들의 손에 운명을 다하고 집집마다 나뉘어 땔감으로 사라졌다. 그 나무는 오래된 모과나무였는데, 어른 두서너명이 양팔로 에워싸야 할 정도로 엄청 컸던 것 같다.
열두살 위인 내 오빠는 당시 대학생이었다. 겨울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모과나무가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못내 아쉬워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흩어진 모과나무 가지들을 주워와 여러 가지 공작품을 손수 만들어 방에다 걸어주었다. 그때 막내동생의 방학숙제로 만들어준 것이 이 연필꽂이다.
오빠는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같은 해 겨울, 흑염소 검순이가 식구들의 몸보신을 위해 희생양이 되었는데, 그때 뽑아내 따로 남겨둔 염소뿔을 말려서 물감으로 색칠해 연필꽂이 나무 구멍 속에 넣어줬다. 덕분에 연필은 잘 넘어가지 않고 잘 꽂힌다.
지금, 오빠는 오십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당산나무 연필꽂이는 그보다 몇배나 나이가 많다. 계속 내 책상 위에 있던 연필꽂이는 내 아들의 책상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거실 전화기 옆으로 와 훌륭한 장식품 노릇을 하고 있다. 변함없는 색깔과 모양을 자랑하며 집으로 놀러오는 아줌마들의 손길을 받고 있다.
홀로 남은 한 그루의 당산 모과나무는 고향 언덕 위에서, 지금도 주렁주렁 커다란 모과 열매를 떨어뜨리며 서 있다.
김진희/ 경남 양산시 웅상읍 평산리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진숙, 대구시장 선거 출마 포기…“보수의 심장, 좌파에 넘어가면 안돼”

‘장동혁, 차관보 면담’ 거짓말 논란에 국힘 “잘못 알려드린 부분 사과”

다리 부어서 입원한 40대 숨져…지난해 26명 사망한 이 질병

“식량 없이 17일 버티고 빗물로 생존”…‘영양실조 병사’ 사진에 우크라 ‘부글’
![[단독] 대검 감찰위, ‘이화영 재판’ 집단퇴정 검사 징계불가 결론…찬반 3대 3 [단독] 대검 감찰위, ‘이화영 재판’ 집단퇴정 검사 징계불가 결론…찬반 3대 3](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424/53_17770231195197_20260424502372.jpg)
[단독] 대검 감찰위, ‘이화영 재판’ 집단퇴정 검사 징계불가 결론…찬반 3대 3
![이자도, 갚을 필요도 없어요…‘엄빠 은행’은 어차피 내 거니까요 [.txt] 이자도, 갚을 필요도 없어요…‘엄빠 은행’은 어차피 내 거니까요 [.txt]](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425/53_17770993514877_771777099323304.jpg)
이자도, 갚을 필요도 없어요…‘엄빠 은행’은 어차피 내 거니까요 [.txt]

홍준표 “공갈포 타자, 새가슴 투수…삼성 돈 많다, 저런 데 몇십억씩 주고”

이진숙 대구시장 불출마에 ‘결선 진출전’ 앞둔 추경호·유영하 “결단에 경의”

취약계층 고유가 피해지원금 27일 접수 시작…첫 주 요일제 적용

“한국 포함 44개국 참석”…호르무즈 개방 위한 다국적군 계획 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