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고향 언덕에는 커다란 당산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동네 어른들은 금줄을 두르고 술과 떡으로 제를 올리셨는데 우리는 잠도 안 자고 뒤따라다니며 떡을 얻어 먹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우리 집 바로 위에 있던 한 그루는 잎이 말라들어 죽어가기 시작했고 해마다 절을 받던 그 당산나무는 마침내 동네 어른들의 손에 운명을 다하고 집집마다 나뉘어 땔감으로 사라졌다. 그 나무는 오래된 모과나무였는데, 어른 두서너명이 양팔로 에워싸야 할 정도로 엄청 컸던 것 같다.
열두살 위인 내 오빠는 당시 대학생이었다. 겨울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모과나무가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못내 아쉬워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흩어진 모과나무 가지들을 주워와 여러 가지 공작품을 손수 만들어 방에다 걸어주었다. 그때 막내동생의 방학숙제로 만들어준 것이 이 연필꽂이다.
오빠는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같은 해 겨울, 흑염소 검순이가 식구들의 몸보신을 위해 희생양이 되었는데, 그때 뽑아내 따로 남겨둔 염소뿔을 말려서 물감으로 색칠해 연필꽂이 나무 구멍 속에 넣어줬다. 덕분에 연필은 잘 넘어가지 않고 잘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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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오빠는 오십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당산나무 연필꽂이는 그보다 몇배나 나이가 많다. 계속 내 책상 위에 있던 연필꽂이는 내 아들의 책상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거실 전화기 옆으로 와 훌륭한 장식품 노릇을 하고 있다. 변함없는 색깔과 모양을 자랑하며 집으로 놀러오는 아줌마들의 손길을 받고 있다.
홀로 남은 한 그루의 당산 모과나무는 고향 언덕 위에서, 지금도 주렁주렁 커다란 모과 열매를 떨어뜨리며 서 있다.
김진희/ 경남 양산시 웅상읍 평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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