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늘 엄격하고 근엄하셨다. 자식들에게 칭찬을 하거나 웃음을 보여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아버지가 낭만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더더욱 상상할 수 없었다. 당신이 계실 때는 집안이 절간처럼 조용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아버지는 내 덩치보다 더 큰 아코디언을 사오시더니 평소와 다르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며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선생님을 모셔 배우고, 틈만 나면 정말 열심히 연습하셨다. 그 뒤 난 타 지방으로 진학해버렸기에 아버지가 언제 아코디언을 그만두셨는지, 어느 정도 연주 실력을 닦으셨는지 알 수 없다. 아예 아코디언의 존재조차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대학 시절 어느 날 레코드 판을 얹어 음악을 듣고 있는데 느닷없이, 그러나 조심스럽게 아버지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게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 판을 내려놓으려 했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손을 가로 저으시더니 미동도 없이 그 곡이 끝날 때까지 들으시곤 말없이 방을 나가셨다. 난 완전히 얼어붙은 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가슴 한켠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걸 느끼면서. 처음으로 당신의 인간미를 느끼게 해준 일이 아니었을까. 그때 그 곡은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이었다. 그 뒤론 집안에 음악소리가 들려도 아버지는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수년 뒤, 낙향해 다락방을 정리하다가 낡은 트렁크 속에서 아코디언을 발견했다. 30여년 만에 햇빛을 본 악기는 때에 절고 녹슬었지만 자개는 빛을 띠고, 건반은 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당신이 가꾸던 감나무 과수원 귀퉁이에 조그만 찻집을 차리면서 난 벽 한켠에 유일한 장식품으로 아코디언을 올려놨다. 아코디언은 오늘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다.
하병민/ 경남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 ‘꿈꾸는 섬’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 대통령 ‘정청래, 그만 괴롭히라’ 글에 “곡해 마시라” 반박

추미애 “김지용, 언제든 국민과 정의에 등 돌릴 수 있는 자”

추경호 징역 20년 구형에…대구 시민사회 “내란 진실 밝히고 법적 책임 져야”

AI 로봇, 용광로에 스스로 뛰어들어…‘터미네이터’ 현실로

개인전도 인도에 덜미…여자양궁 리커브 AG 사상 첫 노골드

트럼프, ‘알래스카 투자’ 압박…“곧 서명 않으면 두 배로 올릴 것”

인도 ‘양궁 천재’ 한국 꺾자…아버지는 과자를 선물했다

공개연애 구교환·이옥섭 커플, 4년 전부터 부부였네

“전두환 내란 아니다”던 국힘 김태규…“5·18 관련 사실 부정하려던 것 아냐”

북, 탄도미사일 발사...김여정 ‘남북대화 일축’ 하루 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