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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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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호를 보고

등록 2005-04-07 00:00 수정 2020-05-03 04:24

신명직 교수가 말한 ‘일본과의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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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의 적극적인 민간교류를 얘기한 신명직 교수의 말에 100%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사람을 움직이는 글을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아니 생명력 있는 좋은 생각들을 많이 부탁드립니다. /asteward

모든 여자가 강간범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피해자가 강도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는 법도 없습니다. 타인에게 보통 수준 이상의 도덕을 요구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의 분수를 넘는 행위입니다. 일장기를 불태우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것은 시위의 자유에 속하는 일입니다. 왜 일본은 한국을 끊임없이 괴롭혀도 되며, 한국은 일본을 용서해야 합니까? 대한민국이 천사입니까? 일본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전쟁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많다고요? 한국은 일본보다 압도적으로 평화주의자가 많기에 우리는 충분히 일장기를 불태울 자격이 있습니다. /lightnation

변변치 않은 글에 댓글을 달아 의견을 밝혀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중략) 다만 몇 가지 제 글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답글 형식으로 몇자 적어볼까 합니다. 먼저 저는 ‘조용한 외교’를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점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국가’ 단위의 ‘외교’가 아니라 ‘보통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적극적인 평화운동’을 저는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전쟁을 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전쟁을 강조하는 이들에 의해 전쟁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되고, 보통 사람들 역시 그것에 말려들어 ‘집단 광기’를 연출하게 된다는 것이 많은 분들의 지적이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정말 소극적이고 미리 패배를 상정한 생각 아닐까요. (중략) ‘보통 사람’들을 소수 ‘전쟁주의자’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사이에 다툼과 분쟁이 있는 섬들을 ‘평화의 섬’이라 부르고, 그들 사이에 다툼과 분쟁이 있는 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부르기 위한 운동을 전개해나가야 합니다. (중략) 동아시아의 보통 시민들을 믿고 의지하며, 그들과 내가 비로소 주인으로 서는 평화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전문은 인터넷 <한겨레21> ‘기사에 대한 의견’ 6471번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신명직

정치기사 제목, 과격하지 않나

정치 ‘호남은 정동영을 버렸나?’의 기사 제목이 과격하고 선정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민주주의의 선거 과정 속에서, 국민은 선택하는 것이고 정치인은 그 선택을 받을 뿐입니다. 누가 누구를 ‘버리’는 게 아닙니다. 기사 제목을 뽑는 과정에서 겪으시는 고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앞으로는 기사 제목을 좀더 신중하게 뽑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xx지역의 전략적 선택, 대거 당선, 이변 속출, 이 정도면 무난하지 않을까요. /eduev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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