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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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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캠페인] 총리는 아름답고 교묘했다

등록 2006-05-18 00:00 수정 2020-05-03 04:24

대화를 이야기 하면서 무장경찰의 폭력을 ‘우발적 충돌’이라 표현… 그 시간에 군인들은 대추리·도두리 뜰의 철조망 안팎에 참호를 팠다

▣ 평택=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총리는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말로 담화를 시작했다. 대국민 담화에서 위정자들은 ‘자랑스런’ 또는 ‘존경하는’이란 표현은 자주 앞세웠지만, 감히 “사랑한다”고 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5월12일 오전 10시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정부청사 브리핑룸에서 발표된 총리의 담화는 아름답고 교묘했다. 한명숙 총리는 미군기지 이전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합법적이고 평화로운 집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정부는 주민의 아픔과 함께하면서 진정한 대화와 타협으로 이 난제를 풀어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평택에서 일어난 폭력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 폭력을 ‘우발적인 충돌’이라고 표현했다. 1만 명의 무장한 경찰이 1천 명의 시민에게 가한 폭력을 ‘우발적인 것’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는 평택에서 한 발짝도 양보할 수 없는 정부의 난감함을 국민에게 납득시키려는 듯 보였다. 총리의 담화는 완벽히 무내용했다.

한주 내내 서로를 공박하는 기자회견

그 시간에 군인들은 대추리·도두리 뜰에 세운 철조망 안팎에 참호를 팠다. 국방부의 포클레인들은 대추초등학교에서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 앞까지 너비 5m, 깊이 1.5m짜리 참호를 팠다. 그들은 참호 안에 1m 깊이의 물도 채웠고, 철조망 안쪽에는 1.5m 높이로 둑도 쌓았다. 철조망 아래 갇힌 들에서 보리가 제법 자라 봄바람에 물결을 일으켰고, 마른 땅에 뿌린 볍씨도 파란 새순을 하나씩 싹 틔우고 있었다. 대추리에 사는 원유남(58)씨는 “새로 난 싹을 보니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5월8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에서 ‘평택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비상 시국회의’가 열렸다. 평택 사태를 취재하는 일본인 모리 기쿠로(29)씨가 “‘시국회의’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왔다. 회의에 모인 시민·사회단체 원로들은 “공동 행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야만적 국가 폭력의 진상을 밝히고 그 책임을 추궁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그들은 5월8일부터 5일 동안 평택시청 앞에서 평택 시민 릴레이 단식 농성을 벌였고, 매일 저녁 7시 평택역 앞에서 ‘우리 땅 지키기 촛불 문화제’도 열기로 했다.

한 주 내내 정부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서로의 주장을 공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총리실은 부랴부랴 여론조사를 벌여 “국민 10명 가운데 8명은 폭력 시위를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평시에 민간인들을 겨냥해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냐”고는 묻지 않았다.

‘그날’ 이후 대추리를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5월11일 여·야 4당의 인권위원장들과 개신교·천주교·불교·원불교 등 4개 종교단체 성직자들이 왔다. 국회의원들은 “폭력 사태와 인권 유린의 진상을 파악하고 민-군 충돌을 막을 수 있는 합리적 해결 방안을 마련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 쪽에서는 “군대를 철수하고 철조망을 걷으면 민-군 충돌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범대위는 5월11일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3·14일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을 밝혔다. 그들은 5월13일 오후 3시에는 민주노총·한총련 등과 함께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14일 오전 11시에는 경기도 평택시 대추리에서 집회를 연다고 밝혔다. 5월13일 열리는 집회의 이름은 ‘국방부 장관 퇴진! 군부대 철수! 평화농사 실현 범국민 촛불문화제’, 다음날 열리는 집회의 이름은 ‘군부대 철수! 미군기지 확장 전면 재검토! 평화농사 실현 범국민대회’로 정해졌다. 경찰은 5월13일 집회는 받아들였지만, 5월14일 집회는 “원천봉쇄하겠다”고 밝혔다.

5월12일, 취재 차량도 막아선 검문소

경찰은 5월12일 오후부터 전·의경 52개 중대로 대추리로 통하는 주요 길목을 가로막고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했다. <한겨레21> 취재 차량도 이날 경찰의 검문에 걸려 차를 세웠다. 경찰은 평택 시내와 마을을 잇는 16·20번 버스를 팽성읍 내리 입구에서 되돌아가게 했다. 주민들이 버스에서 내려 30분이 넘는 논길을 걸어 마을로 향했다. 경찰은 집회가 예정된 5월14일에는 전·의경 180개 중대와 정·사복 경찰관 2만여 명을 동원할 계획이다.

농민들은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철조망에 가로막히지 않은 자투리 땅을 골라 트랙터로 갈았다. 신종원(43) 조직국장과 박갑순(51) 신대4리 이장이 모를 내기 위해 트랙터를 몰고 도두2리 마을회관 앞 논 4천 평을 갈았다.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판단한 듯, 경찰은 이들을 막지 않았다. 내내 하늘이 흐렸고, 이따금 가는 빗방울이 떨어졌다.



[들이 운다] 애들이 심은 저 생때같은 나무

초등학교의 나무들은 다 베어버리고 볍씨 뿌린 논은 다 파버리고

포클레인 소리가 밤새도록 멈추지 않는다. 라이트를 켜고 움직이는 국방색 포클레인은 3m가 넘는 구덩이를 파 둑을 쌓고 그곳에 철조망을 던졌다. 김순득 할머니의 논 다섯 구간(7500평)도 그렇게 속살을 드러냈다.

▣ 김순득(68)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68-21

볍씨 뿌리고 풀약까지 다 줬는데 이 지랄이여. 다섯 구간 다 이래놨으니 어떡혀. 난 원래 물못자리 하려고 했어. 흙 다 담아놨었는디. 물 대려고 했더니 물 대면 옆의 논 볍씨 뿌린 데 상하니까 그냥 직파하라고 하니께 할 수 없이 해야지 어떡혀. 국방부에서 물 끊는대니께 동네에서 해보지도 않은 직파한 거잖어. 그런 논을 저렇게 다 파놓은 겨. 딴 집 건 아직 안 파서 마음이 놓이는디 우리 건 다 파서 정 떨어진대니까.
직파도 생전 처음이여.

그냥 물못자리 해 가지고 심으면 우린 농사를 잘 지어. 할아버지가 옛날부터 잘해가지고. 남 네 가마 먹으면 남보다 더 먹었어. 아들들이 서울 사람들한테 쌀도 팔아주고. 그 쌀 좋다고 또 갖다달라고 하고 그랬어. 밥 좋다고, 찰밥 같다고. 6남매 키우며 어렵게 살았는디. 지금은 밥이라도 먹지만 그때는 농사지으려면 죄다 빚 얻어다 살았어. 지금은 저렇게 트럭 타고 다니니께 얼마나 좋아. 옛날에는 없어서 리어카 타고 다녔어. 마차로 끌어다 흙 갖다 메우고, 최고 부잣집이나 경운기 샀어. 리어카 끌고 소마차 끌고 안정리 가서 쌀 사고 그랬는디. 저렇게 땅을 파놓으니 앞이 깜깜하고 어떻게 사나 몰라.
1948년에 천안서 여기로 시집왔어. 내가 왔을 땐 여기 비행장 쫓겨나와서 집 짓고 나서였어. 우리 영감은 이 갯땅 다 쌓았대. 어린 것이 뭘 알아. 열여섯 살에. 아침에 밥 한 숟갈 먹고 나와서 밥이 없으니까 어른들이 주면 얻어먹고 그랬다잖아. 어린 것이 와서 울어가며 일하니까. 그렇게 살았는디. 땅에다 지랄하고 학교에다 지랄하고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 우리 6남매 다 이 학교 다녔어. 어린 것들이 학교 가서 낭구 심어서 아름드리 길렀는디. 소사 하던 이가 우리 아들들 데리고 심은 겨. 애들이 가서 공부는 조금 하고 선생님들이 맨날 쓸고 닦고 시키잖아. 공부하다 나와 가지고 낭구 심으라면 낭구 심고 마당에 가서 뭐 좀 주워라 하면 줍고. 애들 조회하는 거 우리덜이 보면 보이잖아. 그렇게 자손들이 심은 걸 다 베어버리니께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 낭구가 무슨 잘못이냐. 왜 저걸 다 자르냐. 그랬더니 가만히 있어. 못 들은 척해. 아이. 저런 놈들. 저게 사람놈이여. 낭구를 보호하라고 하는디. 저 생때같은 나무. 은행나무, 포프라나무, 능수버들 그리고 방울 달린 나무.
인터뷰·사진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진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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