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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우는 ‘젠더 불평등’ 어떻게 타고 넘을까

노동부 장관 김영훈·여가부 장관 강선우라는 ‘다른’ 선택…중도·실용 정부가 노동·젠더 의제를 푸는 방법
등록 2025-06-26 21:46 수정 2025-06-29 16:51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2025년 6월26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2025년 6월26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첫 내각 인사 발표 내용을 보면 이 정권이 가려는 방향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는 인상이다. 다시 한번 확인되는 것은 ‘중도·실용’의 기조다. 대통령실에 에이아이(AI)미래기획수석을 신설했는데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로 인공지능(AI) 산업 관련 인사를 지명했다. AI수석과 ‘직연’(직장 인연)이 있는 인사라는 점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한성숙 전 네이버 대표)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이쯤 되면 이 영역에선 가히 ‘AI 올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용적 파격을 추구하는 면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실용적 인사’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선택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유임은 이러한 ‘실용적 인사’의 명암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선택이다. 정권 교체에도 전 정권 장관이 유임된 사례는 드물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직의 경우 호남 지역 정치인 등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없지 않다는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전 정권 장관 유임’을 처음부터 의도했다고 가정하지 않으면 이해가 쉽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효과를 노렸을까? ‘3대 특별검사’(내란·김건희·채 상병 특검)와 함께 임기를 시작하다시피 한 이재명 대통령으로선 한동안 ‘전 정권 심판’이 계속된다는 점이 고민일 것이다. 술렁일 공직사회를 안정화하려면 단지 전 정권 때 요직을 맡아 열심히 했다는 이유만으로는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 송미령 장관과 농림축산식품부는 이에 적합한 인사와 부처로 판단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은 정권과 ‘광장’의, 좀더 선거공학적으로 표현하면 ‘내란 심판’의 당위로 형성된 집권 연합 내에서 ‘중도·실용’과 ‘진보’의 충돌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남태령 대첩’의 주역인 농민단체 등의 반발이 보여주는 바가 이것이다. 송 장관은 윤석열 정권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던 당사자다. 아무리 새 정부의 코드에 맞추겠다는 취지의 설명을 거듭한다 해도 농민단체 및 이들과 연대했던 시민들로선 수긍하기 어려운 인사인 게 사실이다.

중도·실용과 진보의 균열을 예고하는 장면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차별금지법에 대해 과거에 했다는 발언과 이에 대해 언론에 한 해명은 몰상식에 가까운 내용이다. 김민석 후보자는 인사청문 과정에서 그것을 제대로 해명하지 않았다. 인사청문회의 현역 의원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차별금지법의 우선순위가 이 정권에서 그다지 높지 않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이 역시 ‘광장’의 시선으로 본다면 실망스러운 지점일 것이다.

고용노동부 장관과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같이 놓고 보면 앞으로의 흐름이 좀더 뚜렷하게 대비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중도·실용을 표방하는 이재명 정권의 개혁 의지를 반영한 대목으로 비친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된 것은 역대 최초인데, 이런 인사는 아무래도 보수세력과 재계의 반발을 부르기 마련이다. 실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언론은 사설 등을 통해 반발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런 상황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김 후보자를 선택한 것은 노동정책에서 분명한 족적을 남겨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는 것 외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젠더 불평등 제대로 풀려면 역량·자원 투입 필요

그런데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색깔이 다르다. 강 후보자는 여성주의 운동 진영 혹은 학계의 상징성을 나타낼 만한 경력이 없다는 점에서 다분히 실무형으로 평가될 수 있는 인사다. 물론 실무형 인사 역시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카드고 그 점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를 선택한 것과는 다른 기준이 작동한 정치적 배경을 추론할 필요가 있다. ‘여성가족부 버전의 김영훈’이 지명되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 맥락의 핵심은 젠더 불평등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신영숙 여성가족부 차관에게 “남성들이 불만을 가진 이슈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던진 뒤 “없다”는 답이 돌아오자, “우리 정부는 여성가족부가 아닌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해서 폭넓게 그런 것들을 좀 보려고 한다”고 발언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는 무엇을 의미할까? 여기에는 두 방향의 동상이몽이 작동할 수 있다. 첫째는 ‘성평등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라는 왜곡에 무력했던 것이 청년남성의 보수 편향을 강화했다’는 여성주의 일각의 평가다. 둘째는 ‘페미니즘을 다시 이슈의 중심에 놓는 것은 청년남성 유권자층에서의 확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정치공학적 판단이다. 전자는 구체적 실천 방향을 둘러싼 논란이 있겠으나 어찌 됐건 진보의 연장선에 있는 논의고, 후자는 중도·실용 영역으로 뻗어나가는 이야기다.

젠더 불평등, 그중에서도 청년남성을 중심으로 한 담론의 문제는 거의 손대기 어려운 지경에 빠진 상태다. 한국적 맥락에서 이 문제는 서구 정치의 21세기형 극우포퓰리즘이나 트럼피즘과 메커니즘이 다르다. 최근 연구와 보도는 이 문제가 실제 지위 하락을 겪는, 즉 노동시장에서 밀려나는 계층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재 지위의 상실을 우려하는 중산층 의제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물론 이 가설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왜 지위 상실에 대한 우려가 하필이면 청년남성의 젠더 불평등, 더 구체적으로는 페미니즘 일반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되는지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주로 청년남성끼리 공유하는 매체를 통해 재생산된 특정 세계관과 이를 글로벌 차원에서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플랫폼, 이런 공간에서 통용되는 특정 코드를 조직 대상으로 삼는 정치가 조응한 결과라는 것이 현재로서는 거의 유일한 설명 방식이 아닌가 한다.

만일 이재명 정부가 새로 지명한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통해 관철하려는 구상이 이러한 엉킨 실타래를 앞서의 예 가운데 전자, 즉 진보의 방식으로 푸는 것에 가깝다면 상당한 역량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역풍을 만날 각오도 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 이 인사의 의미가 후자, 즉 중도·실용에 해당한다면 이재명 정부는 ‘젠더 불평등’이라는 정치적 파도를 적당히 타고 넘어가는 데 성공할 것이다. 젠더 불평등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로 계속 남겠지만 말이다.

 

뒤로 돌아가지 않는 ‘미래’를 만들어야

여기서 진보가 중도·실용과 어떤 지점에서 상보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가 드러난다. 노동과 젠더는 오늘날 진보의 양대 의제라고 할 수 있다. 진보는 이재명 정부에 노동 의제를 요구하고 때로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이끌면서 성과를 내도록 할 수 있다. 젠더 의제에 대해선 직접 스스로 조직에 나서면서 ‘실패’ 혹은 ‘이후’를 대비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뒤로 되돌아가지 않는 미래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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