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택시를 탔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가자고 말하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택시가 엉뚱하게 서울 광화문 쪽으로 달리고 있다. 당신이 승객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택시기사에게 여의도로 가자고 다시 요청할 것이다. 만약 택시기사가 운전은 내 몫이니까 그냥 가야 한다고 우긴다면? 그러면서 엉뚱한 곳으로 가는지는 나중에 법원에 가서 따져보자고 한다면?
위법한 대통령령이 문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25일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려보낸 국회법 개정안은 ‘엉뚱한 곳으로 달리는 택시기사를 통제하자’는 법이다. 입법권은 원칙적으로 국회의 권한이다. 다만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위임받은 사항에 대해서 대통령이 행정입법(대통령령 등)을 정할 수 있다. 행정입법을 ‘위임입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위임이란 일정한 사무의 처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는 뜻이다. 승객이 택시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위임이다. 승객은 택시기사에게 가는 방법을 지시할 수 있다. 엉뚱한 곳으로 가면 목적지를 재확인하고 바로잡아달라고도 해야 한다. 그런데도 오류가 반복되면 택시에서 내릴 수도 있다. 물론 누가 옳은지 나중에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가는 길을 바로잡거나 택시에서 내리거나 소송을 하거나, 어쨌든 선택은 승객의 몫이다. 법원에다 소송을 낼 수 있으니까 다른 지시는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상식적으로 그렇다.
국회법 개정안(제98조 2항)의 핵심은 위법한 행정입법을 입법권자인 국회가 고치라고 요청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법 조항은 이렇다. “(국회) 상임위원회는 대통령령 등의 법률 위반을 검토해 법률 취지·내용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중앙행정기관에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행정기관은 수정·요청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상임위에 보고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행정입법을 심사하는 권한을 법원에 주고 있는 헌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위헌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6월8~15일 공법학자 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보니 82.6%인 38명이 ‘위헌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첫째, 법률 내용이나 취지에 위배되는 대통령령 등은 그 자체로 위법성을 가지며 위법한 대통령령에게 수정·변경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15명)이라고 했다. 둘째, 입법권은 국회의 권한이며, 행정입법은 국회에서 세부적인 부분까지 규정할 수 없어 위임한 것(10명)이라고 지적했다. 상위법에 어긋나 위법성을 품은 행정입법이 문제이지, 이를 수정·요청하는 것은 국회의 권한이라는 해석이다.
권위 있는 헌법학자인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도 저서 (2015)에서 같은 견해를 밝혔다. 그는 한국헌법학회 회장을 지냈다. “법률에 대한 국회입법의 독점을 보다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정부) 위임입법의 경우에 하위 법령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위헌 혹은 위법인 대통령령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경우에 국회는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를 할 수도 있다.” 엉뚱한 곳으로 달리는 택시기사를 승객이 제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말을 듣지 않으면 내쫓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권한 스스로 포기한 새누리당그러나 새누리당은 입법 권한을 스스로 포기할 작정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하지 않기로 당론을 정했다. 송기춘 전북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국회의 위상과 권한, 국회와 행정부의 관계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