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진짜 모르겠다. 검찰이 왜 이러는지.”
포스코 전 임원의 입에서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검찰은 3월13일 포스코건설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포스코건설 협력업체 등으로 수사 범위를 넓히고 있다. 3월15일에는 정준양 전 회장 등 포스코 고위 임원들을 출국 금지했다. 검찰의 칼날이 포스코를 정조준한 셈이다.
포스코 쪽은 당혹스럽다. 포스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경영자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내려오는 것을 반복했다. 이명박 정부 때 이구택 회장이 물러났고, 박근혜 정부 때 정준양 회장이 중도 사퇴했다. 그때마다 포스코를 둘러싼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가 회장 퇴진을 압박했다. 정준양 회장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검찰이 조사하고 있다는 얘기가 포스코 안팎으로 돌았다. 정준양 회장은 2013년 11월 사퇴 의사를 밝히고 물러났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권오준 현 회장은 박근혜 정부 때 선임된 포스코 최고경영자다. 검찰이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진 성진지오텍 등 포스코의 부실 계열사 인수 역시 정준양 전 회장 때부터 많이 언론 보도가 된 내용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포스코는 정준양 회장 재임 때 계열사를 줄이겠다고 발표한 바도 있다. 언론과 검찰이 정 전 회장 때의 의혹을 샅샅이 뒤지는 모양새다. 건설업계에서는 검찰이 포스코건설 비자금 수사를 하고 있지만 진척이 안 돼 고심하고 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검찰 수사관이 지난 3월13일 저녁 인천 연수구 포스코건설 사옥에서 압수수색품을 가지고 나오고 있다. 검찰은 포스코건설이 베트남 건설현장에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왼쪽).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AP 연합뉴스
결국 검찰의 칼날은 이미 물러난 정준양 전 회장을 압박해 또 다른 무엇을 향하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를 추적하려면 정 전 회장이 2009년 포스코 최고경영자에 선임됐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정 전 회장은 재임기간 내내 이른바 ‘영포 라인’의 후원을 받아 회장이 되었다는 의혹에 발목이 잡혔다. 영포 라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영일·포항 일대 출신 인사들을 말한다.
당시 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2009년 이구택 회장이 갑자기 물러나면서 포스코는 차기 회장을 뽑아야 했다. 물망에 오른 이는 정준양 전 회장과 윤석만 전 포스코 사장이었다. 이때 외부 인사들이 등장했다.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다.
박영준 전 차장은 2008년 11월부터 2009년 1월까지 포스코 회장 선임과 관련한 핵심 인사들을 두루 만나고 다녔다. 당시 박 전 차장은 차장이 되기 전 ‘자연인’ 신분이었다. 이런 그가 거대 기업인 포스코의 이구택 전 회장과 박태준 전 명예회장을 만난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우제창 전 국회의원(민주당)은 박영준 전 차장이 이들뿐만 아니라 정준양 전 회장 등 포스코 회장 후보군을 면담해 선임에 관여했다고 폭로했다. 박 전 차장이 이구택 회장에게 “정준양 사장으로 결정했다”고 통보했다고 우 전 의원은 주장했다. 후보 경쟁자이던 윤석만 전 사장도 2009년 1월29일 열린 포스코 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박영준 차장과 천신일 회장이 회장 후보를 포기하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포스코 내부에서는 윤석만 전 사장이 유력하다고 생각했지만 외부의 힘이 강력해 보였다고 당시 포스코 관계자들은 전한다. 박영준 전 차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의원(한나라당)의 보좌관 출신이었다. 천신일 회장 역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실세로 통했다.
정준양 전 회장은 회장에 오른 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적극 따랐다. 2009년 포스코는 녹색성장추진사무국을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가 금융위기 극복 등을 위해 ‘녹색성장’을 대외적으로 홍보할 때였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국외 순방을 나갈 때마다 정준양 전 회장은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했다. 포스코는 볼리비아 리튬광산 개발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국외 자원외교는 이상득 전 위원이 적극 추진한 것이었다. 자원개발사업을 하는 대우인터내셔널도 인수했다. 정준양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뒤엔 국외 순방길에 동행하지 못했다.
정준양 전 회장이 영포 라인을 경제적으로 후원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난 게 없다. 성진지오텍 등 부실한 회사들을 적정한 가격보다 더 비싸게 샀다는 의혹만 있다. 정준양 회장 시절 포스코 계열사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준양 회장 재임 시절 정권과의 커넥션 때문에 포스코가 불필요하게 기업들을 인수·합병하고 헛돈을 쓰고 있다는 게 시장의 평가였다”고 전했다.
공개적으로 드러난 사례는 있다. 박영준 전 차장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 이동조 제이엔테크 회장이다. 포항 출신인 이 회장은 이상득 전 의원과 친분이 있고 한나라당 중앙위원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인 2008년 이 회장의 제이엔테크는 포스코의 하청업체로 선정됐다. 일감이 보장된 포스코 하청업체는 포스코 퇴직자들의 몫인데, 새 업체가 뚫고 들어간 셈이다.
기계설비 공사업체인 이 회장의 회사는 2007년 매출액이 27억원이었지만, 2008년 100억원으로 뛰었다. 2009년 매출은 68억원으로 한풀 꺾였지만, 2010년에는 226억원으로 급증했다. 2012년 검찰이 박영준 전 차장의 집을 압수수색하던 날, 이동조 회장은 중국에 갔다가 두 달 만에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후 박영준 전 차장은 민간인 사찰 지시와 원전 비리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지난해 11월 출소했다. 이상득 전 의원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년2개월 동안 교도소 생활을 한 뒤 2013년 9월 출소했다. 그러나 이들이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은 밝혀지지 않았다. 정준양 전 회장은 2013년 말 퇴진이 결정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포스코를 잘 부탁한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포스코 전 임원은 “정준양 전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정권 실세들과의 의혹이 터졌는데 이게 6년째 계속될 줄은 몰랐다”고 한탄했다. 포스코는 민영화된 뒤 정부 지분이 한 주도 없다. 그는 “포스코 전 회장 가운데 회사를 떠난 뒤 감옥에 간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그러길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포스코 관계자는 “정준양 회장도 검찰에서 예전부터 자신을 수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질질 끌고 가서 이번에 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살다보니 축배 속에 독배가 있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취임한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은 서울 포스코센터 29층 회장실에서 5년 동안 강남 테헤란로를 내려다봤지만 이제 검찰 조사를 코앞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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