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와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의 기싸움이 치열하다. 나 후보와 박 후보는 각각 “Na(나)는 서울이다”와 “그렇습니다. 시민이 시장입니다”를 내걸고 선거전을 치르고 있다. 선거전의 한 축은 도덕성 공방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공약이다. 공약은 각 후보가 서울시장으로서 시정을 어떻게 운영할지를 보여주는 밑그림이자, 공복으로서의 태도와 철학이 압축돼 있기 때문이다.
1. 주택 공약 비강남권 재건축 연한 완화 vs 소형 공공임대주택 확대
심각한 전세난 때문에 두 후보가 내놓은 주택 관련 공약은 초미의 관심사다. 나 후보는 살기 좋은 집을 강조한 ‘가가호호 프로젝트’와 별도의 전·월세 공약 두 차례로 나눠 발표했고, 박 후보는 ‘희망둥지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주택 공약을 첫 번째 공약으로 발표했다. 그만큼 주택 정책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는 얘기다.
두 사람은 모두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방법은 다르다. 나 후보는 새로 5만 호를 짓고, 강남권 용적률 상향 조정과 비강남권 재건축 연한 완화 등을 통해 공공임대주택 34만 호를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강남권은 아파트 재건축 시기를 조정해 전·월세 수요를 관리하고 용적률을 높여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는 반면, 비강남권은 재건축 연한을 완화하고 뉴타운과 재개발 등의 수요에 따라 소형 주택을 집중적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 임대료는 지금의 면적·유형 기준을 사람·소득 기준으로 바꿔, 부담 능력에 따라 임대료를 달리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되고 있는 뉴타운 사업과 관련해선, 시행 중인 사업은 순차적이고 안정적으로 추진하되 주민이 원할 경우 공공 지원으로 마을 만들기 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나 후보는 아파트에 비해 생활 환경이 불편한 다세대·다가구 주택과 관련한 공약도 내놨다. 생활지원센터인 ‘햇빛센터’를 설치해 방범·보안·택배 보관·일시 탁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다세대·다가구 주택 리모델링 공사비 지원을 추진하는 한편, 공동주차장 설치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박 후보는 ‘원주민 쫓아내기’ 논란을 빚는 재개발·재건축의 속도를 조절하면서도, 신축 8만 호와 다양한 형태의 임대주택을 통해 공공임대주택 24만 호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서민과 중산층에는 장기전세주택을, 저소득층에는 임대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중·대형 위주의 장기임대주택 대신 다양한 인센티브를 통해 소형 주택 공급을 늘리고, 시유지를 활용한 주택협동조합형 주택, 다가구·다세대 매입 주택, 기존 임대주택의 장기전세 또는 월세 전환 재임대 등 임대주택의 종류도 다양화해 저소득층의 주거를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1~2인 가구가 서울시 전체 가구 수의 절반에 이르는 현실을 고려해 공공시설·용지, 대학 주변 재정비지구를 활용한 공공 원룸텔 공급 방안도 눈에 띈다. 재개발·재건축은 주민 의견을 수렴해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세입자 보호와 기반시설 공공지원 확대를 통해 공공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임차인의 이주 시기가 맞지 않으면 전세보증금 문제로 빚어지는 불편을 해소하려고 한시적으로 자금을 빌려주는 ‘전세보증금센터’ 설치·운영 계획도 발표했다.
두 사람의 공약은 대체로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받는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 소장은 “나 후보의 공약처럼 재건축 연한을 완화하면 한꺼번에 재건축 물량이 몰려 이주 가구 수가 늘어나고 대규모 전세난이 일어난다. 용적률은 공공재인데, 왜 강남에만 특혜를 주느냐. 주택 정책의 목표가 강남 집값 떠받쳐서 강남 주민들 재테크 해주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선 소장은, 박 후보의 공약을 놓고서도 “임대주택 8만 호를 어디에 어떻게 짓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재정 방안이 없다”며 “고비용·비효율의 임대주택 공급 체계를 고쳐 아파트값 자체를 낮춰야 한다. 현재 분양용 매매주택을 중심으로 한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서울에선 무조건 공공임대로 하겠다고 중앙정부에 요구하는 등 다른 방안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 무상급식과 복지 질 높은 교육 vs 친환경 전면 무상급식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직접적 원인인 무상급식과 관련해 박 후보는 “주민투표를 통해 나타난 서울 시민들의 판단을 존중해 초·중등학생 친환경 무상급식의 차질 없는 추진이 필요하다”고 공약집에 못박았다. 박 후보는 2014년까지 초·중등학생에게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안전한 먹거리 확보를 위한 권역별 친환경급식통합지원센터 설치와 학부모 모니터링단 운영을 공약했다. 반면 나 후보는 문서로 발표한 공약에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대신 텔레비전 토론 등에서 “한정된 예산으로 전면적 무상급식에 투자하기보다는 교육 격차를 해소해 질 높은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무상급식 말고 다른 복지 공약에서는 두 후보의 차이가 크지 않다. 두 사람은 서울 시민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생활 최저기준인 ‘생활복지기준선’(나경원), ‘서울시민생활최저선’(박원순)을 설정해 자치구 재정 여건에 따라 시민이 누리는 복지 수준에 차이가 나지 않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나 후보는 이와 별도로 장애인, 독거노인, 저소득층을 위한 ‘최저생활기준선’을 만들어 지원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박 후보는 서울시와 자치구가 주기적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내고, 위기 가정을 발견하면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보육시설과 관련해 나 후보는 영아 전용 국공립 어린이집 100곳과 공공보육시설 150곳을 새로 만들어 자치구별 평균 10곳의 공공보육시설을 확보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후보는 국공립 보육시설을 동별로 2개 이상 확보하겠다고 밝혀, 나 후보보다 규모가 크다. 박 후보는 초등 돌봄교실을 서울시 전체 초등학교로 확대하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나 후보는 맞벌이와 한부모가정, 소득 하위 70%까지에 한해 노인 육아 품앗이, 친인척 돌봄서비스를 실시키로 하는 등 주로 ‘이용자 편의’를 강조한 반면, 박 후보는 돌봄일자리 확대와 종사자 처우 개선 등 ‘노동자 편의’에 무게를 뒀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나 후보는 기존 재원의 한계를 전제하고 그 안에서 ‘맞춤형’ 정책을 집행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시민 처지에서 보면 ‘복지방치형 맞춤형’ 정책이다. 박 후보는 지출 구조 개혁 말고도 중앙정부와의 협의 등 복지 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재정 마련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3. 일자리 5대 핵심전략지구 vs 청년 벤처 1만 개
“일자리가 곧 복지”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일 만큼 취업난이 심각한 탓에, 두 후보는 모두 서울의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다양한 공약을 내놨다.
나 후보는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과정을 확대하고, 대학과 직업훈련기관을 연계해 청년 취업을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또 용산(국제업무지구), 마곡(첨단연구개발단지), 상암DMC(e스포츠 전용 경기장), 창동역 일대(동북권 신경제거점), 국립보건원 부지(서북권 문화·복지 웰빙 자족도시)를 5대 핵심전략지구로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공간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정보통신기술과 바이오산업을 육성해 경쟁력을 키우고, 서울의 성장 동력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음식과 성형·미용·화장품 산업, 한글 등과 관련한 산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한류 콘텐츠 2.0’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창업지원 서비스를 구축하고, 출입국과 외국인 등록 등의 행정 절차도 바꾸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박 후보는 창조적 청년 벤처기업 1만 개를 육성하고, 공공·사회 서비스 일자리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투자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2년제 전문기술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과 대학의 인재 연동 시스템도 구축하겠다고 공약했다. 서울형 마을기업·협동조합·사회적 기업 등의 육성도 주요한 일자리 창출 방안 가운데 하나다. 그뿐만 아니라 박 후보는 서울시와 산하기관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서울시가 사업을 발주할 땐 고용안정 기업을 우대하는 방식으로 일자리의 안정성을 높일 방안을 내놨다. 또한 비정규직·영세기업의 고용안정과 복지 향상을 위해 노동복지센터를 확대 설치하는 한편, 노사민정협의회를 실질화하고 노정 협의를 운영해 노사 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골목 상권을 위협하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사업조정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공약도 눈에 띈다.
선대인 소장은 “나 후보는 여전히 개발연대 논리에 기반해 산업단지를 만들듯 하드웨어 중심으로 일자리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박 후보는 아기자기한 아이디어가 돋보이지만, 서울시정을 이끌어갈 사람으로서 어떻게 창업벤처 생태계를 만들지 거시적인 디자인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4. 한강 르네상스 사업 추진 vs 중단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벌여놓은 사업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두 후보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전시성·낭비성 토건사업”인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서울시 부채를 크게 늘렸다고 비판하는 박 후보의 공격이 거세다. 반면 나 후보는 무상급식과 마찬가지로 공개한 공약집에선 한강 르네상스 사업 관련 내용을 명시하지 않은 채 토론회 등에서 의견을 밝히고 있다.
박 후보는 오페라하우스를 만드는 한강예술섬 사업, 용산과 경인운하를 잇는 한강주운 사업(서해뱃길 사업) 등은 중단하고, 한강 지천 생태 복원과 자전거도로 설치 계획 등은 보완해 별도의 추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또한 현재 300억원을 들여 80%가 완성된 양화대교 교각 확장 공사는 추가 예산 100억원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나 후보는 한강예술섬 사업은 서남권 대중예술 공간 확보를 위해 민자를 유치해 추진하고, 양화대교 공사도 유람선·바지선 충돌 방지를 위해 그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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