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진보·개혁 진영의 선거 대연합 논의가 분수령을 맞았다. 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등 5개 야당과 ‘희망과 대안’ ‘2010연대’ ‘민주통합시민행동’ ‘시민주권’ 등 4개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1월12일 출범시킨 ‘5+4 회의’는 1월29일 현재까지 선거 연합 공식 논의기구에 대한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다. 이들은 2월1일 회의를 열기로 했지만, “민주당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합의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민주당 태도 변화 없으면 합의 어렵다”
민주당이 뭘 어쨌기에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것일까? 현재 선거 연합 논의의 핵심 쟁점은 크게 ‘어떤 정책을 공통분모로 할 것인가’(정책 연합)와, ‘어떻게 공동의 후보를 선출할 것인가’(연합공천) 두 가지다. 지난 1월27일까지 다섯 차례 열린 5+4 실무회의에선 이 가운데 연합공천 방식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게임의 규칙’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각 당이 챙길 수 있는 ‘몫’이 달라지기 때문에 실무회의가 단숨에 합의를 도출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민주당은 후보 개인의 지지율, 후보 적합도 등에 기초한 ‘종합 경쟁력’을 연합공천의 기준으로 제안했다. 민주당으로선 공천에 민심을 반영한다는 명분을 살리는 동시에 실리도 챙길 수 있는 카드가 후보의 경쟁력이다. 현재 지방선거 출마가 유력한 인물을 대상으로 한 지지율 조사 대부분에서 민주당 후보가 ‘야권 1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른 4당은 “후보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후보의 경쟁력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느냐”고 반발했다. 인물이 부족하고, 지지율에서도 밀리는 다른 4당 처지에선 민주당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 또는 무조건 지지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실무회의는 난항을 거듭한 끝에 1월의 마지막 회의가 열린 1월27일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민주당에 2월1일까지 ‘진전된 안’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민주당이 가져온 안을 보고 논의를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실무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논의를 계속하기로 한 만큼 선거 연합 자체가 난관에 봉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5당 모두 적극적인 태도여서 설날 전엔 (선거 연합 공식 논의기구 구성 및 공천 방식과 관련한) 합의문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책 연합도 수준과 범위 놓고 이견하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민주당은 내부 논의를 거듭하고 있지만 아직 뾰족수를 찾지 못했다. 다른 당들은 “민주당이 얼마나 양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불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선거 연합의 또 다른 축인 정책 연합 논의도 순조롭지는 않다. 정책 연합 문제는 주로 각 정당 관계자의 언론 인터뷰나 토론회 등을 통해 서로 다른 얼굴을 비치고 있다. 이들이 맞서는 지점은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평가 △정책 연합 범위 △공동 지방정부 운영 여부 등이다. 대체로 ‘한 뿌리’에서 갈라진 민주당·국민참여당 조합과 민주노동당·진보신당 조합끼리는 의견을 함께한다.
지난 1월27일 ‘시민주권’ ‘희망과 대안’ ‘2010연대’ ‘민주통합시민행동’ 등이 공동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도 야 5당은 각자 기존 방침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라크 파병, 노동 유연화 등 민주정부 10년 사이에 추진된 정책을 재평가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은 “한-미 FTA 등은 모두 지역 주민의 삶에 악영향을 준 일이다. 그런 평가조차 공유할 수 없다면 어떻게 연대와 연합을 얘기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반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이번 지방선거와 지난 정부 평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노항래 국민참여당 정책위원장은 “민주정부가 신자유주의 정부라는 비판엔 동의할 수 없다. 참여정부가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다는 건 자해적 논의”라며 “그럼 그때 진보 정당은 뭘 했느냐”고 강하게 반박했다.
정책 연합의 범위를 놓고도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지방행정·생활정치 분야 등 지방정부가 관할하는 곳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기정 민주당 의원은 “후보자와 정당의 독자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3당은 일자리·교육·부동산·의료 등 주민이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모두 논의해야 한다고 맞섰다.
공동 지방정부 구상엔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적극적이다. 자치단체장을 차지하지 못한 다른 정당에 부단체장, 산하 기관장 등을 맡긴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진보신당은 이런 안이 추상적이라며 ‘공약 공동실행협의회’를 가동하자고 제안했다. 시민사회에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제안도 내놨다.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까지 공동 지방정부 운영에 참여시키는 ‘로컬 거버넌스’와 공천 단계부터 정당 대신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시민공천위원회’ 및 ‘시민자치정부’ 구성 등이 그것이다. 김달수 ‘희망과 대안’ 기획위원은 “지금 선거 연합 논의엔 지방자치 혁신 문제가 빠져 있다”며 “진보·개혁 진영이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현할 모델을 보여줘야 국민도 감동한다”고 주장했다.
‘5+4 회의’에 참여하는 시민단체들은 논의에 참여하는 정당·단체는 물론 진보 개혁 진영 싱크탱크들과도 연대해 설 이전까지 30여 명 규모의 ‘공동의제팀’을 구성할 계획이다. 이상현 ‘2010 연대’ 운영위원은 “정책 연합도 조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연합공천만큼 정당이 예민하게 생각하는 주제는 없다. 시민사회의 지원을 더 얻어 정책 연합부터 이끌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연합공천도 촉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5당이 연합공천 방식까지 빨리 합의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압박 강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지지부진한 중앙 정치와 달리, 수도권 일부 지역에선 지역당과 지역 시민단체들이 자체적으로 합의해 선거 연합의 속도를 내는 곳도 있다. 인천은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진보 정당들이 선거 연합을 공식화했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인천시당, 민주노총 인천본부 등이 1월19일 후보 단일화와 공동 선거대책본부 구성, 공동정책 마련 등을 통해 지방선거에 공동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중앙 단위에서 선거 연합을 논의 중인 다른 야당을 놓고서도 “진보 대연합의 원칙에 동의한다면 누구와도 연대하겠다”고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자체적으로 선거 연합에 나선 지역들
‘5+4 회의’처럼 야 5당과 시민사회가 선거 연합에 전격 합의한 곳은 경기 고양시다. 야 5당은 정당협의체를 꾸려 후보 선출 방식을 논의하기로 했고, 10여 개 시민단체는 ‘고양 무지개연대’를 구성해 정책 발굴을 맡기로 했다. 정당협의체가 후보를 정하면 ‘고양 무지개연대’가 이를 추인하고, 조정이 안 될 경우 시민사회가 자체적으로 여론조사 등의 방식으로 단일 후보를 정하기로 하는 등 합의를 깰 수 없는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그 밖에 경기 남양주시에서 진보 정당이 선거 연합 추진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부산과 서울 관악구 등에서도 연합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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