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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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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의 ‘광폭 인맥’

“다른 이가 전별금 500만원이면 박연차는 5천만원 주는 사람”…
선뜻 내놓던 게 ‘대가성’ 띠면서 몰락의 길 걸어
등록 2009-04-03 05:47 수정 2020-05-02 19:25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어떤 사람일까? 참여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만 해도 박 회장은 신발 제조업으로 성공한 부산·경남 경제인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외환위기가 오히려 기회

박 회장이 신발 산업에 뛰어든 것은 1971년이었다. 박 회장의 큰형 박연만씨와 작은형 박연구씨도 각각 태광고무산업과 삼호실업 등 신발 관련 업체를 경영하며 그를 지원했다. 그의 사업이 크게 도약한 시점은 1987년이었다. 그해 세계적 운동용품 업체 나이키사와 손잡고 나이키 운동화 생산권을 따낸 그는 1994년과 95년 각각 베트남 호찌민과 중국 칭다오에 생산공장을 세우며 사업을 확장했다. 1997년 한국에 찾아온 외환위기는 그에게 오히려 기회였다. 박연차 회장의 지인은 말했다. “당시 박 회장은 환율 800 대 1을 기준으로 수출 주문을 받아놓았는데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환율이 1800 대 1까지 치솟았다. 1997년 태광실업은 환차익으로만 2천억원이 넘는 이익을 얻었다.”

신발 제조업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은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은 2003년부터 국내 진출을 시도하며 본격적인 금품 로비를 벌였다. 지난해 12월10일 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빠져나오며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박 회장. 사진 한겨레 김명진 기자

신발 제조업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은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은 2003년부터 국내 진출을 시도하며 본격적인 금품 로비를 벌였다. 지난해 12월10일 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빠져나오며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박 회장. 사진 한겨레 김명진 기자

30여 년간 주로 해외에서 사업을 해온 박연차 회장은 2004년 ‘한국의 100대 부호’에 이름을 올릴 만큼 막대한 현금을 모았지만 정작 국내 사업 부문은 빈약했다. 2000년대 초반 국내 사업에 눈을 돌린 이유는 여기에 있다. 참여정부 초기까지 그의 사업 다각화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2003년 가스 관련 업체 인수에 나섰지만 입찰에서 떨어졌다. 2004년에는 동해펄프 예비인수 예정자로 선정되고서도 사업을 포기해야 했다. 박 회장은 이에 대해 사석에서 “법을 어기면서 사업을 해온 적이 없는데,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 형제와의 친분 때문에 역차별을 당했다”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내수산업 비중이 크지 않았던 탓에 일반인에게 알려질 기회가 적었지만, 박연차 회장의 인맥은 넓은 편이다. 부산·경남 지역을 거친 정·관계 인사 중에서 그와 가깝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이야기도 있다. 재계 인사 가운데서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 등과 절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5월, 2007년 2월 각각 치러진 박 회장의 둘째, 셋째 딸의 결혼식 장면은 그의 인맥을 잘 보여준다. 박 회장 둘째딸과 당시 김정복 부산지방국세청장 맏아들 결혼식에는 2천 명 가까운 하객이 몰렸다. 그때는 한나라당 인사들이 많았다. 김영일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도종이 전 의원,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과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 송은복 전 김해시장 등이 직접 참석했고, 고 김진재 의원 등이 화환을 보냈다.

2007년 셋째딸 결혼식에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김덕규 전 국회부의장, 그리고 이광재·서갑원 민주당 의원이 참석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화환을 보냈다. 두 딸의 결혼식에는 김만복 전 국정원장과 검찰 고위 간부 등 고위 공직자도 모습을 드러냈다.

박 회장이 정·관계를 넘나들며 폭넓게 교분을 쌓을 수 있었던 배경의 하나는 그가 ‘돈을 언제,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박 회장의 지인은 “박연차 회장은 장기적 투자라는 관점에서 돈을 쓴다”며 “그래서 때로는 아무런 목적 없이 돈을 건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찰서장 전별금으로 다른 경제인이 500만원을 건넨다면 박 회장은 5천만원을 주는 식”이라며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고 기억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부진 결혼식엔 와인 채운 냉장고 선물

박 회장이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 이부진씨 결혼식 때 와인 냉장고를 선물한 일화는 부산 재계에서 유명하다. 와인을 좋아하는 이건희 전 회장을 위해 와인 냉장고에 최고급 와인을 가득 채워 보낸다면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라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건희 전 회장이 박연차 회장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면서도 “박연차 회장이 선물을 보냈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박 회장의 일방적인 결정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약력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약력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은 과거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고백하며 박 회장을 ‘인생의 은인’으로 표현했다. 윤 회장은 1990년대 초 부도 위기에 몰렸다가 박 회장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했다. 당시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였다. 에 소개된 윤 회장 이야기의 일부다.

“부산 서면의 한 일식집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박연차 사장님이 갑자기 봉투를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쓰라고요. 왜 주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당시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1억25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지라 염치불구하고 받았습니다. 집에 와서 봉투를 열어보니 5천만원짜리 당좌수표가 들어 있더라구요. 당시 돈 5천만원이라면 요새로 치면 10억원 정도의 큰 돈이었습니다.”

윤 회장은 “박 회장이 준 돈을 발판으로 재기에 성공했다”며 “박 회장이 마치 점술가처럼 나의 장래를 알아봤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정말 다른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훗날 휠라코리아가 성장하며 박 회장도 윤 회장의 도움을 적잖이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도 박연차 회장과 오랜 기간 친구로 지내온 사이다. 천 회장은 3월23일치 보도를 통해 지난해 7월 이명박 정부 초대 민정수석인 이종찬 변호사, 박연차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 전 부산지방국세청장 등과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지며 곤혹스런 처지에 놓였다.

천 회장은 3월27일 자신의 측근에게 “(박연차 회장은) 평생 같이 자라온 친구인데 부적절한 돈거래를 하거나 누가 누구에게 로비를 할 사이가 아니지 않느냐”며 “어려움에 처한 박 회장의 딸들이 찾아와 밥이나 사먹이고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 전부인데 왜 내 이름이 거론되는지 민망할 따름”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려진 것처럼 박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와 수십 년째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과도 1988년부터 안면을 익혀왔다. 뛰어난 사업 수완과 ‘광폭 인맥’을 바탕으로 탄탄대로를 걷던 박연차 회장이 참여정부 때부터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국내 진출 성공한 ‘휴켐스’ 인수하며 무리수

박 회장이 선뜻 주변에 내놓던 돈이 본격적으로 ‘대가성’을 띠기 시작한 것이 이 시점이라는 뜻이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호시탐탐 국내 진출을 꾀하던 박 회장은 참여정부 후반기인 2006년 뜻을 이뤘다. 그해 7월 농협중앙회 소유의 화학제품 생산업체 휴켐스 인수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 회장은 휴켐스를 싸게 인수하기 위해 정대근 당시 농협중앙회 회장에게 20억원을 건넸다. 박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여기에서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게다가 검찰과 국세청의 압박이 강해지자 박 회장은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에게 2억원을 건네는 등 다급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박 회장의 ‘로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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