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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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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더욱 ‘만사형통’

여의도 입법전쟁 결자해지하더니 재계·관계 선 닿는 곳마다 오비이락?
등록 2009-01-23 17:42 수정 2020-05-03 04:25
# 장면1: 2009년 1월15일 여의도 국회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인천 부평을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당대표 직함을 달고 정면 돌파할 것이다. 조기전당대회는 없다.”
부평을의 구본철 한나라당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사전선거운동 등) 혐의로 400만원의 벌금형이 확정된 날, 한나라당 당대표실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한나라당 한 당직자의 평가. “형님이 이겼네.” 무슨 뜻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박희태 당대표가 재보선에 출마하면 당대표를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새로 열어서 당 분위기도 확 바꾸고. 그런데 이상득 의원은 박희태 대표가 당대표 자격으로 출마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조기전당대회를 열면 박근혜 전 대표 쪽과 갈등이 생겨 분란이 커진다고 본 것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이상득(오른쪽) 한나라당 의원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한나라당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박희태 대표이지만, 당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이상득 의원이라는 말을 국회에서는 쉽게 들을 수 있다. 한겨레 강재훈 기자

환하게 웃고 있는 이상득(오른쪽) 한나라당 의원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한나라당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박희태 대표이지만, 당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이상득 의원이라는 말을 국회에서는 쉽게 들을 수 있다. 한겨레 강재훈 기자

# 장면2: 2009년 1월14일 여의도 국회

“지금 당에선 아무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대변인 자격으로 뭔가 이야기를 하라는 지시도 없고. 좀더 지켜보고 제가 대변인으로서 할 말이 있으면 할게요. 지금은 너무 조용해서.”
한상률 국세청장의 그림·골프 로비 의혹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렇게 답했다.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의 말이다. “당에서 그 문제를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한상률 청장의 로비 의혹이 워낙 광범위하고, 무엇보다 형님 관련설 때문에….”

# 장면3: 2009년 1월14일 분당 KT 본사

오후 3시에 취임한 이석채 신임 사장이 3시간 만인 오후 6시에 임원 인사를 발표했다. 전광석화의 ‘속도전’이었다. 고려대 출신의 표현명 전무가 코퍼레이트센터장을 맡았다. KT의 최대 과제인 KTF와의 통합을 추진할 핵심 부서다. 최고 실세다.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 출신의 서종렬 전 SK텔레콤 상무도 미디어본부장으로 영입했다.
KT 한 임원의 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에게 이석채 사장을 중용해달라고 계속 요청했다고 한다. 이 사장은 YS가 위기에 몰렸을 때에도 꼬박꼬박 잘 챙겼다고 한다. YS가 끝까지 자기를 잊지 않은 이석채씨에게 보답한 거고, 이상득 의원이 힘을 써준 셈이지.”

# 장면4: 2008년 12월11일 일본 도쿄 한-일의원연맹 회장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 이상득 의원이 도쿄의 한 호텔에서 도쿄 특파원들을 만났다. 이 의원은 자신을 지칭한 ‘상왕’ 논란이나 ‘만사형통’(모든 일은 형을 통하면 해결된다) 논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털어놨다.
“월급쟁이 30년, 월급 사장 12년을 해서 (자기 관리에 대해) 잘 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공식적으로 일절 만난 적이 없다. 친인척 폐해나 오너 경영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 정도는 내가 관리할 줄 알기 때문에 저 자신을 최대한 관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4년간 서울시장을 할 때도 이런저런 부탁이 들어왔지만 한 건도 얘기한 적이 없고 시장실에 들어간 적도 없다.”
한마디로 ‘억울하다’였다.

정권 초에 ‘만사형통’이라는 신조어가 돌았다. ‘모든 일은 형을 통한다’는 뜻이었다. 처음의 의미는 인사에 대한 영향력을 비꼬는 말이었다. 이명박 정권 출범 1년을 맞는 2009년 1월, 그 뜻은 정치·경제·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상률 국세청장 골프 모임 입방아

최근에는 경제 분야에서 말이 많다. 한상률 국세청장은 지난해 12월25일 경북 경주에서 강석호 한나라당 의원, 최영우 포항상공회의소 회장 등 포항 출신 기업인들과 함께 골프를 쳤다는 의혹을 받았다. 4대 권력기관장(검찰총장·경찰청장·국세청장·국정원장)의 교체설이 한창 나오고 있던 시기다. 경북 영덕 출신인 강석호 의원을 포함한 세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 이상득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항은 이상득 의원 지역구다. 한 국세청장은 골프 로비 의혹이 제기되자 1월16일 사표를 냈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임 뒷배경에도 이상득 의원의 이야기가 나온다. 참여정부 당시에 포항이 지역구인 이상득 의원이 이구택 회장에게 여러 차례 도움을 청했는데, 이 회장이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모두 거절했다는 것이다. 이구택 회장은 이때부터 ‘미운털’이 박혀 있었다는 설명이다. KT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가을, 재계와 검찰 주변에서는 ‘다음번은 포스코’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 프라임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12월 초, 검찰이 이구택 회장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했다는 설이 돌기도 했다. ‘경영진에 대한 검찰 수사 → 경영진 자진 사퇴 → 경영진 교체’로 이어졌던 KT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 전망은 두 달 만에 현실이 된 셈이다.

이상득 의원이 지난해 12월8일 각 쟁점 사안에 대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태도를 담은 문건을 검토하고 있는 모습이 사진기자들의 카메라에 잡혔다. 이 문건은 이른바 ‘형님 문건’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작성 주체를 두고 당 안팎에서 많은 말들을 낳았다. 연합 안정원

이상득 의원이 지난해 12월8일 각 쟁점 사안에 대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태도를 담은 문건을 검토하고 있는 모습이 사진기자들의 카메라에 잡혔다. 이 문건은 이른바 ‘형님 문건’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작성 주체를 두고 당 안팎에서 많은 말들을 낳았다. 연합 안정원

이명박 대통령과 아소 다로 일본 총리가 1월13일 합의한 일본 부품·소재 기업의 한국 진출도 이상득 의원의 ‘작품’이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이 의원이 평소 친분이 깊던 모리 요시로 전 총리(한-일의원연맹 일본 쪽 회장)와 물밑에서 부품·소재 기업의 한국 진출 문제를 논의했다. 부품소재 전용공단은 지난해 4월 이 대통령의 일본 방문 당시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합의한 사안이지만, 이상득 의원이 실제 밑그림을 그렸다.

일 부품기업 한국 진출도 매듭지어

일본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이상득 의원이 지난해 12월 일본을 찾은 것도 부품소재 전용공단 설치를 위한 마지막 단계 협상을 위한 목적이었다”며 “아소 총리 방한 직후에도 당일치기로 일본을 다시 찾아 매듭을 지었다”고 전했다.

여의도에서도 형님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연말·연초 국회 극한 대치의 뒷배경에도 이상득 의원은 등장한다. 한나라당의 홍준표 원내대표가 야당과 타협을 시도할 때 이상득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이계 의원들은 ‘85개 법안 일괄 처리’라는 강경론을 고수했다. 이상득 의원은 지난해 말에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도 “우리가 목표치로 삼은 것은 물러섬 없이 달성해야 한다”고 의원들에게 역설했다고 한다. 의원들은 ‘다그침’으로 받아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극한 대치의 실마리를 마지막으로 푼 것도 이상득 의원이었다. 지난해 12월31일, 이 의원은 민주당 쪽 국회부의장인 문희상 의원을 비공개적으로 만났다. 홍준표·원혜영 두 원내대표의 공식 협상으로는 해법이 보이지 않자, 형님이 나선 것이다. 두 사람은 방송법 개정안 등 쟁점 법안에 대해서는 여야가 합의 처리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1월6일 합의가 이뤄진 직후에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 합의를 추인할 수 있었던 것은 문희상 부의장을 만난 이상득 의원이 당내 강경파들을 설득했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1월6일 의원총회장에서도 이상득 의원은 “임시국회를 곧바로 열면 민주당이 점거를 풀 수 있겠나. 한 열흘 국회를 쉬면서 민주당이 국회 점거를 풀 수 있는 명분을 주고, 우리 쪽도 다시 준비해서 국회를 정상화하자”는 취지로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용한 이재오’ 조건 귀국 교통정리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이 오는 3월 귀국할 수 있는 것도 이상득 의원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상득 의원은 이재오 전 의원이 귀국하면 박근혜 전 대표 쪽과 정면으로 대립하면서 당내 분란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 전 의원의 귀국에 반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이재오 전 의원이 ‘조용한 이재오’라는 콘셉트로 이상득 의원과 박근혜 전 대표 쪽을 설득한 것으로 안다”며 “귀국 이후에 박근혜 전 대표나 친박 쪽과 대립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만사형통의 문제점은 공식적 권력의 위축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형에게 힘이 쏠리면 이명박 대통령의 권위까지 무너질 수 있다. 지난해 3월 정두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소장파들이 공개적으로 이상득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했을 당시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우려에서 비롯됐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상득 의원의 ‘여당의원 성향분석 문건’ 논란이 불거진 지난해 12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형이니까 부나비들이 붙는다”며 “이상득 의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는 청와대 수석실에서 잘해줬으면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을 꺼낸 적도 있다.

정치컨설턴트 이경헌 포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이상득 의원 본인이 자중자애하는 것이 해법이겠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친인척 문제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공개적으로 표명해야 한다”며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명박 대통령이 공개 선언을 하는 것도 좋은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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