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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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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총리의 못 말리는 호화 출장

금융위기 와중에 맨해튼 초특급 호텔 투숙 하루 숙박비만 1천만원…중동 순방도 ‘전세기’ 욕심
등록 2008-11-21 11:27 수정 2020-05-03 04:25
한승수 국무총리가 9월25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63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위·EPA). 한 총리가 묵었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의 객실. 한 총리의 하룻밤 숙박비는 7500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THE WALDORF-ASTORIA HOTEL

한승수 국무총리가 9월25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63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위·EPA). 한 총리가 묵었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의 객실. 한 총리의 하룻밤 숙박비는 7500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THE WALDORF-ASTORIA HOTEL

한승수 국무총리는 지난 10월28일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외적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는데다 실물경기 위축으로 이어져 그 영향이 상당 기간 지속될 우려가 있다. 공공 부문이 군살을 빼고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며 해외 출장 자제, 낭비성 예산 지출 방지 등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총리실은 △시찰·견학·참관·자료수집·우수 공무원 격려를 위한 공무 국외 출장 원칙적 금지 △불가피한 국제회의 참석·외교 활동을 위한 공무 국외 출장시 일정 최소화와 출장인원 엄격 제한 등을 담은 해외 출장 지침을 마련했다.

그런데 정작 한 총리 자신의 출장에는 이런 절약 정신이 빠져있다. 그는 지난 9월22~26일 유엔총회에 참석하려고 미국 뉴욕을 방문했다. 한 총리와 방문수행단의 숙소는 맨해튼 중심가에 요새처럼 자리잡은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한 총리 방미 일정 관련 실무를 맡은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우리 쪽에선 한 총리 숙소를 인터콘티넨털 호텔로 잡으려 했으나, 총리실에서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로 잡아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공무원 국외출장은 최소화 지시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은 미국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 각국 정상과 할리우드 스타들이 뉴욕을 방문할 때 이용하는 초특급 호텔로 유명하다. 유엔총회나 세계경제포럼 같은 국제 행사도 수시로 열린다. 지난 4월 이명박 대통령이 뉴욕을 방문했을 때 이곳에 짐을 풀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해 관저 수리 기간에 이 호텔을 임시 숙소로 이용했다. 9월 유엔총회 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한 총리와 함께 이 호텔에 머물렀다.

얼마나 대단한 호텔이기에 저명인사들이 무시로 드나드는 걸까. 1931년 아르데코 양식으로 완공된 화강암 재질의 42층짜리 이 호텔은 파크 애비뉴와 렉싱턴 애비뉴, 49번가와 50번가 사이 한 블록 7272㎡ 전체를 차지한다. 워낙 넓다 보니 앞, 뒤, 양옆 모든 방향에 출입문이 있다. 1층 로비 바닥엔 라는 유명한 타일 모자이크 작품이 깔려있고, 로비 한가운데엔 청동과 마호가니로 만든 높이 2.7m, 무게 2t의 대형 시계가 자리잡고 있다. 영국에서 만들어져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출품됐다는 이 시계엔 조지 워싱턴 등 미국 역대 대통령 7명과 빅토리아 영국 여왕이 조각돼 있다.

일반 객실인 딜럭스룸부터 최고급인 월도프 타워 스위트룸까지 5등급으로 나뉜 객실 1400여 개는 각각 대리석 욕조와 창틀, 크리스털 램프 등으로 고급스럽게 장식돼 있다. 이 호텔 홈페이지는 물론 여행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서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소개하는 문구에 절대 빠지지 않는 단어가 ‘럭셔리’일 정도다.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은 비수기일 때 딜럭스 싱글룸만 해도 하룻밤 숙박비가 700달러, 우리 돈으로 100만원에 가깝다. 반면 외교부가 물색했던 인터콘티넨털 호텔의 일반 객실 숙박비는 520달러(약 73만원)다. 유엔총회가 열리던 당시는 객실 요금이 비수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을 게 분명하다. 실제 한 총리가 묵었던 방은 당시 하룻밤에 7500달러(약 1천만원)에 이르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공무원 여비 규정상 뉴욕 출장 때 국무총리가 하루에 받는 출장비는 숙박비 1032달러를 포함해 1303달러인데, 이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총리실 직접 나서 호텔 변경 관철

이와 관련해 국무총리실 쪽은 “원래 외국 방문 일정은 석 달 전엔 결정이 나야 하는데, 당시엔 한 달 전에야 결정됐다. 200개국 정상들이 뉴욕에 모였기 때문에 인터콘티넨털 호텔은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어 어쩔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외교부에선 “방이 없었던 건 인터콘티넨털 호텔이 아니라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이었고, 인터콘티넨털 쪽엔 예약도 이미 마친 상태였다. 총리실 지시 때문에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 방을 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고 반박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뉴욕 방문을 준비하던 8~9월은 환율 급등이다, ‘9월 위기설’이다 어수선할 땐데 국정의 또 다른 책임자인 국무총리가 굳이 비싼 호텔을 지정했어야 했느냐”며 “실무자들도 하룻밤에 1천만원이나 되는 돈을 내야 하는지 가슴이 뜨끔뜨끔했다. 유엔총회 의장 등을 지내 뉴욕 사정을 잘 알아서 그런 건지, 외교부 장관 출신이라 외교부를 무시해서 그런 건지, 한 총리가 자기 누릴 것만 챙기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11월27일~12월3일로 예정된 중동 순방을 놓고도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한 총리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유엔 개발재원조달회의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한 뒤, 쿠웨이트와 터키를 방문해 대통령·총리·경제인 등과 오찬·만찬을 하며 ‘자원외교’를 펼 계획이다. 그런데 항공편 이동 시간을 빼고 실제로 일을 하는 나흘 가운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식사 일정만 세 차례다(반 사무총장은 한 총리가 외교통상부 장관이던 시절 차관을 지냈다). 30여 명으로 꾸려질 순방단에게 책정된 예산은 8억원이다.

당초 총리실은 항공사에서 전세기를 빌리는 방안도 검토하라고 외교부에 지시했다. “경제인이 방문단에 포함될 경우 민항기 좌석 확보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세기를 빌릴 경우 예산은 2배가량인 15억~18억원으로 훌쩍 뛰게 되는데, 이 경우 추가될 일정은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불과 20여 일 전인 11월6~12일 다녀온 레바논 ‘동명부대 시찰’뿐이었다. 국무총리가 전세기로 해외 순방을 떠나는 전례가 없진 않지만, 한 총리가 ‘과도한 욕심’을 냈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주요 방송사마저도 500만원가량 드는 경비가 부담스럽다며 이번 순방의 동행 취재를 포기할 만큼 다들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이어서 한 총리를 보는 정부 안팎의 시선은 더욱 곱지 않다.

외교 성과 발표도 거짓 드러나

한 총리가 내세우는 ‘자원외교’조차도 성과물이 크지 않을 것이란 의구심이 적지 않다. 실제 정부의 자원외교 성과 발표가 거짓이었음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지난 5월 정부는 석유공사와 카자흐스탄 국영석유회사가 체결한 잠빌 광구 지분 27% 양수도 계약을 한 총리의 자원외교 성과물로 내세웠다. “카자흐스탄이 3억~5억달러를 애초 제시 가격에서 추가로 더 요구했지만, 한 총리가 카자흐스탄 대통령을 설득해 1천만달러만 더 주기로 하고 계약을 성사시켰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학재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이 계약이 정부가 발표한 계약금액 8500만달러보다 10배가량 많은 8억1천만달러를 지급하는 것으로 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한 총리 방문 기간 중에 자원외교 성과를 내려고 서두르다 카자흐스탄 쪽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준 ‘퍼주기 계약’”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순방과 관련해 외교부 관계자는 “쿠웨이트 재계 인사 면담 등은 아직 확정도 안 됐다. 이런 일정으로 에너지·건설 분야 협력 강화라는 순방 목적이 제대로 달성될지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경제가 어렵다고 정부 부처엔 해외 출장 자제령을 내려놓고, 정작 본인은 저런 순방을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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