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그의 편인 봉하마을로 간 전 대통령… ‘시민주권운동’ 생각하지만 올 하반기까지는 조용히 지낼 듯
▣ 김해=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노란 풍선이 길잡이였다. KTX 밀양역사에서 내려 택시를 탄 손님이나 기사나 둘 다 초행이었지만, 왕복 4차선 옆에 듬성듬성 서 있는 가로등에 매달린 풍선은 일행을 봉하마을까지 친절히 안내했다. 말을 붙이는 손님에게 기사는 좀체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얘기를 들어보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잘한 것도 많다네요. 그런데 원체 경제를 못 살려서….” 순간 창밖으로 부산상고 동창회에서 걸어놓은 펼침막이 스쳤다. “우리의 자랑, 노무현 대통령 귀향.”
5년간 70만 명 넘는 인파가 찾아와
마흔네 가구가 사는 봉하마을엔 들뜬 여운이 남아 있었다. 퇴임 대통령 환영 행사 다음날인 2월26일, 대형 애드벌룬은 마을 앞 논바닥에 아직 뿌리를 내린 채 하늘에 둥둥 떠 있고, 좋은 자리를 다퉜던 펼침막 수십 개가 무질서하게 걸려 있다. “친구야! 수고 많았제. 우리는 니가 자랑스럽다.” 전날 마을을 찾은 2만 명의 손님을 위한 간이 의자와 무대 시설은 철거되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전날 무대에 올라 그 많은 눈빛과 현수막 하나하나에 답변하듯 “제가 지난 5년 동안 대통령 잘했지요?! 그런데 잘못했다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잘하면 좀 어떻고, 못하면 또 어떻습니까. 그냥 열심히 했습니다. 이쁘게 봐주십시오”라며 45분 동안 긴 연설을 늘어놨다. 그의 말투, 표정 하나하나는 정확히 5년 전 노무현을 떠올리게 했다. “말 놓고, 하고 싶은 딱 한마디가 있습니다. 해도 되겠습니까? 야, 기분 좋다.” 억눌림의 해소, 대통령이란 무거운 짐을 비로소 털어냈다는 노무현다운 의식이었다.
박옥자(61)씨는 그런 노무현의 “뒷모습이 안쓰럽더라”고 말했다. 멀리 서울에서 내려온 그는 부산에서 온 친구인 손우분(62)씨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몇 년 전 매점으로 변한 마을회관에서 후루룩 라면을 입에 넣던 박씨가 ‘대통령이 잘했다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머뭇거렸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더니 “하도 못했다 못했다 하니까 다 못한 걸로 보이더라고. 그런데 본인은 한다고 했는데, 주위에서 도와주지 않아서 그런 거야”라고 말했다. 남편과 달리 그는 5년 전 노무현을 찍지 않았다. 얘기를 가만히 듣던 손우분씨는 “못했다고도 잘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젊은 나이에 그만큼 했으면 잘한 거지. 경제는 혼자 하는 게 아니고”라고 말했다. 5년 전 노무현을 찍었다는 손씨는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에게서 노무현에 대한 ‘동정’에 가까운 ‘애정’이 느껴졌다.
노무현을 지지하는지, 반대하는지 깊은 속내를 감춘 관광객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평일인 이날에도 1천 명이 넘었다. 봉하마을 관광안내센터를 지키는 김민정 문화관광해설사는 2003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7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이곳을 찾아왔다며, “노 전 대통령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고를 나와 대통령이 된 성공 스토리를 교육시키려고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제 지난 5년을 놓고 노무현의 성공과 실패를 말한다. 마을 입구엔 광주노사모 회원들이 펼침막을 통해 “역사는 반드시 기록한다, 그의 위대한 시대를”이라고 외쳤지만, 이날 봉하마을을 찾은 외지인들은 아무도 노무현의 시대를 성공이나 실패란 단어로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울산에서 부인과 함께 온 강한장(63)씨는 “성공요? 여러 가지 잘한 게 있죠. 그런데 단정적으로 성공했다기보다… 권위적이지 않고 서민적· 대중적이었던 게 좋았다”고 말했다.
누려라, ‘뉴스로부터의 자유’
마을 사람들은 무조건 노무현 편이다. 원래 노 전 대통령이 태어난 집에 40년째 살고 있다는 김영자(63)씨는 “대통령이 내려오니 든든해서 좋다”고 말했다. 요즘 그는 노무현 덕에 4천원짜리 기념 수건을 하루 200~300개 이상 판다. 조용효(50) 봉하마을 이장은 노무현 ‘대변인’이 됐다. 그는 대통령이란 단어 앞에 ‘우리’를 빼놓지 않았다. 최근 몇 달 새 보수언론이 노 전 대통령이 내려와 살 곳을 ‘아방궁’으로 몰아간 보도를 조목조목 따지기도 하고, 언론에 대한 불신과 경계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얼굴이 검게 타 천생 농부인 그는 “대통령이 어려울 때도 경기 부양책을 안 쓴 건 이명박 정부도 인정하지 않냐”며 “지역분권과 지역 균형발전의 토대를 닦아놓은 건 우리 대통령이 제일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밀양시에서 진영읍을 거쳐, 봉하마을까지 가는 길에 가장 많이 걸린 “국가 균형발전 정책 추진” 펼침막은 “부정부패 감소” 펼침막과 함께 지지자들이 최고로 꼽는 노 전 대통령의 구체적인 업적 중 하나다.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외부의 시선과 달리, 정작 노 전 대통령은 편안해 보였다. 이날 오후 2시38분 느슨한 경비 너머 사저에서 잠시 나온 그는 관광객의 “안녕하세요!”란 큰 인사말에, 뒤돌아 예의 함박웃음을 지었다. 전날 밤 KTX를 타고 오면서도 기자들에게 “홀가분하다”고 했던 말이 괜한 말은 아닌 듯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한 차례 더 사저 밖으로 나왔고, 슬리퍼를 신은 채였다. 이른바 ‘보수언론’은 다음날치 신문에 ‘슬리퍼를 신은 대통령’이란 제목으로 그를 ‘조롱’했다. 보수언론과 그의 질긴 악연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정치적 관심도 끝나지 않았다. 이제 퇴임한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이 뭘 할지 새로운 관심이 등장했다. 희망제작소에선 2월19일 ‘또 하나의 소중한 자산, 퇴임 대통령의 역할과 과제’란 토론회가 열렸다. 어떤 이들은 노무현에게 카터나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같은 역할을 기대했다. 퇴임 이후 잘해달라는 바람일 터다. 김경수 사저 담당 비서관은 “‘나는 앞으로 자유인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고, 정치적 역할은 없다’고 말씀하셨던 노 대통령의 기조는 명확하다”며 “현실 정치에 개입하거나 대립의 한 축에 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인’이 된 그가 누리는 가장 큰 자유는 ‘뉴스로부터의 자유’라고 김 비서관은 전했다.
그렇다고 그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2월25일을 시작으로 그는 ‘시민 노무현’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이날 문을 연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www.knowhow.or.kr) 메인 창엔 맨 먼저 눈길을 끄는 글이 있다. “이제 정치의 장을 떠나 시민으로서 여러분과 만나고 소통할 것입니다. 현실 정치에서 당장의 승부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멀리 시민사회의 성장과 역사 발전을 위해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고 연구하고자 합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면 역시 홈페이지에 걸린 ‘시민주권시대를 위하여- 노무현의 민주주의론’이란 글을 읽어야 한다. 무리가 따르겠지만, 간단히 추리면 ‘시민이 주체가 돼 시장의 지배를 제어하면서 진보적 시민민주주의를 완성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대통령을 지낸 경험에서 비롯됐다. “정치 지도자나 대통령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많지 않다. …정치권력으로 무엇을 해내고자 한다면 한 사람의 대통령을 만들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 가치와 이념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흐름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적극적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시민, 지도자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시민, 나아가 스스로 지도자가 되려는 시민이 많아져야 한다.”
‘시민’ 노무현으로서 할 일은
‘특별한’ 시민 노무현이 지금 단계에서 시민주권 시대를 향한 거창하고도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이병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께서는 새로운 진보의 방향이나 운동이란 콘셉트로서 시민주권운동을 생각하고는 계시지만, 그걸 어떻게 해나겠다는 구체적인 플랜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실장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비롯해 출판, 재단 및 연구소 설립 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드는 것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는단다. 김경수 비서관은 “시점을 정확히 못박을 순 없지만, 올 하반기나 연말까지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지내실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노 전 대통령은 갓 지은 집 가꾸기에 바쁘다.
퇴임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은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는 ‘노무현 시대’를 냉정히 평가해나갈 것이다. 역사가 그를 어떻게 기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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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최상원 기자 한겨레 지역팀 csw@hani.co.kr
“봉하마을에 사백 몇십억원을 쏟아부었다고 하던데, 그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네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에 돌아온 2월25일, 가족과 함께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은 박영순(62)씨는 “마을을 두루두루 살펴봐도 도통 모르겠다”며 이 마을에서 근무하는 김민정 문화관광해설사를 붙잡고 물었다. 김씨는 “관광객에게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돈 문제인데, 이제는 답을 하기도 지쳤다”며 “한 번만 와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을 기자들이 왜 그렇게 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은 올해 초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에 국민의 혈세를 퍼붓는다”는 내용의 기사를 경쟁하듯 쏟아냈다. 언론에 보도된 ‘혈세’는 갈수록 부풀어 495억원에 이르렀다.
김해시는 ‘봉화산 일원 관광자원개발사업 기본계획 학술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75억원을 들여 봉하마을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노 전 대통령의 귀향을 계기로 해마다 33만여 명의 관광객이 봉하마을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봉하마을을 통틀어 가게라고는 마을광장에 있는 매점 한 곳이 전부다. 공중화장실도 매점 옆 한 곳뿐이다. 개발 계획에는 △노 전 대통령 생가 복원(9억8천만원) △봉하마을을 ‘초록마을’로 가꾸는 조경수 식재(20억원) △관광객용 상점과 화장실 등을 갖춘 마을쉼터 조성(16억3천만원) 등 총 75억원이 소요된다. 이 가운데 김해시가 확보한 예산은 국·도·시비를 모두 합쳐 35억5천만원이 전부이며, 그나마 집행한 것은 10억2천만원에 불과하다. 생가 복원은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기생이 현재 주인에게서 구입해 김해시에 기부하면, 진행될 예정이다. 노 전 대통령이 개인돈으로 지은 사저는 사업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진영시민문화센터 건립(땅값 132억원 포함 255억원) △화포천 생태공원 사업(60억원) △진영공설운동장 개·보수(40억원) △경호시설 건립(35억원) △봉화산 산림경영 모델숲 조성(30억원) 등 420억원어치의 사업 예산까지 보태 495억원이 투입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진영시민문화센터와 진영공설운동장은 봉하마을에서 7~8km가량 떨어져 있다. 화포천도 봉하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2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부산신항 배후철도를 건너가야 접근할 수 있다. 봉하마을 뒷산인 봉화산을 ‘산림경영 모델숲’으로 가꾸는 것은, 산림청이 2005년부터 진행하는 ‘건강한 숲 가꾸기 사업’의 한 부분으로 이미 전국 17곳에 조성됐고, 올해는 봉화산 등 4곳에서 추진된다. 경호시설은 앞으로 7년 동안 청와대 경호실 직원들이 머무르며 근무할 곳으로,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어디에 정착했더라도 필요했을 시설이다.
천정희 김해시 관광과장은 “다 지나간 일인데 다시 들춰낼 필요가 있겠느냐”면서도 “가슴에 멍이 들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고향에 정착한 이후 봉하마을에는 매일 3천~4천여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어느덧 ‘혈세’ 관련 보도는 2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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