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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보정당의 블루오션을 열까

등록 2008-02-22 00:00 수정 2020-05-03 04:25

심상정·노회찬 탈당 선언 후 ‘평등파’ 연쇄 탈당, 당내 온건·중도·강경파 대립 구도

▣ 이태희 기자hermes@hani.co.kr

‘재창조냐, 공멸이냐.’ 민주노동당의 분당 국면을 보는 시각은 이렇게 정반대다.

민주노동당의 ‘간판급’이던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의원이 공식적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해 탈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탈당을 전후해 ‘진보정당제안모임’을 만들 예정이다. 민주노동당을 극복한 새로운 진보정당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들보다 이른 2월 초에 탈당한 조승수 전 의원 등이 만든 ‘새로운 진보정당운동모임’도 진보정당을 추진 중이다.

일단 심·노 두 의원이 주도하는 진보정당은 2월25일 열리는 토론회에서 창당 일정과 비전의 가닥을 잡게 된다. 한 달 보름밖에 남지 않은 ‘4·9 총선’ 이전에 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상대적으로 많지만, ‘당이 아니라 새 출발이 문제’라는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민노당 지지자 73.7% “진보신당 지지”

두 의원의 탈당 선언은 당내의 이른바 ‘평등파’의 연쇄 탈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평등파 쪽에서는 “8만2천 명의 민주노동당 당원 중 2만 명은 탈당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의 말이 ‘허풍’은 아니다. 2월15일에도 김혜경 전 대표와 이덕우 임시 당대회 의장 등 지도부 인사 6명이 탈당하고, 부산과 대구에서 평당원들이 수백 명씩 집단 탈당했다. 이지안 전 부대변인은 “엑소더스가 시작됐다”고 표현했다.

평등파들의 이탈은 민주노동당에 남아 있는 이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먼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민주노동당 당원 또는 지지자들의 상당수가 평등파다. 박찬욱 감독과 영화배우 문소리씨 등 문화계 인사, 홍세화 기획위원과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진중권 중앙대 교수 등 학계·언론계의 인물들을 들 수 있다. 의원 중에서도 대중적 인지도가 가장 높은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의원 역시 평등파다. 민주노동당의 이미지를 높여주던 이들이 모두 빠져나갔거나, 나갈 상황이다. 또한 분당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이른바 ‘종북주의’(당내의 ‘자주파’들이 북한의 이념과 지도노선을 무조건 추종한다는 비판) 논쟁의 여파로 자주파들이 다수가 된 민주노동당은 ‘종북주의당’이란 낙인이 찍힌 상황이다.

이는 여론조사에 곧바로 반영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2월12일 실시한 여론조사(전국 700명 성인 대상) 결과를 보면, 민주노동당 지지자의 73.7%가 심상정·노회찬 의원이 중심이 된 진보신당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천영세 대표 직무대행 중심의 기존 민주노동당 지지는 22.6%에 그쳤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33.5%가 ‘진보신당’을 지지한다고 했고, 기존의 민주노동당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15.3%에 그쳤다. 천칭의 한쪽이 탈당파 쪽으로 가파르게 기울고 있는 것이다.

천영세 대표 직무대행과 강기갑 의원을 비롯한 5명의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2월15일 국회 정론관을 찾아 “탈당파 중 일부가 소위 ‘기획탈당’을 진행하고 있다. 자신들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민주노동당이 혁신을 거부한 것처럼 거짓 포장하고 있다”고 맹비판한 이유는 이런 위기감의 반영이다. 이들은 “민주노동당의 분열은 한국 진보운동의 대재앙이 될 것”이란 경고도 날렸다.

남은 이들 ‘천영세 혁신안’으로 재창당?

‘기획탈당설’은 민주노동당에 남은 이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탈당 명분이 없던 평등파들이 당을 떠나기 위해 일심회 사태를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온건 사수파인 김성진 최고위원(자주파)도 “이른바 ‘일심회’ 관련자들을 처리하는 문제에서 이들에 대한 처리를 당 기율위원회로 넘기자는 절충안을 제시했는데, 심상정 비대위원장 쪽에서 이를 거부하고 대의원들에게 의사를 직접 물었다”며 “대의원들이 부결시킨 것을 ‘거부당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에 남은 이들은 ‘재창당’을 공언하고 있다. 천영세 대표 직무대행은 2월20일 중앙위원회에 ‘천영세 혁신안’을 제출한다. 그러나 당 색깔이 바뀔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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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당한 이들도 갈 길은 멀고 험하다. 먼저 심상정·노회찬 두 의원의 거취에 걸린 것들이 많다. 신당 창당을 위해서는 가급적 빨리 탈당을 해야 하지만, 비례대표 의원이기 때문에 ‘탈당=의원직 상실’이다.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면, 당장 머물 공간(의원회관)도 도와줄 인력(보좌진)을 동원할 경제력도 잃어버린다. 2월3일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서 ‘심상정 개혁안’이 부결된 직후 탈당을 선언했던 노회찬 의원이 탈당계 제출을 늦추고 있는 속내에는 이런 현실적 어려움이 배어 있다.

이들이 4·9 총선에서 생존할 확률도 더 낮아진 게 사실이다. 경기 고양덕양갑에 출마할 예정인 심상정 의원은 1월 중에는 비상대책위원회 활동 때문에 남편이 선거운동을 대신 뛰다시피 했는데, 신당 창당 국면에서는 지역을 챙길 시간이 더 부족하게 됐다. 심상정 의원의 한 측근은 “심상정·노회찬 두 의원은 진보진영이 8년간 투자해 키운 자산인데, 자칫 모두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진보정당을 추진하고 있는 세력 일부에서는 이들에게 새 진보정당의 비례대표를 주자는 의견도 나오지만, 현실성은 없어 보인다.

노회찬·심상정 의원 등이 주도하는 진보신당제안모임과 조승수 전 의원, 김혜경 전 대표 등이 주도하는 새로운 진보정당운동모임 사이에는 감정의 앙금도 남아 있다. 평등파 내부의 강경파 혹은 선도탈당파로 불렸던 진보정당운동모임은 심상정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준비한 2월3일 임시당대회 이전에 ‘혁신안의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밝히며 당을 떠났다. 가급적 당을 깨지 않고 재창당을 해보자는 온건파의 노력을 헛되이 만들었다는 비판이다. 심상정 의원 쪽 관계자는 “선도탈당파들의 움직임 때문에 심상정 쇄신안의 추진 동력이 일정 정도 상실된 측면이 있다”며 “이에 대한 책임은 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승수 전 의원은 “실제로 그런 감정적 대립이 있었다”면서도 “현실 속에서는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진보정당운동모임 구성원들은 공감대가 있는 분들이다. 우리도 그분들도 자연스럽게 창당준비위원회에서 결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4월 총선에서 자칫하면 공멸할수도

더 큰 갈등은 민주노동당과 탈당파들 사이에서 빚어질 전망이다. 4월 총선에서 8~12% 정도인 잠재적 지지층을 놓고 다툼을 벌여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양쪽 모두 공멸하는 핏빛 ‘레드오션’이 될 수 있다. 탈당파들 사이에서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심상정 의원실의 손낙구 보좌관은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켰던 ‘무상의료·무상교육’과 같은 서민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정책과 어젠다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며 “여기에 새로운 진보정당과 진보진영 전체의 생사가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조승수 전 의원은 한국사회당, ‘초록정당을 만드는 사람들’과 같은 진보진영의 정치세력과 연대하는 한편, 임종인 의원 등 색깔이 유사한 이들을 더 많이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전 의원은 “평등파로 이뤄진 작은 민주노동당, 도로 민주노동당이 되어선 안 된다”며 “저희들이 49%를 이루고, 새로운 인물들이 51%를 채우는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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