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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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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대여 변치 마오

등록 2007-12-21 00:00 수정 2020-05-03 04:25

한나라당이 꿈꾸는 최악의 시나리오 ‘박근혜의 탈당’, 결론은 “공천 심사 결과 최대한 늦춰라”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대선 레이스는 12월19일 끝이다. 하지만 ‘정치의 계절’은 계속된다. 내년 4월9일 치러질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문이다. 총선을 겨냥한 ‘헤쳐모여’식 정계 개편 또한 본격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보수 진영은 이미 핵분열을 시작했다. 12월9일 이회창 후보가 대선 직후 ‘보수신당’을 창당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이다. ‘이회창 신당’이 어떤 면모를 갖추느냐에 따라 복수의 보수 정당 체제가 확립될 수도 있다.

턴키 방식, 친박 공천은 친박이 알아서

보수 분열의 열쇠는 여전히 박근혜 전 대표가 쥐고 있다. 박 전 대표의 행보에 따라서 이회창 후보의 보수신당은 제15대 총선에서 50석을 얻으며 돌풍을 일으킨 자민련이 될 수도 있고, 제17대 총선에서 4석을 확보하는 데 그친 자민련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제16대 총선을 치르고 사실상 소멸된 민국당이 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이 대선 이전부터 경계한 것은 당연히, 이회창 신당이 제15대 총선 때의 자민련이 되는 경우였다.

전신이던 신한국당 시절, 그러니까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자민련의 돌풍으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기억을 지니고 있는 한나라당으로서는 당연히 박근혜 전 대표의 이탈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주가가 대선 이후에도 여전히 ‘상한가’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명박 후보 쪽 핵심 관계자는 “박 전 대표는 대선이 끝나더라도 자신이 홀대받는다고 판단하면 ‘창’이 만든 당으로 갈 수도 있다”며 “이회창 후보와 박 전 대표가 각각 충청과 영남을 기반으로 하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경우가 한나라당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이 박 전 대표를 붙잡아두려면 그에 합당한 예우를 해줘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박 전 대표 쪽 인사들을 얼마나 배려해주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공천 지분과 시기에 대한 논란이 벌어질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이명박 후보 쪽에서는 박 전 대표 쪽에서 원하는 것이 ‘턴키 방식’의 공천 지분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턴키 방식 공천 지분 보장이란 박 전 대표 앞으로 아예 일정 몫의 공천 지분을 떼주는 것을 말한다. 친박 의원들에 대한 공천 심사는 친박 진영에서 알아서 하게 해달라는 요구다. 이렇게 되면 박 전 대표 쪽 의원들이 이른바 ‘살생부’ 걱정을 덜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는 곧 이명박 후보 쪽과 박 전 대표 쪽의 상호 불신이 이미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음은 이명박 후보 쪽 핵심 의원이 12월13일 한 말이다.

“박 전 대표 쪽 의원들의 지지유세를 보면 명색이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자기 지역구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운동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박 전 대표만 따라다니면서 박 전 대표와 함께 총선운동을 벌이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방문한 지역곳도 12월10일 경북 안동을 제외하곤 모두 ‘친박’ 인사들 지역구다. 그렇게 해놓고 턴키 요구 같은 것을 하면 안 된다.”

언론에는 박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를 위해 ‘화끈하게’ 뛰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이 관계자는 그럼에도 내년 총선을 위해서는, 박 전 대표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는 고민을 나타냈다. 고민의 결과는 총선 후보자에 대한 공천 심사 결과를 최대한 늦게 발표하는 것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 의원은 “이명박 후보가 당선될 경우 취임 예정일인 내년 2월25일까지 아주 확실한 몇몇 지역을 제외하면 총선 후보 공천 심사 결과가 나올 일은 없을 것”이라며 “3월 말로 예정된 총선 후보 등록 마감일을 일주일 앞둔 시점까지 공개되지 않는 지역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옮겨 출마할 ‘타이밍’ 잡지 못하도록

총선 후보자에 대한 공천 심사 결과는 통상적으로 총선 두 달 전, 아무리 늦어도 한 달여 전까지는 공개돼왔다. 이 후보 쪽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심사 결과 발표를 늦추려는 목적은 단 하나다. 그렇게 해서라도 박근혜 전 대표 쪽의 이탈을 막겠다는 의도다. 이 의원은 “그렇게 된다면 박 전 대표 쪽 인사들 가운데 공천 탈락 예상자가 이회창 후보 쪽으로 옮겨 출마할 ‘타이밍’을 잡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 쪽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쪽 핵심 인사는 “이 후보 쪽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데, 총선 준비 기간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구상”이라며 “이명박 후보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지원유세도 이 후보 쪽에서 그다지 고맙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쪽에서는 오히려 자신들에 대한 이명박 후보 쪽의 이중적 기류를 경계하고 있다. 박 전 대표 관계자는 “이 후보 쪽이 겉으로는 인위적 대학살이 없을 것처럼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이 문제를 놓고 이 후보 선대위 내부에서도 의견이 양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한쪽에서는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범보수 포용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다른 한쪽은 그렇게 한다면 비정치인 후보였던 이명박을 지지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중도(혹은 중도보수)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 세력을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쪽이다. 박 전 대표 쪽에서는 이 가운데 후자의 주장이 득세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 1992년 대선 직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를 ‘토사구팽’했고, 1997년 대선이 끝난 뒤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역시 JP를 걷어냈다. 200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 세력과의 결별을 택했다. 신임 대통령과 그의 측근 그룹의 가슴에는 구세력과의 결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있기 마련이다.

실제로 이명박 후보 쪽 관계자는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박근혜 쪽이 빠져나간다면 수구보수 이미지를 벗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지만, 이 경우 총선 국면에서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총선만 아니라면 박 전 대표와 함께할 이유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는 발언이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핵심 인사도 “박근혜 전 대표가 이회창 후보와 손잡고 충청과 대구를 잇는 보수지역당을 만들어나간다면 한나라당은 오히려 영남당, 보수당이라는 멍에를 벗어버릴 수 있다”면서 “총선을 생각하면 괴로운 선택이 될지라도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의미 있는 사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이미 지역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상당 부분 탈색한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등 원내 제1당과 2당이 모두 탈지역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가운데 이상을 좇아야 한다는 요구를 대변한 것이다. 역사는 이런 경우 이상적 모델을 좇았다.

탈지역 정당 계기가 될 수도

물론 내년 4월9일 총선을 생각하면 이참에 영남당, 보수당 이미지를 벗고 싶다는 이명박 후보 쪽과 한나라당 일각의 바람은 어쩌면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총선이 아니라도 내년 초 정치 일정을 꼽아봐도 그렇다. 2월25일 신임 대통령 취임 직후 곧바로 국무총리 인준과 장관 인사청문회 등이 예정돼 있다. 여야가 국회에서 세대결을 펼쳐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세 차례의 대선 직후에는 비주류가 일방적으로 ‘팽’당하는 운명을 맞았다. 이번에는 12월19일 대선을 치른 뒤 사실상 석 달여 만에 총선을 치러야 한다. 오히려 비주류 세력이 칼자루를 먼저 잡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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