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정체성, 지분 다툼, 리더 부재, 인물난… “언론에서 관심 덜 가지길” 바라며 속전속결 신당 창당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7월26일 오후 2시 범여권 대통합신당 서울시당 창당대회가 열렸다. 24일 신당 창당준비위원회 발족식이 열린 지 이틀 만이었다.
신당의 서울시당 창당대회는 리허설을 하듯 신속하게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우상호 의원은 노련했다. 개회 선언과 경과 보고 등 의례적 식순은 과감히 줄여버렸다. 임시의장을 맡은 5선의 김덕규 전 국회부의장 역시 의사봉도 없이 시당위원장 선출 작업을 마무리하고 3분짜리 임시의장 임기를 마쳤다. 우 의원은 “대선 예비후보의 축사를 듣기 위해 빨리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을 했다.
열린우리당 몰락 원인이 정체성 혼란인데…
김두관, 신기남,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순으로 도착한 대선 주자들은 도착 순서대로 축사를 하고, 다시 축사를 마친 순서대로 인천으로 향했다. 같은 날 오후 4시부터 신당의 인천시당 창당대회가 예정돼 있었다.
행사장 밖에서 만난 신당 관계자는 “언론에서 관심을 덜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잡탕 정당’이란 비난을 모면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속전속결로 창당 작업을 마쳐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른바 범여권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이란 이름의 정당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선거 때마다 정당 하나를 뚝딱 만들어내는 이들에게 한 신문은 ‘신당 기술자’라는 이름표를 만들어줬다. 희안하게도 기술자들은 스스로 잡탕 정당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대통합이 당면 과제이자 시대의 요구라는 것이 신당 주도세력의 유일한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그렇다면 대통합 이후는 어떨까. 잡탕 정당이라는 표현이 나타내듯, 대통합신당의 모호한 정체성은 가장 우선적으로 지적되는 문제다.
굳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대통합신당에 참여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성향을 따질 필요도 없다. 올 초까지 열린우리당 내 개혁세력을 ‘친북좌파’라고 비난한 뒤 탈당했던 보수 성향의 강봉균 의원이 김한길 의원과 더불어 조용히 신당에 합류했다. 관료 출신 의원들의 모임인 ‘실사구시’ 소속으로 강 의원과 함께 뛰쳐나갔던 의원들 역시 신당 중앙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외치며 단식을 했던 김근태 전 의장과 천정배 전 장관, 진보 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신진보연대를 이끌던 신기남 전 의장도 강봉균 그룹 의원들과 또다시 대통합신당에서 함께하게 됐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며 몰락의 수순을 밟았던 열린우리당의 실패 원인으로 지적됐던 것이 바로 정체성의 혼란이었다. 민간아파트 분양가 상한제와 원가 공개, 출자총액제한제 등 경제정책과 대북정책 등에 대해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가진 이질적 집단이 모였을 때의 한계를 열린우리당은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대통합신당의 통합 방식은 이같은 열린우리당의 한계를 오히려 확대 계승했다는 평가다. 조순형 민주당 의원은 “대통합신당에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민주당 탈당 세력과 일부 시민사회 세력 등 4개 정파가 참여하고 있는데, 문제는 정치적 이념이나 정책 노선에 대한 어떠한 논의나 합의가 없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한 뒤 “그렇기 때문에 신당은 이번 대선을 위해 만든 1회용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 의원은 대통합신당의 운명을 길게는 차기 대통령의 임기까지로 못박았다. 물론 이는 대통합신당이 정권을 획득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마저도 실패한다면 신당의 운명은 올해를 넘기기 어렵다는 것이 조 의원의 주장이다.
갈등 접합 방식은 정치가 아니라 산수
이질적 집단을 억지로 갖다붙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것은 자리 다툼이다. 갈등은 이미 시작됐다.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쪽은 범여 정치권과 시민사회 세력이다. 7월24일 창당준비위원회 발족식을 하기 이전부터 누가 창당준비위원장을 맡느냐를 놓고 양쪽은 한 차례 기싸움을 벌였다.
애초 시민사회 세력인 미래창조연대에서 요구했던 것은 오충일 목사가 단독으로 창당준비위원장을 맡는 방안이었다. 반면 범여 정치권에서는 6명을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으로 하되 4명은 각 정파에서 한 명씩, 그리고 나머지 두 자리를 시민사회 그룹에서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범여 정치권에서는 실체도 없는 시민사회 세력이 지나친 욕심을 부리고 있다고 힐난했고, 미래창조연대에서는 구태 정치인들에게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반박했다. 갈등이 접점을 찾아가는 방식도 원칙보다는 산수에 가까웠다. 정치권에서 3명, 시민사회 세력에서 3명이 공동으로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은 것이다. 정대철 전 열린우리당 고문, 정균환 전 의원, 김한길 통합민주당 공동대표와 오충일 목사, 김호진 전 노동부 장관, 김상희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 위원장 등이 대통합신당의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이다.
범여 정치권과 시민사회 세력은 이후 중앙위원과 상임중앙위원, 당직자 배분 문제를 놓고서도 사사건건 부딪혔다. 정봉주 의원은 “8월5일 창당 이전까지 모든 당직을 절반씩 나누자는 것이 저쪽(미래창조연대)의 요구”라며 “창당 이전에는 몰라도 창당 이후의 중앙위원 구성 등의 문제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현재의 갈등은 사실 창당 이후 대통합신당이 겪을 제2, 제3의 지분 싸움과 비교하면 오히려 단순한 편이다. 우선 열린우리당과 당 대 당이든 흡수통합 방식이든 합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민주당과의 통합 문제도 변수다. 당 대표 자리나 당직 배분 문제가 민감한 것은 차기 총선과의 관계 때문이다.
고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신당이 대선과 총선을 겨냥해 급조된 정당이다 보니 지분 중심의 통합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러한 대통합은 국민에게 어떠한 감동도 의미도 줄 수 없다”고 단정했다.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정치적 통합이 아니라 지분 중심의 산술적 통합이라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범여권의 현실이라고 치자. 이들의 비극은 리더가 없다는 지점에서 더욱 커진다.
이해찬 전 총리는 7월25일 청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역대 선거에서 연합을 안 하고 집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2002년 대선은 (노무현 대통령이) 정몽준 후보와 정책 차이가 있었지만 연합했고, 97년에는 DJP 연합, 92년 김영삼 대통령도 민자당과 연합했다”고 주장했다.
DJP 연합, 민자당 연합과 다른 점
이 전 총리는 이질적 세력이 결합해서 정권을 창출해냈다는 결과에만 주목했다. 그러나 이 전 총리는 갈등을 조정하고 잠재운 동력이 각각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통합신당의 핵심 관계자는 “세력 간 통합에서 필수적인 것이 리더십을 갖춘 인물인데, 지금은 정파나 계파 간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김근태 전 의장을 대통합신당 대표로 거론하고 있지만 김 전 의장 본인이 대표 자리에 그다지 마음을 두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맞물려 지적되고 있는 것이 인물난이다. 4년 전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열린우리당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은 김원기 의원과 이태일 전 동아대 총장, 이경숙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등 3명이었다. 여기에 외부 인사 50명이 대거 수혈됐다. 그래도 제기됐던 것이 새로운 인물이 없다는 비판이었다.
인물난의 정도는 지금이 더 심하다는 지적이다. 198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잡은 이해찬·장영달·임채정 등의 평민련이나 1989년 이부영·장기표·김근태 등이 만들어낸 전민련은 물론, 1990년대 이후 활동했던 정치개혁시민연대 등과 비교해볼 때 이번 대통합신당에 합류한 미래창조연대에는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낼 만한 시민사회 지도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시민사회 인사 가운데 지명도가 있던 박원순 변호사와 최열 환경재단 대표,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이 합류하지 않은 탓이다. 범여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시민사회 세력이라고 하지만 실체가 매우 불분명하다”면서 “지금의 미래창조연대를 보면 시민사회 세력의 대표성을 갖는다기보다는 시민사회 이탈 세력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정도”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대통합신당의 간판급 인물들은 감동을 주는 데 실패했다. 특히 정대철 고문, 정균환 전 의원 그리고 김한길 의원은 모두 비리 연루 의혹과 과다한 탈당 전력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시민사회 세력의 대표로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은 세 명도 전혀 새로운 인물은 아니다. 오충일 목사와 김호진 전 장관, 김상희 위원장은 모두 절반은 정치권에 발을 걸쳐 두고 있던 인물들이다. 오 목사는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장을 맡았고, 김 전 장관은 열린우리당 정책자문위원장, 김 위원장 역시 대통령 자문기구에서 활동해왔다.
그래서 대통합신당 내부에서도 이들보다는 백낙청 6·15 공동선언실천 남쪽위원회 상임대표나 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이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제 9부 능성, 그러나 감동이 없다네
물론 이들이 당장 전망이 불투명한 대통합신당의 조력자로 나서줄지는 의문이다. 홍성태 상지대 사회학과 교수는 “반한나라당을 외치며 대통합신당을 만들었지만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호남 지역주의 이외에 별다른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범여권 대통합신당은 천신만고 끝에 이제야 9부 능선에 도달했다. 이제 한 걸음만 더 내딛는다면 통합은 완성이다. 하지만 감동이 없는 통합, 그 이후에는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있다. 그래선지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 메아리쳤던 ‘백년 정당’이란 구호도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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