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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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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도 슬퍼도 소신 있게 안 울어

등록 2007-02-03 00:00 수정 2020-05-03 04:24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에서 각각 ‘왕따’당해온 고진화 의원과 임종인 의원…당론과 다른 정치적 소신 앞세우다 배척당했지만 “당의 노예가 되진 않으리”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정치권에는 각 당을 대표하는 ‘왕따 의원’이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고진화 의원이, 얼마 전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임종인 의원이 대표적이다. 두 의원의 상황은 다르지만 ‘당론’과 다른 정치적 ‘소신’을 분명히 하려다 당에서 미운털이 박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특히 고 의원은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할 뜻을 밝히면서 왕따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새파란 초선이 설쳐서 당 후보들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고 의원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는 또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당의 사상과 이념에 맞지 않는 고 의원이 당을 떠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논의에서 소외시키고 토론회 출연도 막아

겉으로는 늘 꿋꿋해 보였던 왕따 의원들이 받는 설움은 생각보다 깊다. 고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당 정책위원회, 연구소 등에서 보내는 보고서 등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다. 논의 구조에서 완전히 배제됐다”고 말했다. 임종인 의원의 경우에는 방송국에서 ‘토론회’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도 당 지도부에서 “당의 입장과 다른 말을 한다”며 토론회에 나가지 못하게 막은 적도 있다. 이런 정당의 집단 따돌림 현상 때문에 고 의원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토로했다.

고 의원은 어쩌다 왕따가 된 것일까? 그는 ‘이라크 파병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등 핵심 현안에서 한나라당의 당론과 반대되는 주장을 해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에 대해서도 다른 의원들이 “정략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며 ‘무대응’ 전략을 고수했지만, 고 의원은 “국회가 개헌안을 먼저 발의해야 개헌 이슈를 선점할 수 있게 돼 노 대통령의 정략을 차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당이 이런 다른 생각들조차 들으려 하지 않고 ‘튀는 행동’이라며 배척한다는 점이다. 그는 “당이 폐쇄적이고 일방적인 논의 구조를 갖고 있다”며 “당 지도부가 명령하면 이를 당원들이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왕따가 된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이 얼마 전 의원총회에서 ‘개헌’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던 원희룡, 고진화, 남경필 의원 등의 소수 의견을 묵살하고 발언권조차 주지 않았던 것도 비민주적 논의 구조의 예이다. 특히 민심이 여당에 등을 돌리고 한나라당에 쏠리면서, 당에서는 개혁적인 목소리를 수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대선과 총선이 다가오면서 유력한 대선 후보들이 의원들에게 줄서기를 ‘강요’하면서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은 더욱 오그라들고 있다.

‘공천 탈락 1순위’는 공공연한 비밀

이런 상황에서 줄서기도 안 하고, 당내 세력이 없는 고 의원이 공천권을 받기 어렵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고 의원이 ‘공천 탈락 1순위’라는 것은 정치권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고 같은 당의 비례대표 의원들이 고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갑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얘기도 버젓이 나돈다. 그래서 고 의원 쪽은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선택으로 대선 경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지게 됐다”고 밝혔다. 인지도도 높이고 대중들에게 큰 정치인이라는 인식을 심어줘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당 관계자들은 “튀는 행동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 몸값을 올려 탈당한 뒤, 범여권의 신당에 합류하려는 것”이라고 고 의원을 의심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고진화 의원은 “당 지도부의 노예가 아닌 시민의 심부름꾼이 돼야 한다”며 외로운 싸움을 계속할 것을 다짐했다. 임종인 의원은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을 날이 올 것”이라며 “언젠가는 세상이 내 소신을 알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왕따 의원들이 울지 않는 날이 과연 올까? 정치권에서 ‘소신’과 ‘왕따’는 동의어가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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