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병역 면제 의혹 논란, 병적 기록표 사본 보니 ‘중이 근치술 후유증’… 면제 기준인 60% 손실은 ‘안들린다’ 수준이나 중이염 수술로 회복 가능</font>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제적 통보를 받자마자 국군보안대 요원들이 고향집으로 왔다. 병석에 누워 사경을 헤매던 나를 국군통합병원으로 끌고 가서 신검을 받게 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시골집에서 멱을 감다가 생긴 중이염이 재발된 상태에서 장티푸스까지 걸려 사경을 헤매는 자식을 강제 징집시키겠다고 끌고 가니, 어머니는 영영 자식을 못 보게 생겼다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담당관이 다짜고짜 ‘아픈 데 없지?’ 하더니 신체검사는 하지도 않고 바로 영장을 발부하려고 했다. 나는 장티푸스와 중이염에 대한 설명을 있는 그대로 했지만 잘 믿지 않았다. 당연히 징집 영장이 나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징집 면제 판정을 받았다.”
“아직도 왼쪽 귀 청력이 떨어진다”
최근 열린우리당으로부터 병역 면제 의혹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후보(한나라당)의 책 <나의 길 나의 꿈>에 나온 내용이다. 앞부분엔 1971년 공장 생활 3개월 만에 장티푸스에 걸려 몸은 뼈만 남고 고열에 설사로 계속 누워 있었다는 내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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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출신 정치권 인사 가운데 오랜 수형 생활에 따른 면제자들이 적지 않아, 기자는 김 후보도 당연히 그 경우인 줄 알았다. 뒤늦게 그의 ‘기록’을 다시 뒤져봤다.
당시 장티푸스는 콜레라, 페스트 등과 함께 법정 전염병 1종에 해당하는 중병이었다. 전염병 예방법은 의사·가구주, 기타 각 기관의 기관장이나 경영자·군 부대장 등이 신고·보고하고 환자는 격리 치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전염병 환자를 군에 집어넣으려 했다? 어딘가 어색했다. 열린우리당의 문제제기가 근거가 있는지, 단순한 정치 공세 수준인지, 김 후보의 면제 과정에 비리 의혹은 없는지 검증이 필요했다. 기자는 여러 의문을 갖고 취재하던 중에 김 후보의 병적기록표 사본을 입수했다. 병무청이 국회에 제출한 ‘참여정부 현직 장·차관, 17대 국회의원 면제자 병역사항’과 비교해보니 생년월일·병명·국방부령 조항·신체검사 장소가 일치했다. 병무청에 원본과 일치하는지 확인을 요청했으나, 공직자 병역에 관한 사항은 이미 공개가 됐고 그 이외의 정보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한겨레21>은 병적기록표 공개가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에 어긋날 우려가 있음에도, 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이미 정치권에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고 △공직자의 도덕성·청렴성에 관한 감시와 비판을 감안해 이를 보도하기로 결정했다.
병적기록표를 보면, 김 후보는 1971년 11월11일 한 차례 검사를 받았고 면제 사유가 된 병명은 ‘중이 근치술 후유증’이었다. 고막 안쪽의 중이에 생긴 질환을 수술했고 그 후유증으로 면제를 받았다는 내용이어서 “중3 때 걸렸던 중이염이 악화돼 징집 면제 판정을 받았다”는 김 후보 쪽의 해명과 일치했다. 차이가 있다면 중이염과 중이염 수술 후유증이라는 정도다.
국내 유명 대학병원 전문의들에게 어떤 후유증이 있을 수 있는지 물었다. 수술 과정에서 뇌신경과 안면 근육을 건드릴 수 있으며, 수술의 원인이 된 심한 중이염 때문에 청력 손실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열린우리당의 의혹 제기에 맞대응을 피해왔던 김문수 후보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의혹이 되지도 않는, 말도 안 되는 문제 제기”라며 말문을 열었다. 병역 면제 당시 중이 수술 후유증으로 청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고 했다. 또 1968년 대구 ㄷ병원(현재 ㄱ대 부속병원)에서 중이염 수술을 받았으나 낫지 않았고, 만성이 된 뒤에는 염증이 심하면 청력이 더 떨어졌다고 했다. 김 의원은 “신체검사 당시 염증이 심했으며, 2002년 아주대 병원에서 고막 복원 수술을 해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왼쪽 귀 청력이 떨어진다”고 해명했다. 김 후보의 귀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이번 논란이 불거지기 전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정상적인 활동에 지장이 없다는 얘기다. 김 후보는 “오른쪽 귀는 멀쩡하니까”라고 답했다.
‘신장 170cm, 몸무게 61kg’ 기록은?
어느 정도의 청력 손실이면 면제에 해당하는지 뒤져봤다. 김 후보의 병역 면제 근거가 된 당시 국방부령 213호 404-마 신검(면제) 규정에는 ‘수술 뒤 청력 손실이 60% 이상이거나 만성중이염으로 농 배출이 계속될 때’로 규정돼 있다. 전문가들은 청력 손실이 60% 이상이면 거의 소리를 듣지 못할 수준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한번 손실된 청력은 회복되기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청력 손실의 원인이 중이염인 만큼 수술을 하면서 고막을 재생하고 끊어진 이소골을 연결하면 전도성 난청의 경우 치료가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수술 후유증으로 인한 왼쪽 귀 청력 손실, 그리고 수술로 청력을 회복할 수 있는 질환에 대해 재검 없이 바로 면제 판정을 내렸는지는 의문이다. 병적기록표에 나와있는 군의관을 찾기는 불가능했다.
병적기록표에는 김 후보가 쓴 <나의 길 나의 꿈>과 일치하지 않는 흔적도 있다. 그는 “몸은 뼈만 남고 고열에 설사로 계속 누워만 있다가” 신검을 받게 됐다고 했는데, 당시 신체검사 기록을 보면 ‘신장 170cm, 몸무게 61kg’이다. 그 정도이면 약간 마른 정도이지 사경을 헤매 뼈만 남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동아닷컴 인물검색 서비스 자료에 김 의원의 키와 몸무게는 각각 172cm, 64kg으로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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