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사학법 개정 반대 외치며 뛰쳐나간 한나라당에 여론은 썰렁
당 내부에서도 강경대응 기조에 비판 목소리… 복귀 명분 없어 난감해라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한나라당이 17대 국회 들어서 첫 장외투쟁에 나섰지만 좀처럼 분위기가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은 16대 때인 지난 2003년 12월18일 대선자금 수사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노무현 정권의 야당 파괴, 공작정치, 편파수사 규탄’을 외치며 국회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차떼기 정당’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반전을 마련하진 못했다. 그로부터 장외투쟁은 꼭 2년만의 일이다. 이번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3당이 12월9일 사학재단 이사회에 외부 인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개방형 이사제’ 도입을 뼈대로 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데 따른 대응이다. 하지만 분위기의 반전이 쉽지 않아 보인다. 개정 사학법에 이념 공세를 퍼붓고 원외 강경투쟁 방식을 택한 지도부의 전략적 판단에 당 내부에서 조금씩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데다 여론이 한나라당 편에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진화 등 소장파 의원들의 반발
한나라당은 ‘사학법 무효투쟁 및 우리아이지키기운동본부’(본부장 이규택 최고위원)를 꾸리고, 동원된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매일 길거리 집회에 나서고 있다. 당 조직국에서 불참 의원들로부터 사유서까지 받아가며 독려하고 있지만, 날씨가 추운 탓에 참여율이 그리 높진 않다. 한나라당은 서울 명동을 시작으로 서울역, 강남역, 영등포역 등을 거쳐 16일 서울시청 앞 광장 대규모 집회를 이어갔다.
한나라당은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통일 내전’ 발언을 이슈화하면서 ‘10·26 재선’에서 꽤 재미를 봤다. 하지만 그때의 상황과 지금은 여론에 큰 차이가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15일 발표한 개정 사학법에 대한 찬성 의견은 56%로, 반대 36%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여론 상황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잘못 알고 있는 국민”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나라당으로선 여론의 흐름을 바꾸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온 나라의 이목이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진위 논란에 쏠려 있다. 추위에 떨며 장외집회를 하고 있지만 여론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소장파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내부 동력도 떨어지고 있다. 고진화 의원이 장외투쟁 첫날인 14일 “원외투쟁 반대 의원이 과반에 육박한다. 사학법을 이념 문제와 결부시킨 것은 어불성설이며, 지지층 결집을 위한 원외투쟁 전략은 오류”라고 비판했다. 의원총회에서 고 의원을 출당시켜야 한다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지만, 지도부에 대한 비판은 가라앉지 않았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사학법 개정을 곧 ‘전교조의 사학 경영권 침해와 친북·반미 이념 주입 강화’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접근이자 잘못된 방향 설정”이라며 “사학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한나라당의 그동안의 노력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개정 사학법에 ‘친북 좌파=전교조=사학 장악’의 도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성급한 장외투쟁 방식을 문제 삼는 분위기도 만만치 않다. 장외투쟁 첫날 서울역에서 만난 홍준표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강경파에 떠밀려 아무런 계획 없이 뛰쳐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초선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날치기를 한 것은 분명히 잘못됐지만, 그렇다고 운동장 밖으로 나와 경기를 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당내 경선 앞두고 침묵하는 의원들
하지만 대부분의 의원들은 침묵하고 있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를 위한 당내 경선과 공천을 코앞에 둔 상황이다. 박근혜 대표 체제 아래서 치러질 선거를 준비하면서 지도부에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 작용할 수 있다. 이성권 의원은 “결정적 요인은 아니지만 부차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적지 않은 의원들이 장외투쟁은 전통적 지지층인 사학을 옹호하고, 그를 통해 지지층을 확고하게 하기 위한 불가피한 방법이라는 지도부의 전략적 판단에 동의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좀더 세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 게 사실이다.
아직 장외투쟁이 한나라당에 어떤 손익을 가져다줄지 판단하기 이른 상황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복귀하는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의 무효화를 열린우리당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또 열린우리당한테서 쟁점이 되고 있는 다른 법안에 대한 양보를 얻어낸다고 하더라도 궁색할 수밖에 없다. 이미 박 대표가 타협을 통한 등원의 명분찾기는 없다고 밝힌 상태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왜 장외투쟁을 선택한 것일까. 정치권에선 다소 ‘뜻밖’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장외투쟁까지 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우발성과 돌발성에 기인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보안법, 언론관계법, 과거사법, 사학법 등 ‘4대 법안’를 놓고 장기 법사위 점거 농성 등 여당과 극한 대립을 하면서도, 끝내 장외투쟁이라는 초강경 카드는 꺼내들지 않았다. 자칫 극단적 투쟁방식에 여론의 역풍을 우려한 탓이 크다.
투쟁 이후 박근혜 지지율도 떨어져
한나라당이 장외투쟁을 하면서까지 사학법 개정안의 무효화에 매달리는 까닭을 박근혜 대표는 한마디로 정리한다. “국가보안법이 이 나라의 체제를 지키는 것이라면 사학법은 이 나라 아이들을 지키고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법이다.” 그녀는 “사악한 사학법” “(사학법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 땅은 동토의 나라로 변하고 말 것”이라는 거친 표현을 써가며 개정 사학법을 비난했다. 개방형 이사제를 통해 전교조 선생들이 이사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본권인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곧 국가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논리다. 박 대표는 1980~88년 영남대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개인적인 경험도 갖고 있다.
사실 한나라당은 오래전부터 사학법 개정안을 이념의 문제로 다뤄왔다. 2004년 대외비로 작성한 ‘국정감사 대책회의 자료’에서 국정감사의 주요 쟁점사항 가운데 하나로 사학법의 개정을 꼽고, “헌법정신 위반, 국론 분열 및 좌파적 정책과 좌파의 활동 공간을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대표에게 장외투쟁은 그리 득될 게 없어 보인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15일 내놓은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 추이를 보면, 박 대표의 경우 10월31일 조사에 견줘 2.7%포인트나 떨어졌다. 지난 10·26 재선 승리의 결과로 상승한 지지율을 고스란히 까먹은 것이다. 자칫 지난해 말에 이은 연초의 난처한 상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 연초에 소장파와 중도파를 중심으로 반박 기류가 강하게 형성됐다. 지난해 말 박근혜 대표의 보수강경 대응방식이 당의 지지율을 갉아먹고 집권을 향한 당의 외연 확대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들이 제기된 것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개방형 이사제가 한나라당에서 금기시된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은 여당과 개정 법안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자립형 사립고를 받아주면 개방형 이사제를 수용할 뜻이 있음을 여러 경로를 통해 여당 쪽에 밝힌 바 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최소 3분의 1 이상의 의원은 개방형 이사제에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여 명의 소장파가 중심이 된 수요모임은 2월16일 개방형 이사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사학법 개정안의 당론 변경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끝없이 파행을 거듭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가급적 연말 안에 국회에 등원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시기와 명분을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문제다. 당장 처리되지 않은 새해 예산안과 이라크파병 동의안 등 산적한 법안들은 한나라당에 시간적 부담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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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이규택 한나라당 최고위원]
전교조 출신이 다른 이사 포섭할 수도… 추워서 투쟁하기 힘들어
한나라당의 ‘사학법 무효투쟁 및 우리아이지키기운동본부’ 본부장을 맡은 이규택 최고위원은 전교조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며, 한편으로 “투쟁의 가장 큰 문제가 추운 날씨”라고 말했다.
왜 장외투쟁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택했는지.
=야당에서 국민에게 알릴 방법이 없다. 돈이 없어서 광고도 못한다. 그래서 국민과 직접 대화를 통해서 알리는 것이다.
전교조를 투쟁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
=일부 극렬 좌파 전교조들이 반아시아태평양경체협력체(APEC) 동영상과 같은 친북좌파 이념을 아이들한테 교육하고, 이라크 파병 반대 수업을 하는 등 반미를 주장하면서 몇십 년 동안 유지돼온 한-미 동맹을 깨뜨리려 한다. 당장은 아닐 수 있지만, 먼 훗날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나.
통과된 법안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개방형 이사를 경영진이나 동문 등에서 추천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개방형 이사 7명 가운데 전교조나 민주화교수협의회의 1~2명이 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다른 이사를) 포섭하거나, 때론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진흙탕을 만들 수 있다.
한사코 개방형 이사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개방형 이사제로 사학 비리가 근절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개방형 이사가 재단과 짜고 치는 고스톱마냥 비리가 더 확대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으로 새해 예산안이나 이라크 파병 연장동의안 처리 지연에 따른 불똥이 튈 수 있지 않나.
=사학법보다 더 중요한 게 예산안인데… 이런 사태가 올 줄 알고, 여당이 야당을 함정에 빠뜨린 술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라크 파병이나 예산안으로 야당을 코너로 몰았다. 2년 동안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인고의 세월을 보내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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